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개성과 재능으로 세상을 빛내는 아티스트들. 지금 대중문화 칼럼니스트들의 눈에 들어온 한 사람은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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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보컬에 건배 | 오마이걸 승희

2018년은 데뷔 이후 꽤 오랜 시간 뜬 것처럼 뜨지 않고, 뜨는 듯 아닌 듯했던 걸그룹 ‘오마이걸’에게 특별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1월 9일, 새해를 열며 발표한 ‘비밀정원’이 각종 음원 차트에서 깜짝 1위에 올랐고, 케이블 가요 프로그램에서는 최초로 1위를 했고, 지상파에서는 1위 후보까지 올랐다. 그리고 이 노래는 아직까지도 100위권 언저리에 머물고 있으니, ‘오마이걸’이라는 이름을 사람들의 뇌리에 남긴 최초의 작품이 될 것이다. 사실 ‘윈디데이’를 비롯한 이전의 발표작들이 팬들의 호평에 비해 대중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운명의 ‘표준 계약 기간 7년’의 절반을 넘어서는 4년 차는, 그룹으로서 뮤지션 활동의 결정적인 전환기가 되고는 한다. 그들의 팬으로서, 4년 차의 시작을 ‘비밀정원’으로 열게 된 것에 거대한 다행스러움을 느꼈다. 이어서 발표가 예정되었던 프로젝트 앨범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에 조심스러운 기대감을 가졌던 것도 물론이다. 오렌지 캬라멜의 아동 버전을 노린 듯한 콘셉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했다. 8비트 게임을 차용한 이미지와 앨범 수록곡의 가사를 연결한 시도는 참신했으나 ‘비밀정원’ 이전의 앨범들이 그랬던 것처럼, 보다 많은 이의 공감을 이끌어내긴 어려워 보였다. 인트로를 제외하고 완성된 세 곡으로 꾸려진 이번 앨범에서 의외로 귀에 박히는 노래는 승희의 솔로곡 ‘반한 게 아냐’이다. 바나나 알레르기가 있어 친구들과 사귀지 못하는 원숭이, 그 원숭이를 이해하려는 다른 원숭이…라는 난해한 콘셉트에서 이 노래는 돌올하게 빛났다. 가창력을 뽐낼 수 있는 발라드는 아니다. 콘서트에서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 댄스곡도 아니었다. 승희는 그저 미디엄 템포로 말하듯 노래한다. 내지르는 고음은 없다. 도리어 도입부의 저음에서 승희의 가창력은 더욱 빛나는데, 그런 가창력은 단번에 알아채기도 어렵거니와, 미니앨범의 세 번째 곡에서는 더욱 그렇다. ‘반한 게 아냐’는 세상에 흔한 ‘혼자만 알고 있는 명곡’이 될 운명이 되기 쉬울 것이다. 혼자만 알고 있는 노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나의 ‘좋아요’ 목록에 끼워두고 언제든 들으면 되니까. 그러나 승희의 목소리는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더욱 많은 것들이 승희의 목소리를 잘 알았으면 좋겠다. 승희는 1996년생이고, 허각, 존박, 장재인 등을 배출한 <슈퍼스타 K2>에 생방송 직전 라운드까지 진출했다. 2016년 방송된 걸그룹 보컬 경연 프로그램인 <걸스피릿>에 출연해 매회 상위권에 위치했다. 무엇보다 ‘오마이걸’의 메인 보컬이다. 그리고 앞으로 수많은 노래를 부를 뮤지션이다. OST이든, 개인 활동이든 그 무엇이든 뮤지션 현승희의 목소리는 더 많은 사람이 들을 만하다. 그들 귀의 행복을 위해서. 특유의 리듬감과 안정감, 고음에만 의지하지 않는 다채로운 테크닉, 최선을 다하는 무대는 가요 팬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테니까. 다섯 명, 일곱 명, 열한 명 아니 더 많은 숫자가 그룹이 되어 화려한 무대를 보여주는 지금의 가요계이지만, 솔로 가수에 대한 수요는 늘 있어왔다. 3분에서 4분이 넘는 노래를 혼자 책임지는 목소리의 존재는 음악의 기본 중의 기본일지도 모른다. ‘반한 게 아냐’는 이러한 기본의 한가운데, 승희가 있음을 증명한다. 그 증명이 반가워서 나는 승희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듣는다. 그래 나는 아무래도, 승희에게 반한 게 맞다.
