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9-204-1

폭력의 역사

열세 살 소녀 팡쓰치는 문학 선생 리궈화에게 강간당한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믿을 수 없고, 또한 정면으로 바라볼 수도 없었던 소녀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선생의 말을 믿기로 한다. “선생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몇 번씩 되뇌지만 5년 동안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하는 동안 그녀의 미약한 삶과 영혼은 망가져간다. 게다가 팡쓰치는 한 명이 아니다.

대만 작가 린이한이 이 소설을 출간하자 대만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팡쓰치는 누구인가? 실제로 일어난 일인가? 출간 석 달 후 작가는 자살했고, 유족은 이 소설이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했다고 밝히며 가해자로 유명 강사를 지목했다. 대만 수학능력시험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총명한 린이한은 자신의 삶을 견디지는 못했다. 책의 제목인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지독하게도 아픈 농담이다. 첫사랑일 리 없고, 낙원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문학을 좋아해 섬세했고, 똑똑하고 자존심이 강한 소녀가 여자에게 강압적이기로는 한국 못지않은 대만에서 자신의 성폭행 경험을 털어놓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가족도 소녀의 편은 아니었다. 이 책에는 크게 네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팡쓰치, 쓰치의 친구 이팅, 이들과 친한 이원 언니, 그리고 리궈화에게 강간당한 후 대학생이 된 샤오치가 있다. 이들은 제각기 성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다. 폭력 남성을 떠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는 이원이 있고, 세상에 고발했지만 세상으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하는 샤오치가 있고, 모든 걸 껴안고 다만 살아가려는 이팅이 있다. 그리고 팡쓰치는 미쳐버렸다. 작가는 이들에게 각각 자신의 조각을 나눠주고는 세상을 등졌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척하며 살 수는 없다고, 세상에 비명 같은 책 하나를 남긴 채 말이다. 너무나 여성의 삶이기에, 또한 문장과 깊이는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이 책은 더없이 잔인한 책이 된다. 린이한의 가해자로 지목된 강사는 혐의를 부인했고 결국 불기소 처분되었다.

 

0629-204-2

작가 옆의 사람들

문득 보면 재능을 수십 가지나 가진 사람들이 있다. 최동민은 거기다 겸손하고 인품까지 좋아서, 샘을 내기도 그런 사람이다. <더 드라마>, <책 읽는 라디오> 등의 팟캐스트와 오디오 클립 등의 출연자이자 제작자인 최동민은 위대한 작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그럼에도 가려진 사람들을 <작가를 짓다>를 통해 조망한다. 로맹의 어머니 니니와 레이먼드 카버의 편집자 리시, 오에 겐자부로에게는 장애를 가진 아들 히카리가 있었던 것이다. 어떤 세계도 혼자 완성되지는 않는다는 걸 깨닫는 건 작가의 팬에게는 작가를 좀 더 이해하는 기회를 주고 대개는 평범한 사람인 우리를 위로한다. 그렇게 우리는 세계의 일부로 살아가는 것이다.


NEW BOOK

0629-204-3

<당선 합격 계급>
점점 잊혀지고 있지만 장강명은 본래 기자 출신이다. 이 책은 르포, 즉 기자로서의로 경험과 노하우가 빛나는 책이다. 주제는 ‘문학상’이다. 4개 문학상을 석권하며 유수의 출판사들이 탐내는 작가가 된 장강명이 문학공모전이라는 제도와 시스템의 현실과 한계를 낱낱이 고발한다.
저자 장강명 출판사 민음사

 

0629-204-4

<서커스 나이트>
요시모토 바나나의 장편 소설. 어린 딸과 살고 있는 사야카는 사물을 만지면 이미지가 떠오르는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집마당에 중요한 게 묻혀 있다는 편지가 온다. 모두에게 숙명처럼 주어지는 죽음을 주제로 바나나 특유의 스토리텔링이 시작된다.
저자 요시모토 바나나 출판사 민음사

 

0629-204-5

<고사리 가방>
기대 없이 페이지를 펼쳤다가 어느 순간 콧날이 시큰해졌다. 서울 살이 중인 딸이 어머니가 사는 고향 제주에 방문해 함께 고사리를 캔 하루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땅에서 움튼 귀여운 고사리, 해석이 달린 제주 방언. 억지로 메시지를 전하지 않아도 담담하게 잊고 있던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한다.
저자 김성라 출판사 사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