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인에게 최고의 영예 중 하나인 2017년 대한민국 여성체육대상 시상식장에 우뚝 선 선수들은 당연하게도 모두 여성이었다. 그중에서도  받은 클라이머 김자인 선수와 전설적 농구선수로 이제는 지도자가 되어 지도자상을 받은 전주원 선수를 만났다. 강하고 아름다운 그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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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고리는 이콤마이(EcommaE).

 

김자인 | THE CLIMBER

실제로 김자인을 만난다면 생각보다 작은 체구에 살짝 놀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세히 보길.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을 오르는 이 여성의 몸은 구석구석 단단한 근육이 쌓여 있다. 운동 선수들이 그렇듯, 자신을 부단히 단련하며 얻은 시간의 기록이기도 하다. 지난 8월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리드월드컵 4차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월드컵 개인통산 26번째 우승을 차지, 역대 최다 우승기록을 경신하며 올해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녀는 2017 대한민국 여성체육대상의 대상인 윤곡여성체육대 상을 수상했다.

먼저 수상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네요. 그것도 대상을 수상 했는데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슬로베니아 크란에서 마지막 월드컵을 앞두고 있었어요. 대상이라는 게 너무 신기해서 진짜로 제일 큰 상을 의미하는 그 대상이 맞는지, 제가 그런 상을 받아도 되는지 다시 물어봤죠.

또 농구 전주원 코치, 피겨 스케이팅 기대주인 최다빈 선수,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메달의 주역인 조혜정 선수 등이 각각 지도자상, 신인상, 공로상을 받았습니다. 함께 수상한 선수들을 보면서 어떤 영감을 받았나요?
한국에는 대단한 여자선수들이 많은데, 정말 영광스러운 마음이었어요. 시상식 때 처음 뵈었는데요, 최다빈 선수는 인형처럼 예뻐서 깜짝 놀랐고, 전주원 코치님은 현역 선수에서 멋진 지도자가 된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습니다. 저도 이후에 클라이밍 지도자가 된다면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산이 거기 있기에 오른다’고 말한 등산가 힐러리 경의 말이 유명한데요. 당신에게는 지금까지 어떤 동기와 목표가 있었나요?
평소 대단한 목표를 세우는 편은 아니에요. 그 목표만 보고 쫓아가면 나중에 스스로에게 지쳐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충실히 하려고 늘 제 자신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것 같습니다. 클라이밍을 할 때가 가장 즐겁고 또 클라이밍을 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고싶기 때문에, 그런 모티베이션을 잃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언론에서 ‘암벽여제’라는 별명을 붙였어요. 마음에 드나요?
사실 청소년기를 돌이켜보면 ‘거미소녀’라고 불리기도 해서.(웃음) 여제라는 별명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나중에 들었던 ‘암벽 위의 발레리나’라는 별명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어요. 여제나 황제의 자리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지만, ‘암벽 위의 발레리나’는 제가 등반하는 모습, 저의 등반 스타일을 보시고 표현해 주는 단어인 것 같았거든요.

올해에는 555m에 달하는 롯데월드타워도 올랐는데, 저는 고소공포증 때문에 그곳 전망대도 갈 수 없거든요. 무서움을 느끼지 않으시나요? 아니면 무서움을 극복하시는 쪽인가요?
어릴 때는 겁이 너무 많아서 항상 무서워했던 기억이 나요. 자연 암벽을 탈 때 매달려 울었던 적도 많아요. 하지만 그것들을 이겨 내고 오랜 기간 익숙해지다 보니 두려움에도 점점 익숙해져요. 물론 지금도 추락에 대한 무서움을 느낄 때가 있지만, 내가 오르고자 하는 코스를 완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해야 하기 때문에 오르는 순간에만 몰입하면서 이겨내는 것 같아요.

클라이밍 대중화에 김자인 선수의 역할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죠. 저희 회사 건물 지하에도 암장이 있는데 아주 잘된다고 들었습니다. 클라이밍 초보자에게 조언이나 격려를 해주신다면?
클라이밍을 처음 할 때는 팔힘만 이용해 올라가려고 하다 보니 힘들고 어렵게 느끼시는 분들이 많죠. 힘보다는 몸의 중심을 이동하는 데 초점을 맞춰가며 클라이밍을 하는 게 훨씬 더 도움이 될 거예요.