– 서효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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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이듯, 진우 | 위너 진우

생각해보니 진우를 처음 본 건 아주 오래전 <WIN: Who is Next>였다. 연습생의 데뷔를 건 프로그램의 시초 격인 이 프로그램에는 아주 많은 연습생이 있었다. 진우는 잘생김이 돋보였지만 가장 시선이 가는 멤버는 아니었다. 프로그램의 A팀이 우승하며 위너로 데뷔한 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미 다른 경연 프로그램에서 주목받은 강승윤, 이승훈이 관심의 중심이었고, <쇼미더머니>로 크게 한방을 날린 스웨거 송민호가 있었다. 진우는 어느 보이 밴드에나 있는 강력한 비주얼 멤버처럼 보였고,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실제로 결혼식에 축가를 부르러 온 위너를 본 적이 있는데 신부보다 예쁜 민폐 하객을 꼽자면 단연 진우였다. 뮤지션 진우, 아티스트 진우가 눈에 들어온 건 작년 최고의 히트 넘버 중 하나인 ‘Really Really’ 때문이다. 이 노래의 킬링 파트인 ‘널 좋아해’가 바로 진우의 파트다. ‘Really Really’는 마치 첫사랑의 설렘을 담은 듯, 누군가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게 된 한 남자의 고백을 따라간다. “널 꼭 갖고야 말겠어!”라며 마초이즘으로 무장한, 때로는 폭력에 가깝게 느껴지는 사랑 노래에 피곤했던 귀에 ‘Really Really’는 초여름 바람처럼 산뜻했다. “널 향한 내 맘이 돈이면 아마 난 Billionaire”(강승윤) “덩치는 산만해도 네 앞에선 작아지네”(송민호) “혹시라도 내가 불편하면 Let me know”(이승훈)에 이은 결정적 고백 “널 좋아해” 이 가사는 진우의 담백하고 깨끗한 목소리와 창법을 타고 몇 번이고 반복된다. 그리고 그 긴 고백 후의 물은 “넌 나 어때?”까지 이 노래는 진우의 노래나 다름없을 정도로 그의 역할이 크다. 그간 많은 위너의 곡 중에서 이 노래는 진우의 목소리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고 나니 진우, 여기저기 자꾸 보인다. ‘송가락’의 초능력으로 얻어낸 <신서유기>의 스핀오프 격인 호주 여행에서도, 한복을 입고 쥐불놀이를 하다가 실화죄로 얼떨결에 수감된 <착하게 살자>에서도 그는 억지로 무엇을 하지는 않으면서도 자신만 할 수 있는 무엇을 한다. 그가 아니라면 호주에서 “얼마냐가 얼마지?”라는 아무 말을 하거나, 죄수복을 입고 눈을 꿈뻑꿈뻑하는 모습을 보며 포복절도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이거, 흔히 말하는 ‘입덕 부정기’인가. 아니다. 나는 진우의 목소리를 좋아하는 거다.
