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켜를 쌓은 동인천의 옛 건물을 따라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세월을 딛고 동인천만의 색깔을 입은 건물들은 과거와 현재, 사람과 도시를 이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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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로 타임슬립, 인천아트플랫폼

영화 <뷰티 인사이드>와 드라마 <도깨비>를 봤다면 인천아트플랫폼이 낯설지 않을 거다. 인천 중구 해안동 일대는 1930~40년대에 지어진 건축물이 잘 보존된 구역이다. 구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개항기 근대 건축물과 인근 건물을 매입해 조형적 가치를 인정받은 건축물을 세심하게 매만졌다. 그 결과 창작스튜디오, 전시장, 공연장, 생활문화센터 등 즐길 거리 충만한 총 13개 동이 조성됐다. 원형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한 덕에 이곳에 온 방문객들은 개화기로 타입슬립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붉은 벽돌로 된 외벽은 ‘인생사진’을 건져볼 만한 근사한 배경이 돼주기도 한다. 전시장과 공연장은 수준 높은 행사들을 마련해 방문객과 시민들이 언제라도 와서 작품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다. 야외에도 조형물과 예술작품들이 걸려 있어 13동을 한 바퀴 산책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눈이 즐겁다. 건물 한편에는 건물의 과거 모습을 작게나마 사진으로 걸어놔 현재 것과 비교해서 볼 수도 있다. 인천아트플랫폼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각 동의 옛 모습과 특징을 비포 & 애프터로 친절히 알려주는 카테고리가 있으니 참고하자.

주소 인천 중구 제물량로 218번길 3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중구 제물량로 218번길 3 문의 032-76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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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이자 등록문화재, 카페 팥알(Pot R)

120년 된 일본식 목조건물의 모습을 간직한 카페다. 아니, 카페라기보단 당시의 인천을 더 잘 기억하기 위해 꾸린 역사적 공간이라고 말하면 정확하다. 이곳은 근대 개항기에서 해방까지 인천항을 무대로 어업을 했던 하역회사 사무소이자 주택으로 1880년대 말~1890년대 초 지어졌다. 1층은 사무소, 2~3층은 주거공간으로 쓰였다고 한다. 2012년 8월,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가장 공들인 부분은 원형을 보존하는 거였다. 한국인 노동자가 착취당한 맘 아픈 역사가 깃든 곳이지만, 그때의 역사도 안고 가야 한다는 카페 팥알 대표의 뜻이 있었다. 그 노력으로 2013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건축학도들에겐 카페 팥알이 살아 숨쉬는 레퍼런스이기도 하다. 복도를 통해 중정으로 향하는 근대 일본의 점포주택 양식인 마치야 양식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뉴는 개화기 당시 이 지역에서 팥빙수, 팥죽, 나가사키 카스텔라를 즐겨 먹었다는 옛 문헌의 기록을 참고해 그대로 꾸렸다. 계절과 상관없이 내기 때문에 한여름에도 이 집의 단팥죽을 먹으러 걸음을 하는 손님이 많다. 일본식 목조건물에서 먹는 팥빙수의 맛이 달큼하기도, 씁쓸하기도 할 것이다.

주소 인천 중구 신포로 27번길 96-2 문의 032-777-8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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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도시를 이어주는, 아카이브카페 빙고

차이나타운에서 조금 비켜선 신포동 좁은 골목길. 1920년대에 지어진 얼음 창고를 개조한 작고 아늑한 복층 카페가 숨어 있다. 재생 건축을 공부한 주인이 인천의 오래된 건물을 조사하다 보석 같은 이곳을 발견했고, 한때 버려진 창고는 쓸모 있는 카페로 재탄생했다. 나무, 흙 등 자연에서 재료를 충분히 활용해 집 같은 편안한 정서의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14평밖에 되지 않지만, 천장이 뚫려 있어 비좁다는 느낌이 덜하다. 건축 자재를 자세히 살펴보니 헌것과 새것이 함께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 모습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는 상징적 의미로도 다가왔다.

