한때 떠오르다 저버린 곳, 그런 곳이 있었나 싶게 잊혀진 곳, 힙스터의 성지에서 시작해 누구나 좋아할 만한 트렌드를 이어가는 곳 등등. 지금 주목해야 할 이 동네에는 예술적이며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여든다.

 

판그라티, 그리스 아테네

아테네 여행의 필수 코스는 아니었던 판그라티(Pangrati)가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단조롭던 곳이 활기를 띤 이유는 무엇일까? 이곳은 전통적으로 저렴한 임대료와 여관을 찾는 학생들과 예술가들이 찾는 지저분한 도심지였다. 요즘 에어비앤비 이용자들은 꽉 막힌 아파트를 선호하지만 이 지역은 여전히 잠재력을 가진 곳이다. ‘카라비티스(Karavitis)’와 ‘마라토니티스(Marathonitis)’ 같은 작은 음식점에서는 어린 양의 갈비살과 즉흥적인 부주키 연주를 담배 연기와 함께 즐길 수 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마땅히 감수해야 할 일이다. ‘아르켈라우 스트리트(Archelaou Street)’에서는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수염이 난 지역 주민들이 밤낮으로 포장도로에 줄을 서서 ‘트레 소렐레(Tre Sorelle)’의 화덕 피자, ‘오 보이(Ohh Boy)’의 비건 치즈케이크, 그리고 ‘트리고노(Trigono)의 아랍식 애피타이저인 메체(Mezze)와 독한 술인 라키(Raki)를 마시는 것이다. 테이블 자리를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은 카페와 와인바가 줄 지어 있는, ‘플라테아 프로스코폰(Plateia Proskopon)’ 광장을 찾으면 된다. 아니면 샐러드를 곁들인 레어 스테이크 요리와 네그로니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큐폴라(Cupola)’도 있다. 이곳에는 중동을 대표하는 소스로 가지를 주 재료로 한 바바 가누시를 곁들인 팔라펠랩, 후무스를 곁들인 구운 비트도 마련되어 있다. 또한 사람들은 빈티지 장난감으로 장식된 허름한 술집인 ‘슈퍼플라이(Superfly)’에서 다트, 레트로 슈퍼 닌텐도, 핀볼을 한다. 모다 젊은 사람들은 ‘첼시 호텔(Chelsea Hotel)’의 떠돌이 개들이 옆에서 잠든 작은 테이블에 모였다가 끝내주는 수블라키를 맛볼 수 있는 ‘엘비스(Elvis)’와 ‘더 킹(The King)’으로 몰려든다. 한편, 여전히 이 동네에는 아직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아티스트들이 있다. 지역 디자이너들이 설립한 스튜디오머티어리얼리티(Studiomateriality)는 ‘할렐루야(Hallelujah)’와 ‘핑크 브라운 베이커리(Pink Brown Bakery)’ 같은 유쾌한 인테리어를 선보였다. ‘포키아노(FokiaNou)’는 예술가가 운영하는 갤러리의 열풍을 주도한 선구자이다. 내년 개장할 굴란드리스(Goulandris) 박물관의 5개 층은 피카소, 마티스 그리고 클레의 작품으로 채워질 예정이다. 이제 아테네 여행 코스에 판그라티를 반드시 넣어야 할 것이다. 글 | 레이첼 하워드(Rachel Howard)

 