– 허윤선(<얼루어> 피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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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서지훈 | 서지훈

한 연예인의 인기도를 알 수 있는 지표는 매달 발표하는 브랜드 영향력이니 갤럽 지수니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100% 주관적으로 ‘카페 테이블 지수’라고 믿고 있다. 온라인 팬 카페의 회원 수가 아니라, 실제 스타벅스 같은 공간의 테이블에서 얼마나 이야기되고 있는지다. 2016년에는 세 테이블에 하나씩은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유 대위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것만 같았다. 그 다음에는 이영 세자가 오는가 싶더니, 도깨비가 왔다가, 온 셰프가 오고, 국민 센터가 휩쓸고 있는 가운데, 밥 잘 얻어 먹는 예쁜 동생이 지나간다. 가수나 배우가 자신이 맡은 역이나 노래보다 유명해지고 자기 이름이 브랜드가 되었다는 건 여러 사람의 커피 테이블에 앉았다 간다는 뜻이다. 97년생 배우 서지훈이 이렇게 커피 테이블을 도는 스타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여러 극에 단역이나 주인공의 아역으로 출연했고, 그때마다 하이라이트를 받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시그널>에서 처음 인주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로 출연한 서지훈은 <솔로몬의 위증>과 <학교 2017>에 각각 출연했지만 라이징 스타로 주목받던 장동윤과 김정현의 그림자에 가린 감이 있었다. 하지만 2018년부터는 사정이 다르다. 이미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정수정의 선배로 등장해서 훈남 이미지를 각인했고, OCN의 타임 슬립 로맨스인 <애간장>에서는 이정신의 어린 시절 역을 맡아 공동 주연으로 나섰으며 JTBC의 화제작 <미스티>에서는 임태경의 아역, 어린 명우 역으로 열연했다. 아직 그렇다 할 대표작을 남기지 않은 그를 기대하는 이유는 작은 역부터 차근차근히 하며 쌓아온 연기력에 더해 스타일링에 따라 악한 역과 선한 역, 소년과 청년을 오갈 수 있는 이미지 때문이다. 주로 고등학생 역을 했지만, 그중에서도 어른스럽거나 고뇌가 있는 인물이 많았고, 서지훈은 그에 어울리는 깊이 있는 마스크를 갖고 있다. 선이 뚜렷한 얼굴이지만, 웃을 때 무해하게 부드러워지는 것도 보통 대세 배우들에게 있는 특징이다. 무엇보다도 <미스티>에서 사랑하는 고혜란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걸었던 어린 소년이 보여줬던 눈빛이 인상적이다. 세대와 취향을 가리지 않고 모두 눈 속에 스토리를 담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가. 그는 곧 웹툰 원작의 <계룡선녀전>에 강소라의 상대역으로 출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커피 테이블 스타의 가능성이 있다면 증명할 기회이다.
– 박현주(소설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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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는 으뜸 | 여자친구 엄지

나는 꽃 피는 계절이 좋다. 등굣길에 보던 목련 봉오리가 생각나고, 인도에 쌓인 벚꽃잎이 날리도록 달리던 날들이 어제 일만 같아서다. 컴백을 앞둔 여자친구를 인터뷰했었다. 여자친구의 신인 시절을 화보로 담은 적도 있다. 멤버 중에는 고등학생 둘이 있었는데, 그게 신비와 엄지다. 그녀들은 기성세대에 대한 적의나 일상에 대한 반항조차 찾아볼 수 없는 십대였다. 내가 겪었고 기억하는 고등학생들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우리는 밝고 명랑한 여고생들입니다’라는 표어가 쓰여 있을 것만 같았다. 만들어진 십대 같았다. 이름이 왜 엄지예요? 만화 <까치>의 엄지에서 가져온 이름으로 회사에서 지어주었다고 했다. 1998년에 태어난 그녀가 이현세의 <까치>를 말하는 게 이질적이었다. 그녀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만화 캐릭터의 이름을 달고 데뷔했다. 그녀는 귀엽고, 발랄하며 열심히 공연했고,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꽃처럼 노래했다. 이듬해 상을 받고 해외 공연도 다니며 승승장구했지만 엄지에게서는 여전히 이질감이 느껴졌다. 물론 많은 아이돌에게 그런 느낌을 받는다. 늘 같은 미소로 빛을 발하는 존재들이니까. 나는 엄지가 그렇게 느껴졌다. 지난달에 만난 엄지는 이십대였다. 그녀는 데뷔한 지 시간이 꽤 흘렀고, 몇 개월간 휴식 기간도 가졌다. 자연스럽게 성장했고, 마음에는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이제야 나다워졌다고 말했다. 그녀는 데뷔 이후 꾸준히 엄지라는 캐릭터가 되고자 노력했다.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잘 감추어야 하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엄지라는 캐릭터와 김예원(본명)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은 듯했다. 그녀는 편해 보였다. 자연스레 젖살은 빠지고 외모는 성숙해졌다. 본래 나를 되찾고 때마침 미모도 빛을 발한다. 자신감이 생기니 매력도 드러난다. 플라스틱 잎사귀들을 제거하자 살아 있는 봉오리가 펼쳐지고, 엄지의 봄은 이제 시작된다. 목소리도 참 곱다.
