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에서 경쟁은 불가피하며 선의의 경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여자끼리만의 경쟁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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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살의 나이로 LA의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뛰어든 로렌은 포부가 넘치고 자기주장이 확실한 여성이다. 그리고 이런 특징을 자신의 강점으로 여겼다. 적극적으로 승진에 임하고 임금협상도 당당하게 요구했다. 몇 달이 지나고 로렌은 경쟁적인 업무 환경의 단점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성 상사가 팀원들이 함께 한 업무의 공을 모두 자기가 차지하고 만 것이다. 그러자 다른 직원들은 서로 험담을 일삼고 한 사람을 몰아세워 탓하기도 했다. 로렌은 눈치를 보면서도 치열하게 일했다. 마치 승진의 기회는 모두가 아닌,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것처럼. 이런 현상을 ‘시스터후드 실링(Sisterhood Ceiling)’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성들끼리 서로를 깎아 내리며 회사에서의 성장을 방해하는 현상을 말한다. “보통 여성들끼리 경쟁해야 하는 경우, 경쟁으로 관계가 악화될까 걱정합니다. 그래서 여성들이 여성과의 경쟁을 되도록 혹은 아예 피하려고 하죠.” 하지만 반대로 커리어를 쌓을 좋은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케세비르 박사는 여성이 협력하거나 함께 경쟁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이런 사내 문화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케세비르 박사의 연구 실험에서 여성들에게 서로 협력하도록 했더니 부정적 감정을 나타내거나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는 적었다고 한다. 사내 문화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선 팀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케세비르 박사는 팀장이 모든 팀원이 조직에 기여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보다 평등한 사내 문화를 형성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회사 내 역학관계를 모든 팀원에게 이롭게 쓴다면 팀원들의 사기진작은 물론 기업 운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터에서의 경쟁이 불가피한 이유

그간 많은 여성이 고위직으로 진출했다.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 인종 형평성 센터의 숀 하퍼는 말한다. “큰 진전을 이루었죠. 하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주어진 자리가 얼마 없기 때문에 이 자리를 두고 여성들이 경쟁하는 구조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로렌 또한 자신이 유색인종 여성이라 이런 부담이 더 커졌던 것 같다고 고백한다. “흑인으로 태어나 ‘내가 노릴 수 있는 자리는 하나’라고 생각하며 자랐어요. 흑인이 나오는 TV 쇼는 하나였거든요. 제 경쟁심이 더 커졌던 이유이기도 해요. 누군가 대중의 박수를 받는 장면을 볼 때마다 ‘그래, 더 가열차게 살아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렇다. 부족한 건 승진 자리만이 아니다. 칭찬에도 인색하다. 성평등과 다양성 컨설턴트인 크리스틴 리시 박사는 여성이 혼자든 여럿이든 성취를 이루면 올바르게 공이 돌아가지만, 여성과 남성이 함께 일했을 때 칭찬은 보통 남자에게 돌아간다고 말한다. 한국도 비슷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헤드헌트 업체 스탠튼 체이스 코리아 이수진 상무이사도 이에 동의한다 “여성의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적은 게 사실이에요. 헤드헌터를 쓰는 회사들은 대개 외국계 회사이기 때문에 그나마 남녀 구분이 덜한 편이지만요. 일을 진행하다 보면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나 어학적인 면에서 여성들이 뛰어날 때가 많아요. 하지만 아직까지 조직에서는 남자를 원하는 경우가 더 많죠. 한국은 조직 자체가 남성 중심으로 짜여 있고, 남자 직원들이 여자 상사와 함께 일하는 걸 불편하게 여기는 경향도 있어요.”

여성 일자리가 부족한 건 통계만 보아도 명확하다. 통계청의 ‘2018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살펴보면 작년 8월 기준으로 여성 임금근로자는 881만 8000명이었는데, 이 중 41.2%가 비정규직이었다. 남성의 경우 비정규직 비율이 26.3%로 여성보다 적었다. 게다가 여성 비정규직 가운데 시간제 근로자는 절반이 넘는 52.4%로 남성 시간제 근로자 비율 25.8%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돈이라도 많이 받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여성의 월 평균임금은 229만8000원으로 남성임금의 67.2% 수준이었다. 여성들은 적은 자리를 위해, 정해진 여자의 자리를 두고 경쟁할 수밖에 없다.

건강한 경쟁을 위하여

업무 환경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스스로의 관점을 바꾸는 것을 시작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는 있다. 커리어 코치이자 트레이너인 28살 크리스 카스티요는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시절, 직책이 같은 암묵적 라이벌이 있었다. “서로가 자신이 뛰어나길 바랐어요. 상대는 둘 중 누가 진정한 상사냐며 묻고 다니기도 했고 가끔 제가 뒤처지는 것 같을 땐 조바심이 났죠. 저도 그런 질문을 하기도 했고요.” 상황은 둘이 마주해 속마음을 푼 이후 달라졌다고 했다.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민하던 부분도 해결했어요. 앞으로 잘해보자고도 서로 약속했죠.” 경쟁이 해가 되지 않고 서로에게 배우고 지원할 수 있도록 서로의 관점을 개선한 것이 계기다.

연봉협상이나 승진 문제에도 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남녀 간 연봉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입사할 때 회사와 벌이는 협상에서 보여주는 남성과 여성의 태도 차이다. 주로 남성이 여성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을 요구한다. 남성은 회사에서 처음 제시하는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편이다. 책 <서른, 나는 내 인생을 살기로 했다>에서 작가는 여성이 뛰어나지 못한 면은 당당히 요구하거나 협상을 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협상을 다른 사람과의 갈등으로 인식하지 않고, 대안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훨씬 편안하게 협상에 임할 수 있다. 또 협상을 잘할수록 상대방도 자신을 더 존중하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봐줄 것이다.

“여자들은 자신이 하는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성실함이 무기죠. 그런데 내 능력 이상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도전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도전해나가야 합니다. 자신의 능력과 퍼포먼스에 대해 어느 정도 포장할 줄도 알아야 해요.” 이수진 상무이사의 조언이다.

어느 조직에서나 경쟁은 있다. 그리고 여성이라고 해서 경쟁에 져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경쟁이 나쁜 것이 아니며 일의 일부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여성 임금과 리더십 격차를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창립된 레이디즈 겟 페이드의 창립자인 클레어 워셔만은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동시에 협력해야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아는 여성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챙긴다는 게 꼭 남에게 피해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또 사람 일은 모르는 거죠. 나중에 동료가 또 다른 일자리를 제안할 수도 있고 커리어에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지금 일을 하고 있다면 ‘경쟁’을 두려워하지 말길. 그것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강하게 만들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