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한 결심 중에 하나가 바로‘ 물 많이 마시기’였다. 피부를 촉촉하고 탄력 있게 가꾸고, 건강에도 좋다는 수많은 간증을 믿었다. 하지만 물, 과연 많이 마신다고 좋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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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마셔야 좋을까?
화초는 물을 주지 않으면 죽는다. 반대로 물을 너무 많이 줘도 죽는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이승남 원장은 비단 식물뿐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은 모두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한다. 몸속의 수분이 균형을 이룰 때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말이다. 갓 태어난 아기의 몸은 90% 정도가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후 70% 정도의 수분을 유지하다가, 노인이 되면 55~60%까지 수분도가 떨어진다. 성인 기준으로 하루에 배출하는 수분의 양은 무려 2.6리터. 대소변으로 빠져나가는 양이 1.6리터, 땀을 통해 배출되는 양이 0.6리터, 호흡을 통해 수증기로 배출되는 양이 0.4리터다. 매일 음식 등으로 섭취하는 수분의 양이 평균 1리터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1.6리터의 물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건강한 수분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체중 곱하기 30을 했을 때 나오는 숫자(60킬로그램이라면 1800ml 즉 1.8리터) 정도의 물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이 또한 이론적인 수치일 뿐, 몸에 필요한 물의 양은 사람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몸속의 수분이 쉽게 증발되기 때문에 더 많은 양의 물을 필요로 하고 몸이 찬 사람은 그 반대다. 국물이나 반찬으로 수분을 많이 섭취하는 경우나 식사 외에 과일이나 채소를 많이 먹는 경우에도 꼭 필요한 물의 양은 줄어든다. 특히 채소나 과일 속에는 양질의 유기 미네랄이 포함돼 있어 수분의 체내 흡수가 빠르다. 땀이 많거나 운동을 즐기는 사람은 더 많은 양의 물을 마셔야 탈수를 예방하고 수분 밸런스를 맞출 수 있다.
반대로 너무 많이 마셔도 문제다. ‘물 중독’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텐데, 몸에 수분이 과잉 정체되어 체액의 농도가 낮아지는 상황을 말한다. 식욕이 떨어지고 기운이 없으며, 어지럽거나 구역질이 나고 경련이 생긴다. 심한 경우 혼수 상태에 빠질 수 있다. 혈액 속에 나트륨이 부족하면 간경변이나 울혈성 심부전증 등의 증상을 겪을 수도 있다. 그야말로 과유불급이다. 또, 몸속에 나트륨이 많을 때 입안이 짜다고 물을 많이 마시면 부종이 생긴다. 나트륨은 수분을 잡아두는 성질이 있기 때문. 물을 한꺼번에 많이 마실 경우 노폐물을 배출하는 신장에도 무리가 간다. 건강한 사람의 경우 하루에 소변을 4~6번 정도 보는 게 좋은데, 그보다 횟수가 많으면 신장 기능에 이상이 있거나 수분 섭취가 과다하다는 뜻이고 두 번 이하라면 수분 섭취가 매우 부족하다는 증거이니 참고할 것.

물, 언제 마셔야 할까?