컬버 시티,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니 픽처스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컬버 시티(Culver City). 이곳은 수년간 점점 흥하여, 영화 제작의 중심지에서 쇼핑 지구까지 잠식한 다음, LA의 가장 진보적인 가게와 레스토랑까지도 점차 흡수해왔다. 이 재창조의 주역은 바로 플랫폼(Platform)이다. 플랫폼은 부티크와 카페가 있는 야외 쇼핑몰로 건물 밖에 그려진 젠 스타크(Jen Stark)의 무지개 벽화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소울 사이클(Soul Cycle)’은 이솝, 버드 브루클린(Bird Brooklyn), LA에서 만든 리넨 드레스와 리폼 청바지, 밀짚모자가 있는 ‘자네사 리온(Janessa Leone)’, 남성 의류가 있는 ‘마가신(Magasin)’과 함께 모여 있다. 워싱턴 대로를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미들랜드(Midland)이다. 전에 미용실이었던 콘셉트 스토어는 윤리적인 방법으로 제조한 멕시코 옷감, 도자기, 허브, 인스타그램 시인 루피 카우르(Rupi Kaur)의 책을 갖추고 있다. 근처 헤이든 트랙(Hayden Tract)에서는 건축가 에릭 오웬 모스의 빌딩이 수십 년 동안 공업지대를 개혁해왔다. 지금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셰프인 조르단 칸(Jordan Kahn)이 운영하는 ‘베스퍼틴(Vespertine)’ 레스토랑이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바이오다이내믹 농법으로 재배한 재료들이 기하학적으로 배치된 18개의 코스는 미식가라면 한번쯤 경험해볼 만하다. 셰프의 또 다른 식당인 ‘디스트로이어(Destroyer)’는 눈부실 정도로 새하얗고 간결한 공간으로 LA에서 가장 훌륭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성공을 가훈으로 삼는 이 도시의 바쁜 사람들과 함께 레드커런트를 곁들인 생오트밀과 에그 크림 음료를 먹어보는 건 어떨까. 저녁에는 와인 가게와 바를 겸하는 ‘스탠리의 웨드 굿즈(Stanley’s Wed Goods)’에 지역 맥주와 와인을 마시는 기술직 근로자들이 가득 찬다. 컬버 시티는 현재 LA에서 가장 활기찬 휴식처가 되고 있다. 글 | 넬 맥셰인 불프하르트(Nell McShane Wulfhart)

 

신트-요리스포오트, 벨기에 안트베르펜

벨기에 북부에 위치한 대도시 앤트워프의 끝자락은 진보적인 조경 설계를 갖춘 쇼핑센터로 유명한 작은 도시다. 특히 헷자위트(Het Zuid)는 지난 10년 동안 갤러리, 레스토랑으로 힙스터를 끌어들였다. 그러나 진짜 안목 있는 사람들은 중앙 광장으로부터 잠시 산책 나와, 겸손한 신트-요리스포오트(Sint-Jorispoot)로 향했다. 흐름의 선두에는 현대 미술계의 권위자들이 운영하는 ‘기킨스&드빌 갤러리’가 있다. 계절 전시와 이벤트에서 저명하거나 새로이 등장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후원한다. 벨기에 미술계의 신진 세력을 두루 만날 수 있다. ‘프레드 앤 조로(Fred&Zorro)’는 주인이 주의 깊게 선별한 가구들이 있어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작품을 구하기에 좋은 곳이다. 92세의 비흡연자 리제테 마이네르츠하겐(Lisette Meinertzhagen)은 자신의 이름을 딴 그녀의 가게에서 평생 담배를 판매하고 있다. 5대째 운영하는 유벨렌후위스 루위스(Juwelenhuis Ruys)에는 아르누보 양식의 장식장에 전시된 최고의 다이아몬드를 보러 갈 만하다. 파울레테 인’트 슈타트(Paulette in’t Stad)에는 유행을 타지 않는 여성 패션과 다양한 색의 빈티지 홈웨어가 있다. 아침은 카로테리(Carotterie) 2000에서 석류와 알로에 베라 주스, 고소한 무슬리를 먹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곳은 네오고딕 양식의 신트-요리스(Sint-Joris) 교회에 인접한, 새롭게 떠오르는 비건 식당이다. 점심에는 피트나메제 분(Vietnamese Bun)의 쌀국수를 먹기 위해 줄을 서고 저녁에는 비이덴알레크(Bij den Alec)에서 스테이크와 구운 감자 또는 브라운 버터를 넣은 스케이트 윙을 즐긴다. 이 지역의 열성적인 분위기는 도저히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글 | 데비 파핀(Debbie Pappyn)

 

