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학이었던 미니멀리즘의 시대를 지나 온몸을 로고로 휘감는 것이 ‘힙!’한 셀러브리티의 필수 조건이 된 지금.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의 이름을 가슴팍에 가방에, 신발에 달고 노출하는 데 거부감이 없다. 아니 로고로 온몸을 감싸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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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없는 폭발적인 매출 상승을 일으킨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아재 패션’의 전유물이었던 커다란 로고백과 로고벨트를 유행 아이템으로 만들더니, 유명 관광지나 뉴욕 다운타운 등에서 불티나게 팔리던 ‘짝퉁 구찌’ 티셔츠를 보란 듯이 진짜로 만들어 히트시켰다. 그 때문일까. 2018 봄/여름 시즌에도 여봐란 듯 커다란 로고를 새긴 스웨트 셔츠를 또다시 선보였다. 그리고 이러한 로고는 로에베, 발렌시아가, 베르사체와 모스키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로고 플레이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로고를 패턴화시킨 모노그램의 활약까지 두드러진 것. 먼저 구찌는 빈티지 플리마켓에서나 겨우 구할 수 있을 법한 ‘옛날식’ 모노그램 패턴을 백에 더해 새로운 컬렉션을 출시했다. 지금 엄마의 옷장에서 꺼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빈티지한 디자인으로 말이다. 모노그램을 다시 소환한 건 크리스찬 디올도 마찬가지. 명품 중고 시장에서 본 그 로고가 지난 시즌에 이어 큼직한 캔버스 백에 리바이벌된 것이다. 게다가 펜디는 상징적인 ‘더블 F’ 로고를 레디 투 웨어까지 적용하는 등 본격적인 모노그램의 서막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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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반복적인 로고에 다시금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가장 먼저 물질주의와 소비주의가 팽배해 과시적 스타일이 주를 이룬 80년대식 패션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직업적 성공과 경제적인 부에 가치를 둔 시절, 자신의 성공과 부를 여과 없이 드러내던 시대를 다시 그려낸 것. 지난 시즌부터 급물살을 탄 1980년대식 스타일이 이번 시즌도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또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아카이브 찾기도 한몫한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브랜드의 간극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거니와, 브랜드를 재정비하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로고만큼 큰 역할을 하는 건 없을 테니까. 데뷔 전 뎀나 바잘리아의 상식 밖의 창의력과 고급스러운 쿠튀르 기반의 하우스 발렌시아가가 이토록 잘 어울리는 데에는 적재적소에 사용한 그래픽적 로고가 상당수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 터. 그 밖에도 이유는 많다.

유명 힙합 뮤지션이 특정 브랜드에 대한 애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가 하면 ‘인간 샤넬’, ‘인간 구찌’ 등 신조어가 생길 만큼 셀러브리티와 브랜드의 깊어진 유대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 에디터조차 유명 연예인이 입은 예쁜 로고 티셔츠를 보고 마음이 동하는 걸 보면 말이다. 과거 로고를 앞세워 명품을 자랑하던 지인을 은근히 무시한 지난날이 낯뜨거워질 만큼 로고 아이템은 꽤나 유혹적이다.

결국 에디터는 얼마 전 구찌의 모노그램 백을 하나 구입했고, 지금은 유명 브랜드의 로고를 패러디한 티셔츠를 입고 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관심 밖이었을 이 아이템을 구입한 걸 보면 분명 로고가 대세임은 부정할 수 없다.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구찌에 있는 한, 뎀나 바잘리아가 발렌시아가의 수장으로 있는 한 아마 당분간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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