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은 더 이상 유별난 것이 아니다. 시대는 변했고 결혼을 하든 그렇지 않든 개인의 선택은 존중 받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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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비혼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영원한 네버랜드의 피터팬처럼 나이의 흐름에서 비켜 살고 싶은 내게도 점차 주위 친구들의 결혼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안정된 직장을 다니고, 기복 없는 연애를 하고 있다면 그 다음 단계로 결혼을 생각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인 것처럼 보였고, 서른의 경계에 선 아슬아슬한 나이 역시 결혼을 압박해오는 것 같았다. 이렇게 정말 결혼할 나이가 된 건가 싶어 울적하다가도 그 감정은 잠시뿐, 딱히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영원히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굳힌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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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대해 미적지근한 입장을 가지게 된 건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이 많기 때문이다. 혹자는 나이가 들면서 자기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자연스레 포기하게 된다고 하던데, 무언가를 포기하기엔 나는 여전히 욕심이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으며, 그걸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 지금은 의사 결정을 할 때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나 자신’이지만, 결혼을 하고 인생의 동반자가 생기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그 사람의 입장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게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물론 나의 결정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게 한편으로 두렵지만, 나에게는 그 두려움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했을 때의 답답함이 더 크다. 보고 자란 환경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20대 중반에 입사한 이 회사에서 결혼하지 않은 선배를 수없이 봤지만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결혼을 하지 않아도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즐겁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은 나를 바쁘게 할지언정 심심하거나 권태롭게 하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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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 찾아올지도 모르는 외로움을 마주하기란 여전히 두렵다. 지금이야 당연히 싱글인 친구가 더 많고, 그들과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며 킬킬거리는 순간을 사랑한다. 하지만 언젠가 나만 두고 친구들이 모두 떠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쓸쓸하다.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거고, 지금 비혼을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언젠간 결혼할 수도 있으니까. 물론 혼자서도 잘 지내고, 혼자라는 게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두렵지 않겠지만, 나는 사람과 부대끼는 걸 너무 좋아한다. 나중에 아무도 나와 놀아주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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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는 변한다. 생각해보면 아주 어릴 때는 결혼하지 않은 선생님에게 ‘노처녀 히스테리 부리는 거 아니야?’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던 것 같다. 그게 잘못된 거라는 생각도 전혀 없었을 뿐 더러 당시에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를 노처녀라고 규정하며 외모나 성격에 결함이 있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곤 했으니까. 그때에 비하면 ‘비혼주의자’에 대한 편협한 프레임이 많이 사라졌다는 긍정적인 변화 역시 비혼을 삶의 방식 중 하나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해주었다. 한편으로는 비혼주의를 선언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분위기가 묘한 쾌감을 주기도 한다. 그건 사회적인 기준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앞으로도 결혼을 선택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개인의 선택이 존중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비로소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으로서 온전하게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