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과 스타일을 숭배하는 여자들의 ‘성경’이나 다름없던 피비 파일로의 셀린느 시대가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 후임자인 에디 슬리먼 역시 매우 컬트적인 방식으로 셀린느 월드를 집권하기 시작했다. 이제 디자이너들에게 필요한 건 브랜드의 ‘컬처’를 만드는 것과, 스스로 ‘컬트’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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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 파일로에서 에디 슬리먼으로의 교체는 마치 버락 오바마에서 도널드 트럼프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 같았다. 전혀 다른 정치 성향과 목소리를 가진 두 정치인의 집권은 엄청난 찬반양론에 휩싸이며 지지세력과 반대세력의 대립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패션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수없이 교체되었지만, 셀린느처럼 그 반응이 열렬하다 못해 이토록 과격한 적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이것은 브랜드에 대한 고객들의 호불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치적인 현상으로 보일 정도였으니까.

에디 슬리먼이 셀린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다고 발표한 날 소셜 미디어는 뜨거웠다. 에디 슬리먼이라니! LVMH는 피비 파일로라는 엄청난 이름을 잊게 만들 사람은 그뿐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 같았다. 일종의 충격 요법이 필요한 것 같아 보였다.

그동안 셀린느는 그 발음처럼 부드럽고, 유연하며, 성숙한 숙녀들을 위한 프렌치 브랜드로 널리 알려졌다. 우아하지만 강단 있고 지적인 이미지. 피비는 셀린느의 그 이미지를 위해 런더너 특유의 독특한 예술적 감수성과 어긋난 비율, 기이하고 목가적인 취향을 더했고, 매 시즌 셀린느만의 컬러 북을 만들어야 할 것 같은 멋진 컬러 베리에이션을 선보였다. 그리고 여자들은 열광했다. 지난 10년간 단 한 시즌도 셀린느가 예쁘지 않았던 적은, 단연코 없었다. 유르겐 텔러와 기이한 미학과 멋진 화음을 이뤘던 광고 캠페인부터, 재킷과 팬츠의 완벽한 실루엣, 모델들이 팔에 걸고 나오던 양모 블랭킷, 아무렇게나 구겨 든 커다란 클러치백, 독특한 비율의 프린지가 달린 스커트와 로퍼, 너무나도 세련된 양털 코트 등. 피비가 만든 셀린느를 모두 가질 수만 있다면 머리카락이라도 잘라서 팔 수 있을 것 같은 심정이었으니까. 이렇듯 10여 년간 견고하게 형성된 피비의 셀린느는 ‘셀리니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패션계의 ‘퀸즈 오브 퀸’으로 군림해왔다. 그 옷들은 패션을 넘어서 여자들의 삶의 방식을 재정의하는 것 같았다. 피비가 주장하는 생활 방식과 태도, 사상이 옷에 그대로 묻어났고, 여자들은 열광적으로 그것을 추종했다.