처음 클라이밍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언제였나요?
클라이밍을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은 가족들의 영향이 컸어요. 부모님이 산악회에서 만나 결혼을 하셨고 두 오빠가 먼저 클라이밍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오빠들이 비행기를 타고 외국 대회에 가고 하는 모습이 부러워서였지만, 점점 클라이밍의 매력에 빠졌죠. 훈련을 할 때 늘 오빠들과 똑같이 해왔어요. 남자들이 받는 훈련을 똑같이 받는 건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저만 좀 약하게 하는 건 더 싫어서 참으면서 받았죠. 그때 그런 훈련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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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톱과 팬츠는 모두 코스(Cos), 슈즈는 자라(Zara), 귀고리는 더모어주드(The More Jude). (아래) 톱은 캘빈 클라인 플래티늄(Calvin Klein Platinum). 스커트는 유돈 초이(Eudon Choi). 반지는 모두 나인틴투(Nineteentwo).

운동선수는 시즌과 비시즌이 있기 마련인데요. 비시즌에는 어떻게 휴식을 취하고, 어떻게 감각을 유지하세요?
예전에는 시즌이 끝나고 나면 1~2주는 무조건 푹 쉬는 게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면 휴식 이후 다시 훈련을 시작하는 게 너무 힘들어지더군요. 휴식기인 지금은 아주 가볍게라도 운동을 하면서 감을 잃지 않으려고 해요. 올해 시즌은 끝났지만, 부담 없이 자연암벽 등반을 즐기기 위해 스페인에 갈 예정이에요.

경기 일정으로 해외를 자주 방문하는데, 시차 적응이나 기내에서 컨디션을 유지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예를 들어 꼭 특별 기내식을 주문한다거나요.
월드컵은 주로 유럽에서 열리는데 긴 비행시간이 힘들어요. 대부분 이코노미석을 이용하기 때문에 10시간 넘게 좁은 자리에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비행시간 틈틈이 가볍게 스쿼트를 하면서 몸을 움직이고, 경기 때에는 기내식은 거의 먹지 않고 방울토마토를 미리 준비해서 먹고는 해요.

꼭 챙기는 뷰티 습관도 있으신가요? 즐겨 사용하는 향수는요?
최근에는 피부가 민감성으로 바뀌어서 맞지 않는 화장품을 쓰면 곧바로 붉게 올라와서 피부에 맞는 화장품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수분크림도 꼭 바르고 있고요. 향수는 톰 포드의 네롤리 포르토피노 향수를 정말 좋아해서 아껴 쓰고 있어요. 경기 때 꼭 뿌리는 향수입니다.

다시 시즌이 되면 몸과 마음가짐이 어떻게 달라지나요?
시즌 중에는 체중 41~42kg을 유지하려고 하는 편인데,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훈련하는 것보다 체중 조절을 하는 게 더 힘들 때가 많아요. 경기를 앞두고는 아무래도 부담감 때문에 심리적으로 힘들 때도 있지만, 내가 최선을 다해 훈련하고 준비했다면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즐겁게 등반하려고 노력합니다. 남편이 경기 때마다 예쁜 카드에 손편지를 써 주는데 정말 많이 도움이 돼요.(웃음)

운동선수는 부상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고 그게 굉장히 부담이 되실 걸로 압니다. 부상을 겪을 때에는 어떻게 마인드 트레이닝을 하나요?
오랜 기간 클라이밍을 하면서 정말 많은 부상을 겪었었는데, 그러다 보니 부상을 관리하는 요령이 생긴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작은 통증의 경우 그냥 참고 운동하는 편이었는데, 통증이 심하지 않을 때 바로 치료받고 관리하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럼에도 큰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는, 그동안 너무 힘들게 달려온 나에게 억지로라도 마음의 휴식을 주려나 보다 하고, 더 길고 더 높게 나아가기 위한 잠깐의 휴식이라고 생각해요. 무작정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대신 부상 부위를 쓰지 않는 운동을 계속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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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는 이콤마이(EcommaE).

당신이 생각하는 여성의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인가요?
사춘기 때는 운동을 하면서 몸에 근육이 붙고, 어깨가 넓어지고, 다른 사람들이 제 몸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에 상처를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지금은 클라이머에게는 클라이머다운 몸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요. 여성의 아름다움도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날씬하고 그런 게 아름다움이 아니라, 열정을 다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클라이머로서, 김자인이라는 한 사람으로서 또 어떤 꿈을 꾸시나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내 앞에 있는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또 즐겁게 하는 사람이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닐까요?

 

큰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는, 그동안 너무 힘들게 달려온 나에게 억지로라도 마음의 휴식을 주려나 보다 하고, 더 길고 더 높게 나아가기 위한 잠깐의 휴식이라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대신 부상 부위를 쓰지 않는 운동을 계속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