바라카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허물어진 보헤미안 지역에서 새로운 장면이 나타나고 있다. 너무 유명해진 산텔모(San Telmo)의 붐비는 인파로부터 한발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바라카스 (Barracas)는 도시의 가장 세련된 지역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이곳의 북쪽 끝에 위치한, 잎이 무성한 레사마 공원(Parque Lezama)을 시작으로 1536년부터 시작되었다. 이전에 공장이었던 곳과 한때 버려진 창고는 고층 아파트, 문화 공간과 정부 본부로 서서히 바뀌는 중이다. ‘꿈의 대로’라 불리는 동서축의 아베니다 카세로스(Avenida Caseros)에는 먹거나 마실 수 있는 장소로 다시 창조된 19세기의 빛바랜 사저가 줄 지어 있다. 덕분에 장인의 수제 맥줏집과 전통적인 베르무트 바가 되살아났다. 형형색색의 펜던트로 장식된 ‘라 포풀라르 데 산 텔모(La Popular de San Telmo)’는 전통적인 아르헨티나 식후주와 송아지 요리에 경의를 표한다. ‘카세로스(Caseros)’는 현대 예술적인 분위기 속에서 아르헨티나 화이트 와인 토론테스, 신선한 파스타를 즐길 수 있다. 클럽 ‘소셜 디럭스(Social Deluxe)’는 하얀 리넨과 어두운 나무, 그리고 라이브 음악으로 채워진 공간으로 칵테일과 새끼 양고기로 만든 버거를 제공한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이에르바부에나(Hierbabuena)’에서는 신선한 주스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온 타프(On Tap)’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른 저녁 만남에 맥주를 걸치기에 적절하다. 고전적인 조각상들, 말, 빈티지 차와 오토바이 모형 등의 수집품으로 가득한, 마치 동굴과 같은 ‘나폴레스(Napoles)’에서는 마피아의 이름을 딴 칵테일과 그에 어울리는 나폴리탄 피자를 제공한다. 조금 떨어진 ‘라 플로르 데 바라카스(La Flor de Barracas)’에서는 소다를 섞은 틴토와 푹 삶은 본디올라를 맛볼 수 있다. 1906년에 문을 열었고 도시의 바레스 노타블레스(Bares Notables, 유서 깊은 가게)로 지정되어 보호받는 가게 중 하나이다. 관능적인 탱고를 원한다면 밀롱가 댄스 모임을 주최하는 ‘차우 체 클루프(Chau CHe Clufh)’로 서둘러 가야 한다. 바라카스는 이렇게 시인들과 탱고 작사가들이 오랫동안 칭송해온 도시 남쪽의 위상을 되찾고 있다. 글 | 크리스 모스(Chris Moss)

 

소이 나나, 태국 방콕

최근 엄청난 속도로 바(Bar)가 문을 열면서, 클럽과 레스토랑이 포진한 방콕의 통러(Thonglor)와 경쟁을 벌이게 된 새로운 장소가 생겼다. 바로 소이 나나(Soi Nana)다. 소이(Soi)는 태국어로 길을 뜻하는 말로, 우리나라 말로 바꾸면 ‘나나길’ 정도 된다. 이 소이 나나는 차이나타운 주변부에 위치해 있다. 과거 소문난 유흥가였던 이곳은 극심한 교통체증으로도 유명하다. 낮에는 별달리 할 것이 없지만 일단 해가 지고 나면 도시의 빛나고 젊은, 개성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국수 수레가 별하늘 아래 테라스 자리를 깔고 툭툭의 소리는 재즈 곡이 뒤덮는다. 네온 불빛은 역사적인 지역을 활기차고 왁자지껄한 곳으로 만든다. 연중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텝 바(Tep Bar)’는 술을 통해 태국 문화에 경의를 표하는 곳이다. 이 텝 바가 들어서면서 나나의 분위기는 반전되기 시작했다. 3년 전 오픈할 때의 어둑한 느낌은 사라지고, 지금은 태국 곳곳의 음식과 밴드 음악으로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했던 기존의 오래된 태숍하우스의 대부분은 바나 레스토랑이 되거나 현대미술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로 탈바꿈했다. 저녁은 ‘엘 치링기토(El Chringuito)에서 스페인식 축제로 시작한다. 독특한 타파스와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감자튀김 요리, 스페인식 샌드위치 보카딜로를 수제 샹그리아와 함께 즐길 수 있다.
반대편에는 루프톱에 위치한 비밀스러운 꽃집 ‘원데이 월플라워즈(Oneday Wallflowers)’가 있다. 등불 켜진 정원은 찌는 듯한 도시의 밤으로부터 최고의 도피처이다. 리치와 럼을 섞은 음료가 와규 다다키와 함께 제공된다. 술집 순행은 ‘틴스 오브 타일랜드(Teens of Thailand)’의 태국차와 국화차를 섞은 진토닉으로 이어진다. ‘피지우 바(Pijiu Bar)’의 주인이 운영하는 ‘아시아 투데이(Asia Today)’에서는 복고풍의 중국 호텔 같은 분위기에서 수제 맥주를 즐길 수 있다. ‘바 하오(Ba Hao)’의 네 개 층 모두 바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둡고 분위기가 있어서 술이 절로 들어간다. 옛 동양의 영화 소품들로 꾸며져 있으며 그에 어울리는 술을 마실 수 있다. 글 | 크리스 샬크스(Chris Schalkx)

