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로 살아가는 데에는 돈이 든다. 생각보다 많이 든다. 인생의 무게는 1인분이라도 가볍지 않고, 비혼을 위한 나라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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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떨어졌다. 아파트 청약 말이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살았다. 아파트 청약 신청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파트투유’ 웹사이트에 접속해 신중하게, 아주 신중하게 한 호만 당첨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바라며 청약 신청을 했지만 부동산의 신은 번번이 나를 외면하고 있다.

현재 나는 미혼이다. 요즘 말로는 비혼.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결혼을 하지 않은 건 내 선택이었다.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 없고, 결혼을 하고 싶었던 적 없고, 수많은 연애 속에서도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의 선택에 따른 삶이다. 그러나 딱 한 가지 고민이 있으니 바로 거주의 문제다. 개인 소유의 주거 공간을 확보했을 때 비로소 싱글의 삶은 최소한 안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집도 절도 가족도 없으면 어쩌냐 싶은 불안감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사실 나를 외면하는 건 부동산의 신이 아니라 정책이다. 청약에서 유리한 고점을 선점하려면 ‘점수’가 필요하다. 이 나라는 이렇게 꼭 사람을 점수화해야 직성이 풀리나. 이 점수는 결혼을 했을 때, 부양가족이 있을 때, 자식이 있을 때, 자식이 많을 때 점점 유리해진다. 내가 아무리 동네에 오래 살아도, 한 채의 집이 절실해도 나라는 나의 절실함을 알아주지 않는다. 우연찮게도 또 한번의 청약에 떨어진 날, <프린세스 메종>이라는 만화책이 내 손에 들어왔다. ‘도쿄에서 이상적인 집을 찾아 헤매는 여성들의 간절한 꿈을 그린 이야기’라는 이 만화는 각각 다른 꿈, 취향, 예산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찾기 위해 수없이 발품을 파는 과정을 그린다. 내가 수없이 봐온 아파트 평면도의 현실 버전 속에 주인공들이 생활하고 잠드는 모습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재빨리 읽어 내리며, 나는 나 같은 여성이 많다는 것에 적잖이 위로받았다.

세제 혜택도 마찬가지다. 한때 ‘결혼하지 않은 자 모두 유죄’인 것처럼 1인 가구를 대상으로 싱글세를 거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적이 있다. 결혼하지 않으면 세금도 물리고, 선거권도 박탈했던 고대 그리스 시대로 회귀하자는 건가. 그런데 사실상 싱글은 싱글세를 내고 있는 것과 다름없는데, 가족과 달리 절세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 세무학회 에서 발표한 한 논문에 따르면 월 수입을 약 3백만원으로 가정할 때 1인 가구는 두 명의 자녀를 둔 혼인 가구보다 연간 약 79만원의 세금을 더 낸다. 게다가 이기적이라는 시선까지! 한 친구는 내게 농담 삼아 “우리 아이가 나중에 너를 부양할 테니 잘 보이라”고 말했는데,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지금은 나의 세금으로 자라고 있다고.” 나도 물론 농담이었다.

세금뿐만 아니라 생활비 역시 혼자라서 적게 들지는 않는다. 이것을 가장 피부로 체험한 것은 해외에서 한 달 동안의 리프레시 휴가를 즐길 때였다. 모처럼의 휴가, 게다가 유급이라 나는 과감하게 마음에 드는 집을 빌렸는데, 하루 7만원으로 빌리기엔 너무나 좋은 집이었지만 한 달이면 2백만원이 넘는 돈이었다.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드는 수고는 1인분이나 2인분이 그다지 차이 나지 않는다. 만약 둘이라면? 숙박비는 반으로 줄고, 내가 음식을 만드는 동안 동거인은 청소를 할 수 있겠네? 장을 보는 비용도 반으로 줄어들 수 있겠네? 혹시 수입도 두 배이지 않을까? 늘 1인분만큼의 자유와 1인분만큼의 책임에서 만족감을 느껴온 내게 생존에는 결혼이 유리하다는 걸 처음 일깨워준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결혼할 생각은 없지만, 만약 당신이 싱글이라면 알아두어야 한다. 만약 아주 평범한 싱글인 당신이 당신의 이름으로 된 집을 사는 일은 낙타는 아니더라도, 풍뎅이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내 집은 도대체 어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