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써티’도 아닌 ‘영 포티’. 자화자찬으로 꺼낸 말에 욕만 한 바가지 돌아왔다. 영 포티는 어쩌다 조롱거리가 되었나. 어른 되길 잊어버린 내 또래 친구들에게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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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77년생, 96학번이다. 그 유명한 ‘X세대’다. 조금이라도 새로운 것을 찾고, 만들고, 포장해서 트렌드로 파는 게 일인 잡지계에서 오래 일했다. 지난 15년간 그 업계의 취재원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 줄 아는가? 거의 없다. 나는 신입 때도 또래들이나 나보다 조금 풍족한 바로 윗세대의 관심사를 다뤘고, 마흔이 넘은 지금도 같은 이들의 관심사와 취향, 세상만사에 대한 반응을 소개한다. ‘X세대의 아이콘’이던 스타들은 여전히 A급 섭외 리스트를 장악하고 있다.
우리 세대는 항상 대중문화 서사의 중심에 있었다. 내가 이십대 중반이 되자 영화 <싱글즈>(2003)가 나왔다. 결혼 같은 거 안 하고 즐겁게 사는 싱글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였다. 이십대 후반이 되자 <내 이름은 김삼순>이 나왔다. 서른이 된 X세대 여성들이여, 연애시장에서 탈락할까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에게 연하남을 허하노라. X세대 여자들은 출판시장까지 점령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성공을 계기로 칙릿과 <여자생활백서> 류의 여성 자기계발서가 쏟아져 나왔다. 내가 삼십대 중반이 되자 <응답하라 1997>이 나왔다. 세상 물정 모르는 꼰대가 될까 염려하지 마라, 너희가 겪어온 시대는 전설이 될 것이며 후배들은 너희를 영원히 동경할 것이다. 우리가 더 나이 들어감에 따라 5년 후 패션지는 폐경과 관절염과 검버섯 예방법을 다루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20년 후에는 ‘실버가 새로운 골드’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실버 매거진이 럭셔리 브랜드의 메인 타깃이 될지도 모른다. 방송과 영화에는 발랄한 노년 로맨스가 넘쳐나겠지.
대한민국 미디어는 기존의 연령 모델을 전복하며 나이 들고 있는 X세대를 설명하는 새로운 호칭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X세대’라는 건 아무래도 중년에게는 좀 낯간지러운 표현 아닌가. 그 결과, 지난달 온라인과 미디어에서는 ‘영 포티’라는 단어가 유행어로 등극했다. 여전히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왕성하게 소비하며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사십대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긍정적인 의도가 무색하게, 종합 미디어 특유의 남성을 주인공으로 두는 습성 때문에 가만 있던 ‘영 포티’들이 졸지에 조롱거리가 되었다. 마침 이병헌과 김태리, 이선균과 아이유 등 나이가 십수 년 차이 나는 남녀 커플 캐스팅이 연달아 발표되면서 여성 시청자들의 심기가 매우 불편한 터였다. 제 나이 생각 않고 어린 여자 꾈 궁리나 하는 자기애 과잉 중년 남성, 자기가 ‘이만하면 젊다’고 착각해서 애들 노는 데 귀찮게 끼어드는 아재들, 취향을 과시하려 안달난 힙스터 출신 꼰대들…. ‘영 포티’는 이제 그런 이들을 가리키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사실 이건 남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남자들이 조카나 자식뻘 여자를 원하는 건 일이십 년 된 문제가 아니고, 당사자들의 상태보다는 사회 관습과 더 큰 관련이 있다. 반면 여자들의 경우는 철저하게 ‘나는 젊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영 포티’ 라는 말에 더욱 걸맞다. ‘또래나 연상 남자들은 늙고 재미없으며 나는 감각이 젊고 어려 보인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수입차, 명품 백과 구두, 미술관과 콘서트로 이어지는 좋은 취향에 돈을 쏟아붓고, 그것을 SNS에 전시한다. 후배에게 훈계 늘어놓는 건 꼰대 같아 싫다면서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의기소침한 어린 애들에게 ‘중년은 더 아프다’고 징징거리기 일쑤다. ‘어른’이라는 말에 아무런 존경심을 느끼지 못하고, 그것이 세대의 특징이라는 세뇌를 받으며 자란 탓에 어른 되기를 잊어버린 것만 같다.
문득 이런 의문도 든다. 왜 사십대인 내가 이런 트렌디한 매거진에 ‘영 포티’에 대한 칼럼을 쓰고 있나. 어린 애들은 뭐 하고? 영 포티 논란은 내게 노아 바움벡의 영화 <위 아 영>을 떠올리게 했다. 중년 다큐멘터리 감독과 프로듀서 커플(벤 스틸러와 나오미 와츠)이 이십대 힙스터들(아담 드라이버와 아만다 사이프리드)을 만나 힙합댄스니 마약 명상 파티니 하는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서 ‘나는 아직 젊다’는 자족감을 느끼던 중, 진짜 젊기에 가능한 그들의 탈규범적이고 무책임하고 야심만만한 면모에 질려 자신들의 노화를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한때 다큐멘터리계의 유망주로 각광받던 주인공은 이제 그 스포트라이트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때가 왔음을 깨닫는다. 영화는 그것을 씁쓸하지만 자연스러운 일로 그린다. 나의 X세대 친구들도 그만 ‘영’할 때가 됐다는 걸 좀 깨달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