 

윌리엄스버그,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로컬, 크래프트맨십(craftsmanship), 인디펜던트 (independent), 에코 프렌들리(eco-friendly) 같은 단어가 뉴욕 어느 곳보다 빛을 발하는 곳, 세상 듣기 싫은 말이 힙스터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이 이름을 누리고 사는 곳, 뉴욕 하고도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Williamsburg) 얘기다. 정신없이 바뀌는 윌리엄스버그에서 정신 못 차리며 8년째 살고 있지만 사실 이곳은 피난의 땅 같은 곳이었다. 맨해튼에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며 집세가 싸다는 이유로 80년대에 아티스트들이 대거 몰려들며 이른바 ‘윌리엄스버그 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윌리엄스버그 분위기를 비교적 짧은 시간에 느끼려면 와이스 호텔(Whythe Hotel)을 기점으로 와이스 애비뉴에서 앤드류 탈로라는 이름과 함께 시작하는 게 좋다. 앤드류 탈로는 레스토랑의 황무지 같던 과거 윌리엄스버그에 반경 얼마 이내에서 생산된 고기, 채소, 달걀 등 식재료만 사용한 레스토랑을 시작해 미친 짓이라는 얘기를 들었으나 건강한 식당 다이너(Diner), 말로 앤선스(Marlow & Sons), 로컬 식재료상 말로앤도터스(Marlow & Daughters)를 연이어 성공시켰다. 또 로프트였던 건물을 인더스트리얼 정신과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 와이스 호텔로 탈바꿈시키면서 지금의 윌리엄스버그를 만든 사람 중 하나가 됐다. 로컬들이 시도 때도 없이 술 한잔하러 들르는 킨포크(Kinfolk) 바, 로컬을 강조하는 건강하고 새로운 향신료, 소스, 음료 등과 점심 거리를 파는 델리 데파네르(Depanneur), 도심의 서퍼를 꿈꾸면서 동네 작업용 앞치마 장인을 끌어들여 서퍼 가방까지 제작하게 한 서퍼숍 필그림 서프서플라이(Pilgrim Surf+Supply) 등이 이 와이스 애비뉴의 스타다. 쇼핑백 대신 나만의 장 가방을 들고 다니자는 박구(Baggu)의 시작도 윌리엄스버그이고,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운동을 펼치고 있는 로렌 싱어는 패키지 프리숍(Package Free Shop)을 오픈해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아이디어 상품을 모으고 있다. 빨래방이 필수인 뉴욕에서 에디터, 디자이너 출신 윌리엄스 자매는 천연세제 외에는 허용하지 않는 친환경 빨래방(겸 카페) 셀시어스(Celsius)를 열었다. 과거 윌리엄스버그뿐 아니라 브루클린의 랜드마크였으며 뼈아픈 이민자, 노동자의 역사를 안고 있는 도미노 설탕공장은 폐쇄 이후 오랫동안 철거를 반대하는 도미노 살리기 운동의 주인공이다. 결국 일부를 럭셔리 콘도 개발에 양보했으나 대신 공장의 흔적과 역사를 곳곳에 담은 도미노 공원(Domino Park)을 얻었다. 과거와 현재가 한데 엉켜 있는 도미노 공원, 비싼 강가의 콘도를 찾아온 외부인과 정통 하시드 유대인이 공존하는 거리, 아티스트 그림으로 상업적 속내를 감추려 애쓰는 광고판과 스트리트 아티스트의 자유로운 그림이 뒤섞인 벽. 이들이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윌리엄스버그의 얼굴들이다. 글 | 이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