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와의 문제를 친구와 상담했다가 싸웠다. 그럼 어디에 속내를 털어놓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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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러니까 우리 둘 사이의 일인데 왜 친구한테 이야기하는지 이해가 안 가.” 연인 간에 이런 문제로 다퉈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노벨 평화상을 줘도 괜찮을 거다. ‘연인 간의 문제는 둘이 해결해야 한다’와 ‘주변인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다’는 화두는 탕수육의 ‘부먹파’와 ‘찍먹파’만큼이나 첨예하게 갈린다. 양측 입장 모두 팽팽하다. 남북의 화해 모드에 제3자인 트럼프가 고춧가루를 뿌리는 것도 짜증나는데 연인 사이에 제3자가 개입하는 게 썩 달가울 리는 없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 입장에는 당황스럽다. 그렇게 다그치는 상대방은 아무한테도 고민을 말하지 않을까? 확성기에 대고 “여러분, 내 애인은 이게 문제입니다!” 동네방네 떠든 것도 아니고 정말 친한 친구 몇 명에게만 속내를 털어놨을 뿐인데, 철부지 같은 행동이라며 다그치니까 천불이 난다. 이런 상황이 싫은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둘 사이의 문제를 친구가 아는 게 민망하기도 하고, 최순실처럼 사사건건 개입하는 친구의 행동이 거슬리는 것도 있다. 잠자리 같은 프라이빗한 내용까지 공유하는 사이라면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마주하기가 겁이 날 때도 있다(물론 잠자리로 험담할 일은 없을 정도로 잘하고 있지만). 네이트판과 각종 커뮤니티를 보면 하루에도 수천 건씩 연애에 관한 고민 글이 올라온다. 답답하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현대판 대나무 숲에라도 털어놔야 살 것 같다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다. 이 많은 이들이 친구가 없고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걸까? 문제가 무엇인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안다. 해결책도 알고 있다. 다만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그 답을 타인을 통해서 듣고 싶을 뿐이다. 고민을 털어놓는다는 건 그만큼 가까운 사이라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글쎄, 제 남자친구가요” 할 수는 없으니까. 연인 사이에 고민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벽이 있다는 이야기다. 말해도 변하는 게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말해봤자 입 아프고 서로 감정만 상할 거라는 걸 알기에 점점 더 입을 다문다. 연인 문제는 둘이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과연 ‘상대방이 고민을 털어놨을 때 잘 듣고 공감해주었는가’, ‘이야기를 듣고 개선의 의지를 보였는가’ 등의 단순한 문제들 말이다. “요즘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은데 좀 덜 마셨으면 좋겠어”라며 어렵사리 꺼낸 이야기에 발끈해서 “그러는 너는 왜 그렇게 연락이 안 되는데?” 하면서 맞불을 놓지는 않았는지. 정치인들이 물타기로 논제를 흐리는 건 그렇게 손가락질하면서 정작 연인 간 다툼에도 똑같은 반응이 나온다.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이다. 사실상 남녀 사이는 잘 들어주기만 해도 대부분 해결된다. “나 요즘 회사에서 힘들어” 했을 때, “내가 더 힘들어”라고 말하는 건 그냥 싸우자는 소리다. 묵묵히 듣고 “그래서 내가 잘할게” 한마디면 모두가 해피엔딩인데 너도나도 칼을 들고 물 베기에 나선다. 두 사람 사이의 문제는 둘이서 해결하는 게 최선이다. 고래싸움에 등 터진 새우는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더라. 내가 많이 터져봐서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