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액티비티가 다 모여 있다. 호기심 많고, 경험을 소비하길 즐기는 이들은 요즘 ‘프립’을 한다기에 에디터가 체험에 나섰다. 모르는 사람과 수평어로 깊은 대화도 나누고, 팀을 짜 맥주를 만들며 추억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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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액티비티, 프립

각종 모임 앱을 섭렵하고 있는 친구가 어느 날 ‘인생 앱(App)’을 찾았다며 유난을 떨었다. 처음에는 시큰둥했다. 취향과 취미를 공유한다는 취지의 모임 앱이라면, 별 재미를 못 보고 삭제한 지 오래니까. 어느 순간 활동보다 인간관계에 신경을 쏟는 것 같아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친구가 ‘인생’까지 걸고 추천한 앱은 ‘프립(Frip).’ 잠, 음주, TV 시청이 여가의 전부였는데, 이 앱을 알고 난 뒤 집 밖을 나와 생산적인 취미 활동을 갖게 됐다는 거다. 체험은 서핑, 클라이밍 같은 아웃도어 액티비티부터 문화, 예술, 지식 관련 액티비티까지 무궁무진한데, 특별한 준비물 없이 몸만 가도 되는 체험도 있다고. 매번 다른 프로그램을 신청해 즐기고 있는 친구는 ‘취미 부자’가 될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의미에서 ‘소셜’이라는 키워드는 가져가되 ‘체험’과 ‘배움’에 방점이 있는 거라면 경험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프립은 스마트폰을 매개로 새로운 사람들과 야외 활동을 통해 소통하는 플랫폼 서비스다. 액티비티를 좋아하면 누구나 프립의 호스트가 될 수 있고, 사용자는 다양한 액티비티 프로그램을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다. 한마디로 프립은 액티비티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호스트와 참가자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거였다.

앱을 내려받고 할 만한 콘텐츠를 찾아보니, 여러 콘텐츠가 눈에 쏙 들어왔다. 프로그램 콘셉트가 명확하고 구체적이었다. 이를테면 단지 ‘요가 클래스’가 아닌, ‘일요일 오전 11시에 한강에서 즐기는 브런치 요가’ 같은 식이었다. ‘다 마신 캔으로 네온 조명 만들기’ 같은 클래스도 재미있어 보였다. 내가 만든 조명으로 인테리어도 하고 재활용도 할 수 있으니까. 마음 근육을 다질 수 있는 대화&상담 프로그램에도 눈길이 갔다. 달리고, 헤엄치는 프로그램만 있었다면 확실히 흥미가 떨어졌을 거다. ’퇴근 후 나를 위한 시간’, ‘훌쩍 떠나는 주말여행’, ‘미세먼지 없는 실내에서 놀기’ 등 테마별 큐레이션도 상당히 잘돼 있었다. 마치 액티비티 웹 매거진을 보는 것 같달까? 잡지 보듯 편하게 슥슥 넘기며 새로운 바깥 취미를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미 다양한 취미를 가진 이에게도, 취미는 ‘독서하기’ 말고 내세울 게 없는 취미 극빈자에게도 유용한 앱이 될 것 같았다. 프립은 참가 방식이 매우 간단한 편으로, 참가 신청과 함께 참가비를 결제하면 된다. 따로 호스트와 연락을 주고받는 등의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된다. 인기 프로그램은 대기 신청을 해야 하니 참고할 것. 친구나 연인끼리 가도 좋지만 혼자 가서 다른 참가자들과 추억을 쌓는 쪽을 추천한다. 에디터는 관심 있던 2가지 프로그램을 체험해봤다. 나 홀로 갔지만 외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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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냥 만나, 수평적 관계 체험하기

처음 만난 사람이 내게 반말을 하는 건 상당히 언짢은 일이다. 상대가 다짜고짜 반말을 해오면 제아무리 평화주의자라도 발끈하는 게 보통인데, 웬걸. ‘말을 놓는 것’이 규칙인 용감하고 대범한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일명 ‘수평어로 대화하기’다. 솔깃했다. 인간관계의 시작에서 필수적으로 밟는 절차(나이 묻기, 호칭 정하기)를 과감히 생략하고, 수평적 관계에서 동등하게 대화를 나눈다니! 공식 프로그램 이름은 ‘그냥 만나, 여의나루에서’다. 저녁 8시 반부터 10시 반까지 그냥 여의나루에서 만나 모르는 사람과 반말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이 프립의 내용이다. 특별히 액티브한 요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소 늦은 시간에 시작하긴 하지만 수평어 체험이라는 키워드는 부정할 수 없이 흥미롭게 들렸다. 21명이라는 다소 많은 정원은 스케줄이 올라온 지 하루도 안 돼 다 찼다. 바로 다음, 그 다음 일정까지 대기 신청이 떴다. 수평어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참가 전에 할 일이 하나 있다. 이름 혹은 불리고 싶은 별명, 나를 소개하는 단어, 얕은 질문과 깊은 질문, 지향하는 생각과 가치관을 메모장에 적어(물론 반말로)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공유하는 거다. 에디터도 모임 시작 한 시간 전에 위의 ‘자소서’를 작성해 채팅방에 띄웠다. 고백하자면, 쓰는 데 오래 걸렸다. 10분이면 되겠지 했는데 30분이나 걸렸다. 일회성 만남이지만, 내가 가진 생각을 허투루 드러낼 순 없었다. 채팅방에 올라온 다른 참가자들의 글을 찬찬히 읽어보고는 반갑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우리 모두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만나면 어떤 말로 격려해줄지, 어떤 말로 위로받게 될지 생각해봤다.