소규모 독서 모임이 가능한 1층의 긴 나무 테이블 위에는 인천 문학전람부터 인천의 골목골목을 소개한 책까지 서점에서는 구하기 힘든 인천 관련 책을 모아놨는데, 가게 이름에 왜 아카이브가 들어가는지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차를 마시고 가는 카페가 아닌, 여기서 여러 사람이 모여 재밌는 일을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인천의 다채로운 매력을 인천시민들도, 방문객들도 알아주길 바라는 주인장의 마음이다. 그러고 보니 카페 입구에 인천의 각종 행사 포스터가 가득 붙어 있었다.

주소 인천 중구 개항로 7-1 문의 032-772-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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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옛 손님, 브라운핸즈 개항로

4층짜리 노란 벽돌 건물은 원래 이비인후과였다. 약 1960년대 말부터 2002년까지 누군가의 진료를 봐주던 이곳은 과거 병원이었지만, 그 이후 20년 가까이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텅 빈 공간이기도 했다. 초록색 병원 간판을 떼내고 브라운핸즈라는 커피향 나는 간판을 단 건 4개월 전쯤이다. 수기로 쓴 진료기록부나 제약회사 이름이 새겨진 나무 의자, 각종 자료를 넣어 놓던 녹슨 캐비닛, 파벽돌과 바닥까지 원형을 거의 다 살린 인테리어 덕에 이곳을 병원으로 기억하던 동네 어른신들도 반가워한다고.

브라운핸즈의 다른 매장은 보통 리브레 원두를 쓰지만, 개항로점에서는 인천 지역의 로스팅 업체의 원두를 사용한 커피를 맛볼 수 있다. 빵은 매일 아침 가게에서 직접 굽는다. 베이커리 메뉴를 점차 늘릴 예정이라고 하니 빵순이, 빵돌이라면 주목해보자.

인천에서 나고 자란 인천 토박이인 브라운핸즈 개항로점 대표는 자신이 살던 동네에 젊은 친구들이 다시 모여 좀 더 활기를 띠길 바란다. 폐허로 방치된 버스 차고지, 100년 된 병원 건물 등 세월의 흔적을 활용해 따뜻한 정서의 건물을 디자인하는 브라운핸즈와 함께 개항로점을 낸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주소 인천 중구 개항로 73-1 문의 032-777-7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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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 있어요, 인천여관 X 루비살롱

가게 이름만 보고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인천여관 X 루비살롱은 음반 제작사 ‘루비레코드’가 운영하는 복합공간이다. 루비살롱은 루비레코드의 전신. 10년 전 부평을 베이스로 다양한 뮤지션들이 음악과 술로 밤을 지새우곤 했던, 그 10년을 기념하기 위해 인천여관 X 루비살롱이 탄생했다. 루비살롱과 이름을 나란히 한 ‘인천여관’의 정체는 바로 이 건물이다. 인천여관은 과거 60년대 간판을 달고 실제로 영업을 했다. 하지만 후미진 골목 안쪽에 있어 운영이 어려워져 빛을 보지 못하고 버려졌다. 이곳의 쓸모를 단박에 알아본 건 루비레코드 대표와 초기 인테리어를 담당했던 건축 디자이너다. 손님을 받던 작은 창구, 벗겨지고 빛바랜 벽면의 페인트 흔적, 여관 손님이 몸을 담갔을 목욕탕 등 기존 장소의 흔적들을 상당히 살려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간을 완성했다. 2층은 전시공간으로도 쓰인다.

음반 제작사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공간인 만큼, DJ부스 등 음악을 즐기기 위한 장치들도 곳곳에 포진해 있다. 구하기 어려운 희귀 음반과 그의 짝꿍인 독립출판물도 판매한다. 낮술을 부르는 옥상 풍경에는 인천여관 루비살롱만의 레시피로 만든 달곰한 블러디 메리와 함께할 것. 시그니처 메뉴는 더치 라테 위에 크림을 올린 ‘더치 아인슈페너’, 숙취 해소에 좋은 티로 만든 ‘노랑초록’이다.

주소 인천 중구 신포로 31번길 20 문의 070-7757-4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