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크업을 한 후에 뭔가 힘이 솟는 기분, 다들 그렇지 않은가? 레드 립스틱은 여자에게 바로 그런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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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부터 나는 레드립을 좋아했다. 정확히 언제부터, 그리고 어떤 이유로 레드립에 빠지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분명한 건 빨간 립스틱을 바르면 비로소 내 모습을 찾은 기분이 든다. 물론 모두가 공감하진 않을 것이다. 특히 뷰티와 페미니즘 간에 묘한 긴장감이 도는 요즘은 더더욱. 아마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것을 가볍고 시시하게 여기는 인식이 일부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인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여자들이 지니고 있는 여성의 신체, 이미지의 대부분이 의외로 남자들의 시선으로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자이기에 스스로 느끼는 기분과 타인을 통해 보여지는 이미지 사이, 어떤 지점에 설 것인지는 순전히 개인의 몫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내 마음이 맞는지 계속 질문을 한다. “내가 이걸 좋아하는 이유는 정말 내가 좋아해서일까? 아니면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일까?” 하고 말이다. 남편은 내가 화장기 하나 없는 맨얼굴일 때 제일 예쁘다고 말하는 걸 보면 내가 레드립을 바르는 건 진정 나를 위해서가 분명하다. 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처럼 레드립을 사랑하는 거지. 그래! 레드립은 내게 옳다.

내가 레드립을 사랑해 마지않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누구에게나 어울린다는 점이다. 레드립이라면 모두 함께 즐기고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도 있다. 2017년 우먼스 마치(Women’s March, 약 100만 명이 여성 인권 운동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기 위해 모인 시위)가 완벽한 사례다. 많은 사람이 새벽 3시에 워싱턴 D.C.로 모였다. 풀 메이크업에 레드립도 역시 빠지지 않았다. 모든 일이 끝난 시각, 성황리에 끝난 행사에 모두가 감격했고 맥의 루비 우를 바르고 16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생기가 넘치는 수많은 얼굴을 보고 두 번 감격했다. 각자가 걸어온 인생도, 피부톤도 달랐지만 레드립으로 우리는 하나가 됐다.

내가 레드립을 바를 때 느끼는 고충 중 하나라면 립스틱을 지운 후에도 입술 중앙에 그대로 남는 립스틱 자국이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이 문제를 해결하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 액체나 젤 형태인 립스테인을 입술 안쪽에 미리 바르는 것. 그런 다음 레드립을 바르면 지워져도 경계가 생기지 않는다. 지속력이 필요할 때는 립스틱을 얇게 바르고 살짝 닦아내고 다시 바르기를 몇 번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입술이 건조해지면 세포라의 크림 립스테인 리퀴드 립스틱의 플레임 레드(Flame Red)를 한번 슥 발라준다.

그렇다. 레드립은 내 분신과도 같은 존재다. 하지만 가끔 레드립을 바르지 않은 맨얼굴이어서 또 그만큼 기분 좋을 때도 많다. 예를 들어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침이 그렇다. 단지 어떤 메이크업 제품을 발랐느냐에 따라 내 존재감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메이크업을 하지 않으면 집 앞 편의점도 가지 못한다’, ‘속눈썹을 붙여야만 자신감이 생긴다’, ‘립스틱을 바르지 않으면 발가벗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래선 안 된다. 기억하라. 메이크업이란 기운을 나게 하는, 힘이 솟게 만들어주는 도구에 그쳐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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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레알 파리의 샤인 온 라커 스틱 에나멜 레드 입술에 녹아들 듯 발리는 텍스처가 선명하게 표현되어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입술로 만들어준다. 3g 1만9천원대.
2 커버걸의 케이티 켓 펄 인 레디 투 파운스 펄감이 살아 있는 크리미한 질감의 립스틱. 3.4g 가격미정.
3 맥의 레트로 매트 립스틱 루비우 강렬한 블루빛 레드 컬러가 볼드한 느낌으로 발색되어 오래도록 지속된다. 3g 3만원.


RED-LIP QUEEN

레드립은 파워, 승리, 반항, 그리고 물론 미인의 아이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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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370 고대 이집트의 왕족들은 딱정벌레를 갈아 입술을 붉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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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s 비비드한 레드 립으로 할리우드를 뒤흔든 마릴린 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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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s 마돈나는 맥의 러시안 레드 립스틱을 바르고 금발, 야망, 섹시함의 키워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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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s 과장되게 라인을 그린 다음 꼼꼼하게 채운 레드립 메이크업으로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여성상을 대표한 김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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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지금 가장 핫한 레드립의 트레이드 마크는 현아. 모던하면서도 강렬한 레드립 제품을 애용해 매력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