모임 장소는 여의나루역 3번 출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계단 앞이었다. 길이 조금 헷갈려 호스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심코 존대를 했더니, ‘안녕?’이라는 짧은 말이 돌아왔다. 이미 수평어 대화가 시작된 거였다. 에디터도 곧장 말을 놨다. 이래도 되나 싶으면서도 의외로 편했다. 처음에는 참가자들끼리 둥그렇게 모여 불리고 싶은 이름과 프립 참여 계기를 편하게 주고받았다. 동네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바람을 쐬고 싶어서, 낯가림을 극복하기 위해, 그저 호기심에…모인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호스트의 매끄러운 진행으로 약간의 어색함을 녹이고, 둘씩 짝지어 마포대교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두 시간의 ‘사람 여행’이 시작됐다. 수평어 사용에는 두 가지 약속이 있다. 1. 나이 묻지 않기. 2. 따스하게 이름 부르며 말 놓기. 대화는 꽤 순조로웠다. 여의나루로 오기 전 미리 준비해온 자소서를 참고해 ‘오늘 뭐 먹었냐’는 가벼운 이야기부터 ‘살면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엇이냐’는 제법 무게 있는 이야기까지, 여러 농도의 대화가 무람없이 오갔다. 둘 혹은 셋씩 대화 그룹을 바꿨다. 21명의 참가자와 전부 대화를 해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에디터는 2시간 동안 5명과 소통할 수 있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와 서로 인생 영화를 공유하기도 하고, 우연히 비슷한 업계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 입에 모터라도 단 듯 열띤 수다를 떨기도 했다. ‘체력이 안 좋아 정신력도 나빠지는 것 같다’는 나의 고민을 듣고, 자신의 경험을 살려 성심껏 조언해주는 모습엔 살짝 감동도 했다. ‘내 취향’이 아닌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집중도가 좋았다.

수평어가 가진 힘일까? 두 시간은 금세였다. 대화시간을 모두 마쳤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단연 ‘힐링’이었다. 신상에 관한 어떤 선입견도 없이, 친구처럼 이야기할 수 있어 좋았다. “일상 속 많은 만남에서 일어나는 수직적 관계에서 잠시 도망해 리프레시하고 갔으면 좋겠다”는 호스트의 바람대로 여의나루에서 2시간 동안 잘 쉬다 온 것 같다. 여의나루의 밤은 생기 있게 아름다웠다. ‘그냥’ 만나길 잘했다.

한줄평 여의나루가 여행지로 느껴지는 참신한 아웃도어 프로그램.
체험팁 물을 준비해가자. 2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나가다 보면 목이 탄다.
누구에게 추천 퇴근 후 늦은 저녁,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대화하고 싶은 사람.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며 고민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사람. 수평어 문화를 체험해보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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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알못’이어도 괜찮아, 수제 맥주 만들기 

이른바 ‘맥알못(맥주를 알지 못하는)’이다. 메뉴판에 나열된 수제 맥주 이름을 보면 눈빛이 동요하고 만다. 수제 맥주가 메가 트렌드인 요즘, 맥주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3시간짜리 속성 홈 브루잉을 체험해보기로 했다. 후기가 99개 이상인 프립의 인기 콘텐츠라 믿고 신청했다. 오후 12시부터 3시 반까지 꽤 긴 일정이었다.