정답은 ‘수시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히 목이 마르지 않으면 물을 마시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습관이다. 몸속에 수분이 1~2% 부족하면 사람은 갈증을 느끼게 되는데, 이렇게 목이 마르다는 느낌이 든다는 건 이미 체내 건조가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다. 체내에 수분이 부족해지면 혈액의 나트륨 농도가 높아지고, 혈액은 세포로부터 수분을 빼앗으려고 한다. 세포가 마르기 시작하면 양분도 부족해진다. 이때 시상하부는 작은 뇌하수체를 자극해 항이뇨호르몬을 분비하고, 이 명령이 신장에 전달되면 소변의 양이 줄어들며 그 대신 혈액으로 더 많은 수분을 전달한다. 자연적으로 노폐물의 배출 기능이 떨어지고 독소가 몸 안에 쌓이게 되며 두통이나 손발 저림, 부종, 만성 피로 등이 생긴다. 때문에 목이 마르기 전에 수분을 먼저 보충해야 한다. 단, 한꺼번에 많이 마시려고 하지 말고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당 1리터 이상의 물 섭취는 물 중독을 불러올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마시는 물 한 잔이 배변 활동과 노폐물 배출을 돕는다는 사실은 모두 알 테지만, 의외로 자기 전에 마시는 물도 그 못지않게 효과적이다. 자는 동안에도 우리 몸은 쉴 틈 없이 물을 소비하기 때문. 자기 전에 마시는 물은 밤사이 대사와 세포 활동을 돕고 땀으로 다량 배출되는 수분도 보충해준다. 다만 자다 일어나 화장실을 자주 가는 편이라면 수면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잠들기 30분 전, 입을 축일 정도로만 마실 것. 운동 후 목이 마를 때가 아니라, 운동을 하기 전에 미리 물을 마시는 것도 수분 보충의 지름길이다. 운동 중에 땀을 많이 흘리면 혈액이 진득해지는데, 운동 30분 전에 미리 물을 마시면 이런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땀을 많이 흘리는 목욕이나 사우나, 반신욕 전에도 마찬가지. 또, 식전이나 식후에도 오히려 물을 마시라고 권한다. 소화기 질병을 앓고 있는 경우에는 위산이 묽어져 소화력이 떨어지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적정량의 물 섭취가 과식을 예방하고 강한 양념을 묽게 하며 짠 음식의 염도를 낮춘다. 또, 방광을 자극해 이뇨 작용을 촉진하는 진한 커피, 차 종류, 탄산 음료나 술을 마신 후에도 수분 섭취가 필수다.

어떤 물이 좋은 물일까?
생수를 그대로 마시는 것이 갈증을 해소하고 몸에 수분을 보충하는 지름길. 한의학적으로 물의 온도는 미지근한 정도가 좋다. 소화 활동을 위해서는 내장의 온도를 43℃까지 올려야 하는데, 미지근한 물을 마시면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를 줄일 수 있는 것. 미지근한 온도의 물이 먹기 힘들다면 실온에 두고 마시자. 냉장고에서 갓 꺼낸 차가운 물은 흡수가 잘되고 지방 연소에 유리한 체내 환경을 만든다는 말도 있지만, 한의학적으로는 위장이 차가워지고 기능이 저하되며 ‘담음’이라는 물의 찌꺼기가 남게 되어 좋지 않다.
커피나 녹차, 루이보스 티 같은 기호 음료에는 비타민 등 다양한 유효 성분이 들어 있다. 여유롭게 맛있는 차를 음미하는 즐거움도 포기하기 어렵다. 비록 이뇨 작용을 촉진한다 해도 말이다. 때문에 이런 기호 음료는 물 대신 마시는 것이 아니라 물과 함께 마시라고 권한다. 격렬한 운동 후나 탈수로 몸에 미네랄이 부족할 경우에는 이온음료도 좋지만 당분 등 다른 첨가물의 함량을 잘 따져보고 골라야 한다.
한 가지 더, 너무 깨끗하게 정수한 물도 좋지 않다는 놀라운 사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역삼투압 방식 정수기는 미네랄 등 물속에 잔류하는 유효 성분까지 걸러낸다. 이처럼 너무 깨끗하게 정화된 물은 잠시만 실온에 두어도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녹아들어 산성으로 바뀌며 세균 번식도 쉽다. 약간의 미네랄이 들어 있는 생수가 마시기도 편할뿐더러 흡수도 빠르다. 200cc 기준 한 컵의 물(생수)에 죽염이나 천일염 등의 굵은 소금을 1~2알 정도 넣으면 마시기 쉬우면서 건강에도 좋은 물이 된다는 게 햇살고운 한의원 문상돈 원장의 팁. 이 외에 묽은 보리차나 레몬을 몇 조각 띄운 물을 마시는 것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