– 조진혁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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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온의 마이크 | 김하온

아이러니하다. 힙합 음악은 참 좋아하는데 이상하게도 힙합의 문화는 체질에 맞지 않았다. 힙합 판을 보면 여기가 동방예의지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서로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다. 허세를 부리는 스웩, 욕설이 난무하는 디스 문화를 볼 때마다 청학동 훈장님처럼 혀를 끌끌 차곤 했다. <쇼미더머니>보다 <고등래퍼>가 더 끌렸던 건 보다 유기농 같은 힙합을 접할 수 있어서였다. 그 시절에만 쓸 수 있는 때묻지 않은 가사도 좋았고, 무대 완성도는 스테이크의 미디엄 레어처럼 적당히 익고 핏기 어린 날것의 느낌이 묻어났다. 2018년, 가장 소름 돋는 일 두 가지를 꼽자면 북한 비핵화 선언과 <고등래퍼 시즌2> 첫 번째 사이퍼 미션에서 김하온이 마이크를 잡았던 순간이다. ‘Lupe Fiasco’의 ‘Around My Way’라는 비트에 웬 순수하게 생긴 친구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어쭙잖게 마이크를 잡았다. 위압감은 없었다. 축구선수를 닮은 눈. 마치 2002년 월드컵 16강에서 박지성을 보는 듯했다. 동네 오락실에서 철권이나 할 법한 어벙한 친구가 첫 소절을 내뱉으며 눈빛이 바뀌었다. 처음에 말하듯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박자를 탔다. 소름이 돋았다. ‘우승각.’ 굳이 각도기로 재지 않아도 답이 나왔다. ‘스포츠 토토’가 아닌 ‘래퍼 토토’가 있었다면 당장 전 재산을 김하온한테 걸었을 거다. 랩을 잘하는 건 당연하고 다른 친구들과 차원이 다른 ‘멋’이 눈길을 끌었다. 대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래퍼들은 늘 화가 나 있다. 사회에 불만이 있거나 서로를 물고 뜯거나, 허세를 부리거나, 혹은 어둡고 우울하거나. “증오는 빼는 편이야. 가사에서, 질리는 맛이기에.” 하온의 가사는 욕설이 없다. 19금도 찾을 수 없다. 담백하고 깔끔하다. 자신을 여행가라 부른다. 취미는 명상, 음악을 통해 진리를 찾아 나선다는 독특한 정신 세계도 매력 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행위들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해진다. 회를 거듭할수록 더 눈에 띄었다. 다른 래퍼들이 ‘입시 미술’을 한다면 하온은 ‘고흐’나 ‘빈센트’의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차원이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다. <고등래퍼>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여전히 김하온의 음악은 음원 순위 100위권 안에 보란 듯이 안착해 있다. 외제차, 롤렉스 시계가 아닌 음악으로 말해야 진짜 래퍼다. 요즘 하온의 긍정적인 바이브에 푹 빠졌다. 내후년 즈음 태어날 내 아이의 태교 음악으로 쓸 생각도 있다.
박한빛누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