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상한 점들을 발견했다. 긴장하면 산만해지고 때로는 말까지 더듬는다. 이런 나, 비정상인가요?

 

1029-218-1

아이들에게 주로 나타난다는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가 새삼 화제가 된 건 성인에게도 자주 발생해 사회생활을 방해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부터다. 평소 산만하다고 생각해온 사람들은 한번쯤 내가 ADHD는 아닌가 고민해봤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첫 사회생활을 하며 나도 모르게 산만한 행동을 반복하거나 중요한 약속을 잊어버리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발표, 대화에 있어서 산만한 행동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회불안장애일 수 있어요. 본인 혼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죠. 병이라고 할 수도 없고요. 다만, 원치 않는 상황에서 반복 행동을 하거나, 실제로 본인에게 실이 있다면 원인을 찾아볼 필요가 있죠. 긴장, 불안과 관련된 문제일 수 있어요. 혹은 불안 때문에 왔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ADHD와 복합적인 경우도 있어요.” 힐링유심리상담센터 원장인 정신과 전문의 김지순의 말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 약간의 불안은 있을 수 있어요. 불안으로 인해 원하는 삶을 사는 데 얼마나 방해가 되느냐를 따지게 되는 거죠.” 인간은 끊임없이 사회적 환경을 경험하게 된다. 사회불안장애는 이러한 사회적인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이다. 우울증, 성인 ADHD, 공황장애 등과 함께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공존 질환이 많을수록 치료가 어렵기 때문에 여러 차례의 검사와 상담을 거치게 된다. 나도 혹시 성인 ADHD일까?

상담센터를 찾다

검사와 상담을 위해 힐링유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한 시간 반가량 소요되니 충분한 시간을 갖고 내원하는 것이 좋다. 먼저, 개인정보 수집 활용 동의서를 작성하고, 상담에 관한 전반적인 설명을 듣는다. 이후 20분가량 뇌파 검사와 상담을 위한 초진 설문지 작성 등 예비검사를 차례로 진행하게 된다. 겔을 바르고 모자를 쓴 채로 홀로 조용한 방에 남았다. “움직이지 마세요. 눈에 힘 주지 마세요.” 혹시라도 의학적 문제가 있진 않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뇌파 검사는 참고 정도로만 쓰인다고 한다. 곧바로 다른 방으로 이동해서 상담을 위한 설문지를 작성했다. 개인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기간, 최근 겪은 변화를 기술하는 설문지엔 회사생활 때때로 불안을 경험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적어 내려갔다. ‘나는 슬프지 않다’, ‘나는 슬프다’ 등 지난 일주일 동안의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문장을 선택하는 우울 관련 설문지, 현재 개인이 겪고 있는 불안의 정도를 평가하는 불안 관련 설문지, 그리고 어린 시절과 현재의 자신을 숫자로 표시하는 스키마 설문지 등 총 네 개 유형이었다.

예비검사 후엔 한 시간 정도 전문가와 평가상담이 이루어진다. 어떠한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지, 지속 기간은 어느 정도 되었는지, 긴장하면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로 인해 생긴 문제가 있었는지 등 본인이 작성한 설문지를 바탕으로 대화를 하고 문제에 대해 전문가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다. 김지순 원장을 만나 긴장하면 겪게 되는 불안함과 산만함, 그로 인해 생긴 신체적 증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회불안장애일 수도 있고 성인 ADHD일 수도 있어요. 아닐 수도 있는데, 일단 사회불안을 포함한 불안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아요. 지금 느끼는 불안은 일로 인한 긴장과 관련 있어 보여요. 피드백이 두려워서 해야 할 질문을 미룬다고 했죠? 누적되면 회피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더 잘하고 싶은 심리에 의해 생긴 불안이니 앞으로가 중요해요. 지금이 전환점인 것 같아요. 불안을 인정하고 회피하지 말 것!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면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죠.”

더불어 평소 잘 잊어버려 스케줄 관리가 힘들었던 것이나 꾸물거리다 결국 미루는 습관에 대한 고민도 털어놓았다. 중간에 성인 ADHD에 관한 몇 가지 설문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증상의 유무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초진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렵다. “ADHD를 겪는 환자 세 명 중 한 명 이상은 불안장애를 동반해요.” ADHD의 동반 질환 중 가장 흔한 게 불안장애이기 때문이다. 만약 사회불안과 ADHD 증상이 함께 있다면 불안을 먼저 안정시키고 ADHD 증상을 재평가한다. “불안만 좋아져도 ADHD처럼 보였던 증상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경우에는 불안 때문에 ADHD로 보였던 것일 수 있어요.” 불안을 컨트롤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반복 행동을 하는 등 산만한 증상이 계속해서 남아 있다면 종합적인 심리평가를 통해 ADHD의 정서적인 부분과 주의력 문제를 감별하는 테스트를 부차적으로 하게 된다.