수업은 송파구 삼전동에 위치한 아이홉(IHOP) 맥주 공방에서 이뤄졌다. 아이홉 맥주 공방은 국내 최대의 공방이라고 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풍경은 역시 맥주였다. 전 세계에서 들여온 다양한 맥주가 진열돼 있었다. 병과 라벨 디자인만 봐도 개성이 느껴졌다. 문득 궁금했다. 여기에 맥주 맛 모르는 사람은 나뿐일까? 맥주 마니아들만 온 건 아닐까? 옆 사람에게 말을 걸어봤다. 맥주를 좋아해서 온 거냐고. 다행히 동지였다. 술은 잘 못 마시지만, 체험 자체가 즐거워서 참가한단다. 어쩐지 용기가 났다. 맥주 만들기에 앞서 맥주의 어원부터 종류에 이르기까지 30분 정도 강의를 들었다. 일종의 맥주 역사 수업이었다. 집중해서 수업을 듣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맥주는 물, 맥아(몰트), 홉, 효모가 주원료다. 이 네 가지 원료로 만든 맥주만 진정한 맥주로 인정한다는 독일의 ‘맥주순수령(1487년)’은 무척 흥미로웠다. 맥주 공화국다웠다. 그보다 더 오래전, ‘변질된 맥주를 팔거나 제조한 사람은 술통에 빠뜨려 익사시킨다’는 함무라비 법전의 살벌한 맥주 관련 규율은 그 옛날 맥주 맛에 대한 고집과 뚝심을 가늠하게 했다. 맥주의 세계는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빔프로젝터 스크린에 빼곡하게 적힌 맥주 계보를 보며 ‘전 세계 맥주를 하루에 하나씩 먹어도 다 못 먹고 죽는다’는 아이홉 맥주공장 대표의 말을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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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수업이 끝난 뒤엔 맥주로 목을 적셨다. 각각 개성이 다른 4종류의 맥주 ‘바이젠’, ‘스타우트’, ‘페일에일’, ‘IPA’를 시음했다. 이 중 가장 인기가 좋았던 2개의 맥주를 선택해 만들었다. 에디터는 쿰쿰하게 효모 향이 살아 있는 스타우트가 맘에 들었다. 12명의 참여자를 두 조로 나누고 본격 체험에 들어갔다. 캔에 든 맥아 추출물을 끓는 물 20L에 탈탈 털어 넣어 잘 저어주는 것부터 시작했다. 직접 보리를 곱게 갈고 끓이고 걸러주는 작업을 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에디터가 체험하는 프로그램은 속성반이므로 맥아 추출물을 사용했다. 캔에 묻어 있는 원액을 살짝 맛봤다. 한약 마실 때의 표정이 나왔다. 맥주의 쌉싸래한 맛과 아로마는 이 맥아 때문이라는 걸 확실히 배웠다. 맥즙은 한 시간 가까이 저어가며 끓여야 한다. 시간에 맞춰 홉도 투하했다. 기다리는 동안 조원들과 맥주 취향도 나누고, 다른 조의 맥주 제조 모습도 구경했다. 틈틈이 시음 맥주를 홀짝였는데, 안주를 사 오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다음에 할 일은 냉각 기구를 이용해 뜨거운 맥즙을 약 20℃까지 식혀주는 거였다. 생각보다 힘이 들어가는 데다, 온도도 빨리 안 내려가서 조원끼리 교대하며 팀워크를 발휘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식힌 맥즙을 발효통에 쏟아붓고, 그 위에 드라이 이스트를 뿌려주는 것으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이제 모든 건 효모에 달렸다. 조원끼리 모여 효모들이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맥주의 신’에게 기도했다. 이대로 일주일간 1차 발효를 한다. 술은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했던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집에서 10일 정도 2차 발효를 거쳐야 한다.

맥주를 만드는 3시간 반 동안의 과정에서 딱히 특별한 점은 없었다. 수업 시간은 길었으나 과정이 복잡한 건 아니었다. 그저 때맞춰 재료를 넣고, 정성껏 끓이고, 젓고, 기다리고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옆자리의 참가자가 말했듯 체험 자체에 의미가 있었다. 지금까진 맥주를 무심히 들이켤 줄만 알았다면, 이젠 뭘 좀 알고 마실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말이다. 수제맥주 만들기는 완벽히 체험형 프로그램이었다. 그래서 만족스럽다. 한 사람당 페트병 3병 정도의 맥주를 가져올 수 있는데, 프립을 소개해준 친구와 나눠 마실 생각이다. 기다림의 맛은 어떨까 궁금하다.

한줄평 맥주 덕후와 맥주 초보자를 모두 끌어안는 체험.
체험팁 맥주를 시음할 때 안주가 없으면 섭섭하다. 안주용 과자를 챙겨가자.
누구에게 추천 에일과 라거의 차이점도 모르는 맥주 초보자. 시중에 판매되는 맥주 맛에 질린 사람. 맥주가 만들어지는 노고의 과정을 알고 싶은 사람. 다양한 세계 맥주를 살펴보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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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반 동안의 수제 맥주 만들기는 맥아 추출물을 끓는 물에 넣어 잘 저어주고, 때에 맞춰 홉을 넣고, 맥즙을 식혀주고, 드라이 이스트를 넣는 것으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