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신예, 차세대 신스틸러로 불리며 주목받는 신인배우 세 명을 흰 배경 앞에 세웠다. 자신만의 연기색과 매력으로 충분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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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오렌지 컬러의 터틀넥 니트, 개더 스커트는 모두 바네사브루노(Vanessabruno), 운동화는 컨버스(Con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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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플리츠 롱 원피스, 트위드 재킷은 모두 잉크(Eeenk).

지난여름, 영화 <여자들>의 미스터리한 여자 ‘소니’로 등장했다.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언뜻 봐선 알 수 없다. 곧 개봉할 독립영화 <죄 많은 소녀>의 ‘경민’ 그리고 첫 장편영화 <악질경찰>의 ‘미나’로 관객들을 만나게 된다. 또 한번 많은 물음표가 던져질 것이다. 그녀는 누굴까?

영화 <악질경찰>이 개봉을 앞두고 있죠? 촬영 끝나고 뭐 하고 지냈나요? 
영화 촬영 끝난 지가 좀 됐어요. 쉬면서 스위스, 프랑스 남부를 다녀왔어요. 일을 안 하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어딘가에 놀러 가거나 무언가를 하는 적극적인 휴식을 취하기보다는 주어진 시간을 잘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를 보면서요.

인스타 팔로워 수가 꽤 많아요. 소니 씨의 연기뿐 아니라 취향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처음 인스타그램을 접했을 때 나의 일상을 공유한다기보다, 취향을 공유하는 플랫폼이라고 생각했어요.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는 직접 만나면 잘 안 하는 이야기나 잘 안 보여주는 무언가로 소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취향을 나누는 거죠. 저 역시 보고 듣는 것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어릴 적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중학생 때부터요. 그런데 어릴 땐 그저 연기가 하고 싶었지 ‘왜’ 하고 싶었는지 설명하지 못했어요. 구체적인 상상을 해봤는데요, 전 지나간 걸 좋아해요. 옛날 것들이요. 1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를 봐도 그 세상은 여전히 화면 속에 남아 있는 느낌, 그게 참 좋아요. 제가 사라져도 영화 속의 나는 계속 존재하는 거니까요. 그렇게 남아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누구의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인 거죠.

연기하면서 가장 기뻤던 적은 언제인가요? 
영화라는 게 만드는 행복도 있지만, 관객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극장에서 ‘감독과의 대화’ 하면 감독이 꼭 그런 말 하잖아요. ‘정해진 결말은 없다. 관객이 생각한 게 맞는 거다.’ 공감해요. 단편영화 작업을 했을 때 관객들 앞에서 인사도 하고, 질문에 답도 하고, 우리가 만든 영화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들이 행복했어요.

연기할 때 경계하는 것들이 있나요? 
처음에는 연기를 머리로 하는 타입이었어요. 잘하고 싶은 욕심에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분석하고 계획하고. 그런데 그럴수록 더 나아가지 못 하더라고요. 어떤 친구가 그랬어요. ‘현장에서 감독이 원하는 게 100이라면 누구는 70만 하고 누구는 130을 하는 배우가 있는데 너는 다른 숫자를 생각나지 않게 100을 한다’고요. 그래서 스스로 변화를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부러 대사도 안 외우고 현장에 가고 그랬어요. .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한 거네요 
그렇죠.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누군가 열심히 하면 주위 사람들도 덩달아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분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골라보자면요? 
연기하면서는 기쁜 순간을 하나만 꼽기는 힘들지만, 가장 최근으로 말하자면 <악질경찰> 뒤풀이하던 날이요. 좋은 말을 많이 들어서 일기도 썼어요.(웃음) 안 잊어버리려고요.

어떤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 
상대역인 이선균 선배님이 그러셨대요. 영화 마지막에 선배님 얼굴이 나오는데, 제 얼굴로 끝나도 좋았겠다고. 다들 그랬어요. 영화 주인공이 자기 얼굴이 아닌, 다른 사람 얼굴로 영화의 엔딩을 장식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큰일인지 아느냐고요.

첫 장편 영화고, 주연이니 현장이 남달랐겠어요. 
조명감독님이 마음을 많이 써주셨어요. 촬영 마지막 날에 울었는데, 사실 미안해서 운 거였어요. ‘내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 하는 마음에서요. 그런데 조명감독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너의 연기를 아쉬워하고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현장의 모든 스태프는 같은 마음이라면서 제가 아쉬워하면 화면을 함께 채워준 스태프들의 노력까지 아쉬워하는 거라고. 조금 부족한 부분은 우리가 채워 넣겠다고 하시면서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나중에 깨닫고는 그 마음에 정말 감사했죠.

영화감독 사라 폴리와 일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죠? 
그의 작품 <우리도 사랑일까>를 특히 인상 깊게 봤어요. 영화를 보면 때론 화면 속 배우들의 연기만 보일 때가 있고, 영화에 등장하는 장소만 보일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도 사랑일까>는 공감을 선택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제가 주인공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감정을 삶에 끌고 와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되는 경험을 그 영화를 보고 했어요. 굉장한 연출력이구나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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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모델로 삼고 싶은 배우가 있나요? 
좋은 배우가 너무 많기 때문에 딱 ‘이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요.(웃음) 그리고 저는 연기를 잘하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나’로 사는 거에 대한 욕심이 더 있는 것 같거든요. 내가 나로서 잘 살 때 남다른 배우가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연기 말고 관심 있는 건 무엇인가요? 
특별한 건 없어요. 영화 보고 책 보고 사진 보는 거 좋아해요. 요즘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데, 쉬는 공간을 잘 가꾸고 싶더라고요. ‘예쁘게’가 아니라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정말 잘 쉴 수 있는 편안한 장소로요. 전에는 식물을 잘 못 키우고 죽였는데(웃음) 요즘엔 꽤 잘 키우고 있어요.

영화 <악질경찰>이 곧 개봉하잖아요.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저의 첫 장편 영화예요. 처음으로 현장에 길게 출근했죠. 제가 맡은 ‘미나’는 마음 아픈 캐릭터였어요. 책임감 강하고 겁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기보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영화의 흥행 여부를 떠나, 관객들이 제가 연기한 미나에 대한 기억을 많이 가져가셨으면 좋겠어요.

평생 연기할 것 같아요? 
음, 지금은 평생 하고 싶은데요. 그런데 하고 싶지 않으면 그만둘 수 있는 용기는 가지고 있으려고요. 하루하루 나답게 잘 사는 것. 저에게는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