반면 에디 슬리먼의 셀린느는 어땠나? 그는 피비 파일로는커녕 셀린느라는 브랜드의 정통 문법도 따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 같다. 다소 위악적이라는 느낌마저 들었으며 에디 슬리먼 그 자체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 시도는 생 로랑 시절, 입생로랑에서 ‘Yve’를 지웠을 때보다 더 대담했다. 그는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셀린느가 가진 과거의 무게나 유산은 생 로랑이나 디올처럼 무겁지 않습니다. 나는 언제든 그것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 셀린느만의 중요한 유산과 그것에 연결되는 모델은 없습니다. 이는 단지 프랑스식 아이디어이며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입니다”라는 자신만만하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캣워크 위엔 LA 유스 컬처를 기반으로 한 로큰롤풍 청년들이 생 로랑과 캘리포니아풍 미니 드레스와 스모킹 슈트, 보머 재킷, 한껏 끌어올린 팬츠 등을 입고 등장했다. 캣워크는 온통 모노톤과 약간의 반짝임만 존재했다. 셀린느의 부드러움, 유려함, 고상하고 예술적인 컬러와 프린트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놀라웠다. 솔직히 에디 슬리먼이 피비 파일로와 같은 방식으로 컬렉션을 전개할 것 같진 않았지만, 특유의 젊고 감각적인 테일러링을 자랑하며 ‘뉴 셀린느’를 선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심지어 어떤 룩은 로고를 지우면 셀린느인지 생 로랑인지 디올 옴므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쨌든 말 많고 탈 많던 에디 슬리먼의 셀린느는 이렇게 포문을 열었다. ‘할 말은 많지만 말을 줄이겠다’는 느낌의 저널리스트들, 분노한 피비 파일로의 빅 팬들, 그리고 에디가 만든 옷을 다시 입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에디 슬리먼 지지자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셀린느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내 친구는 깊게 탄식했다. “이제 나는 뭘 입어야 하지?” “무슨 옷을 사야 할지 모르겠어.” 몇몇 스타일리스트는 할 말을 잃은 듯 ‘I Miss Phoebe’라는 짧은 문구를 소셜 미디어에 포스팅하기도 했다. 매 시즌 피비가 만든 셀린느를 컬렉팅하는 한 패션 블로거는 “절대 에디 슬리먼이 만든 셀린느는 입지 않겠다”, “이럴 거면 차라리 에디 슬리먼의 개인 브랜드를 론칭하라”며 분노 섞인 글을 올려두기도 했다. 자못 비장하게까지 느껴졌다. 전설적인 패션 기자인 <보그>의 수지 멘키즈는 어땠나? 그녀는 에디의 셀린느를 향해 생 로랑 같다는 짧은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뭐라 할 말을 잃은 듯했다.

한편 에디의 열렬한 팬들은 소셜 미디어에 이런 글을 남겼다. “에디 슬리먼의 셀린느는 너네 같은 ‘Frigid Snob’들을 위한 옷이 아니야!” “매장에 걸리면 안 사고는 못 배길걸!” 파리에서 직접 셀린느 컬렉션을 본 모 매체의 에디터는 그저 에디 슬리먼 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빨리 매장에서 셀린느 의 옷을 보고 싶다며 기뻐했다.

오랫동안 에디 슬리먼의 빅 팬을 자처해온 나의 경우는, 그가 생 로 랑에서 ‘톱숍 같은 옷을 만든다’로 비난받을 때도 꿋꿋이 그를 지지 했다. 그가 셀린느로 컴백한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솔직히 몹시 반 가웠다. 셀린느는 매 시즌 흠 잡을 데 없이 아름답지만 그래도 이만 하면 어느 정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그 후임자가 에디 슬리먼이라면 무척 흥미로운 게임이 아닐까 싶었다 . 물론 피비가 만든 ‘넉넉한 38 사이즈’의 셀린느를 다신 입을 수 없 다는 생각에 조금 슬프기도 했다. 매 시즌 완벽한 핏과 실루엣의 셀 린느 팬츠를 하나씩 사 모으던 재미는 사라지고, 에디 슬리먼이 만 든 얇고 신경질적인 바지에 몸을 구겨 넣을 생각을 하니 솔직히 상 상만 해도 좀 피곤해진 것도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빨리 매 장에서 직접 보고 싶고 만져보고 싶은 복잡한 마음은 왜일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스스로 컬트가 되다