사회불안 치료하기

사회불안의 양상은 개개인마다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치료 방법도 다양하다. 또한 누구나 겪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 불안을 느낄 수 있다. “예전엔 불안을 없애는 방향으로 치료를 했다면 요즘은 불안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추세예요. 병이 있고 없음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기에 완치의 개념은 아니지만 본인이 받는 괴로움을 줄여나가는 거죠.”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내원 및 상담을 권할 수 있을까? “일단, 자신의 모습이 달라졌다고 느낀다면 병원을 찾을 필요가 있어요. 또 변화가 누적된 사람도 있을 거예요. 정신과는 아직 문턱이 높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원에 오기 전에 스스로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해요. 노력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좋죠. 실제로 진작 올걸 하고 후회하는 사람이 많아요.” 김지순 원장의 말이다. 공포, 불안, 회피 등의 사회불안 증상을 동반한 20~30대 여성 중 사회 초년생은 처음 마주하는 상황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연차가 있는 여성은 직책이 올라갈수록 더 심해지기도 한다.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라고 한다.개인에 따라 더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다면 다시 심층 심리 검사를 하고 심층 상담이나 맞춤형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된다. 약물 치료, 인지행동 치료, 다른 심리행동 치료 혹은 코칭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주 특수한 상황에 대해서만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평소 일할 때는 괜찮은데 발표할 때만 불안한 사람이라면? 신체 증상을 조절해주는 약을 복용하는 방법이 있다. 개인이 추구하는 삶에 있어서 불안이 얼마나 방해가 되느냐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달라지는 것이다. 발표가 잦지 않은 사람이라면 굳이 정신과를 방문해서 불안의 근원을 찾아내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 반대로 발표를 매번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약물 치료와 함께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인지행동 치료를 병행하면 효과가 훨씬 좋아진다. 인지행동 치료란 생각, 행동, 감정, 신체 반응의 연결고리를 설명하는 것이다. 생각의 오류를 찾고, 행동 교정이나 실습을 한다. 20명 앞에서 발표를 한다고 가정하자. 19명은 발표를 잘 듣고 있고, 한 명은 하품을 하고 있다. 이때, 사회불안증이 있는 환자들은 대체로 하품한 한 명을 의식하는데 결국, 더 큰 떨림과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놓여 있는 많은 정보 중 비합리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대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생각의 오류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변화시키는 인지 재구조화가 인지행동 치료에 포함된다. ADHD 증상이 심할 경우, 인지행동 치료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약물 치료만으로 호전되지 않는 증상들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체계적인 사회불안 관리 방법을 익히는 코칭도 도움이 된다. 메모, 우선순위 정하기, 시간 관리 등의 기술이다.

스스로를 긍정하기

회사생활을 시작한 사회인들은 잘해내야 한다는 강박이나 실수에 대한 공포, 불안을 느낀다.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준비를 더 많이 하니까. 이럴 땐 스스로의 생각을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최악의 결과를 예상하는 방법이 있다. 발표를 못했다고 해서, 실수를 했다고 해서 당장 회사에서 잘리진 않는다. 생길 수 있는 최악의 일이 생각보다 큰일이 아닐 수 있고, 실제로 대개 그렇다. 그런 식으로 최악의 상황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스스로가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유도해보자. 혹은 아니라는 증거를 찾는 방법도 있다. 잘해야 된다는 강박을 공격할 수 있는 생각들을 만들어내는 거다. ‘너 겨우 1년 차잖아’, ‘네가 진짜 별로야?’ ‘원래 그런 사람 아니잖아’와 같이 부정적인 생각들을 반박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찾는다.

내 경우 전문가의 의견은 초진만으로 전부 알 수는 없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는 거였다. 원장의 조언 중 가장 마음에 들어온 것은 막연한 두려움이 만드는 회피 행동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평소 쉽게 잊어버려 스케줄 관리가 힘들거나, 꾸물거리다 막판에 할 일이 많아지는 게 고민이라면 그에 맞는 전략을 세우면 된 다. 누구나 메모하는 습관을 갖췄고 시간 관리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 됐다고 당연히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연습을 통해 전략이 생기고 습관이 만들어진다면 각자 고민하는 문제도 자연스럽게 좋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