지루한 패션계에 큰 이슈를 던진 이 ‘셀린느 사태’는, 우리에게 몇 가지 변화가 도래했음을 시사한다. 우선 패션의 패러다임은, 거대 한 ‘브랜드’에서 한 ‘개인’으로 완전히 넘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브랜드의 철학이나 역사보다 더 중요한 건 그 브랜드를 이끌어갈 디자이너 ‘개인’에 대한 숭배와 믿음인 것. 지금은 소셜 미디어 덕분 에 모든 것이 다 열려 있고, 누구나 자기 생각과 취향과 관점을 말 할 수 있는 시대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이너의 임무는 더욱 복잡하 고 예민해졌다. 사실 에디나 피비 같은 디자이너들에게 이제 그들 이 몸담는 브랜드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플랫폼이 무엇이 든 그들은 그 플랫폼 위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디올 옴므 시절부터 지금까지 에디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한결같다. 그 는 브랜드의 아카이브를 뒤지며 골몰하는 대신 L.A에서 젊은 록밴 드들의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으며 브랜드를 디렉팅하는 것이 훨씬 행복해 보인다. 최근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가 된 리카르도 티시 역시 버버리의 수장이 된 후 가장 먼저 로고를 바꾸며 ‘티시 식으 로’ 과감히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그런 현상들을 보면 디자이너가 브랜드에 충성하고 브랜드의 힘에 그 생명이 좌지우지되는 건 이제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질 정도다. 지금은 브랜드의 시대는 종말을 고 했고, 디자이너 개인을 향한 충성과 열광이 가득한 컬트의 시대니 까. 디자이너들은 이제 브랜드의 컬처를 만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 터가 됨과 동시에 열광적인 팬덤을 거느린 채 스스로 컬트가 되고 있다.

한편 인스타그램엔 @oldceline, @ phoebephiloarchive 등 지난 10년 간의 셀린느를 기억하는 계정이 생기 기 시작했다. 그들은 셀린느의 컬렉션 은 물론 피비 파일로 개인의 사진과 그녀의 쿼테이션까지 치밀하게 기록한다. 또 이베이를 비롯한 옥션이나 중고 사이트에 피비 파일로가 만든 셀린느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 솟고 있다. 나 역시 마음에 두고 사지 못한 셀린느의 버건디빛 클러 치백과 피비 파일로가 신고 나왔던 나이키 스니커즈가 갑자기 아쉬 워져 매일같이 이베이를 들락거리고 있으니까. 심지어 도쿄에는 피 비의 셀린느를 전시해둔 숍이 생겼다고 할 정도니, 이 정도면 이 현 상은 ‘컬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개인에게 집중된 팬덤과 종교에 가까운 숭배는 사조나 트 렌드라는 것을 잊게 만들고 있다. 요즘 누군가에게 ‘ 트렌드’를 묻는 다면, 제아무리 날카로운 촉을 가진 패션 에디터라고 해도 예전처 럼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지금은 어떤 플랫폼 위에서 나만의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해진 시대니 까. 그리고 에디 슬리먼의 말처럼 가장 중요한 건 과거도 미래도 아 닌 ‘바로 지금’이다. 지금을 이야기하는 것. 건축가 승효상은 한 인 터뷰에서 “지금은 시대를 아우르는 메인 스트림이 없는 백가쟁명 (수많은 학자나 학파가 자신들의 사상을 자유로이 논쟁함)의 시대 입니다. ‘사조’라는 것은 사라졌죠. 그러므로 각자의 주장이 얼마나 합리성을 갖느냐는 다원적 민주주의 시대가 열렸습니다”라고 언급 했다. 그의 말은 지금 패션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정확히 일 치한다. 패션 컨설턴트 박태일은 피비가 셀린느를 떠남으로써 그녀 가 셀린느에서 만든 소중한 모먼트와, 피비라는 브랜드 가치는 격 상되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에디는 자신을 고용해준 회사를 위해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하고 있을 뿐이라고 단언했다. “ 무엇 보다 우리는 지금 브랜드의 경계가 인셉션의 꿈처럼 마구 세워지고 무너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라며 이 요동치는 패러다임의 변 화에 동의했다. 더 이상 대단한 사조도, 특별한 경계도 없는 이 시 대에 우리는 과연 어떤 태도로 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까? 그는 반문한다. “에디의 생 로랑은 생 로랑이었을까요, 에디였을까요? 피비의 셀린느는 셀린느였을까요, 피비였을까요? 그중 우리가 사 랑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피비의 셀린느든 에디 슬리먼의 셀린느든 간에 브랜드는 우리가 소비하길 바라며 그 들이 던져대는 패셔너블한 포화 속에 있어요. 좀 더 현명해져야 할 필요가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