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첫키스처럼‘ 처음’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다양한 연령대의 뷰티 전문가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첫 화장품’이 무엇인지 물었다. 응답하라! 나의 첫 화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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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뛰드하우스의 디어 달링 틴트
“짙은 화장을 한 학생들을 보며 ‘저땐 자연스러운 게 제일이지’라며 혀를 차는 나이가 되었지만, 한때는 나 역시 ‘얼굴은 하얗게, 입술은 빨갛게’ 족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미샤와 에뛰드로 대표되는 로드숍 브랜드가 대거 론칭하면서 몇 천원대의 비비크림과 틴트를 열심히 사 모았다. 중학교에 입학하고부터는 교복 속에 에뛰드의 틴트와 미샤의 파우더를 열심히 넣고 다녔다. 눈썹도 안 그렸고 선크림도 바르지 않았지만, 틴트는 꼭 발랐다. 지금도 에뛰드의 틴트를 보면 철없던 그 시절의 내가 떠올라 괜스레 웃음이 난다.” – 김지수(<얼루어> 뷰티 에디터, 20대)

 

2 지에닉의 파우더 팩트
“중학생 무렵, 여학생들은 두 파로 나뉘었다. 지에닉의 파우더를 쓰는 파와 클린앤클리어의 파우더를 쓰는 파로. 여드름이 있는 지성 피부를 가졌던 나는 피지 컨트롤 기능이 있는 지에닉의 파우더 팩트가 특히 좋았다. 사용할수록 피부가 보송보송 매끈해지고, 여드름이 완화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 후로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파우더를 서너 통은 거뜬히 쓴 것 같다. 지금은 피부가 건조해진다는 이유로 파우더는 쳐다도 보지 않으니, 결국 지에닉의 파우더 팩트는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파우더가 된 셈이다.” – 기지혜(<코스모폴리탄> 뷰티 에디터, 3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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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에이솔루션의 토너
“이마에 여드름이 올라오던 중학생 시절, 여드름 피부용 화장품으로 광고를 하던 에이솔루션의 제품을 사용했다. 당시 모델은 <순풍산부인과> 속 통통 튀는 막내 딸 역할로 유명해진 송혜교였다. 기억에 남는 제품은 뽀얀 가루가 담긴 토너로, 파우더 성분이 유분을 흡수하는 제품이었다. 피부가 화하게 느껴질 정도로 자극적이었고, 알코올 향도 강하게 났다. 그 뒤로 같은 라인의 여러 제품을 사용했는데, 효과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같았다면 아마도 보습 라인으로 유수분 균형을 조절하는 방법을 택했을 것 같다.” – 조은선(<마리끌레르> 뷰티 디렉터, 30대)

 

4 랄프로렌의 폴로 스포츠 맨
“고등학생 시절, 교복을 입을 필요 없는 주말이 되면 종종 아버지의 옷장을 들췄다. 거기엔 내가 가진 것보다 조금 더 좋은 브랜드의 옷이 있었고, 몇 사이즈는 더 큰 아버지 바지를 꺼내 ‘힙합 바지’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그 옆에는 화장대가 있었는데, 가끔 거기 놓인 향수를 뿌려보았다. 그래도 그중 제일 젊어 보이는 ‘폴로 스포츠’로. 아마도 대학 간 누나가 선물로 사다 드린 거였던가? 지금도 그 향이 정확히 기억난다. 아버지의 폴로 치노와 폴로 스포츠 향수로, 나는 더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 박태일(스타일리스트, 30대)

 

5 소망화장품의 플러스유 글래머러스 립립
“90년대 초중반, 아마도 고등학생 즈음 드라마 속에서 늘 당당하고 멋진 역할을 도맡는 배우 김혜수를 동경했다. 특히나 닮고 싶었던 건 그녀의 섹시하고 도톰한 초콜릿색 입술! 결국 용돈을 모아 그녀가 사용한다는 초콜릿색 립스틱을 샀으나 결과는 대실망이었다. 맨 얼굴에, 바르는 방법도 제대로 모른 채 초콜릿색 립스틱을 덕지덕지 발랐으니 잘 어울리는 게 되레 이상한 일이었다. 그 후 뷰티 크리에이터가 된 지금도 갈색 립스틱은 여전히 꺼리게 된다. 아마도 나의 첫 초콜릿 립스틱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리라.” – 김기수(개그맨 &뷰티 크리에이터, 4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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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드루라의 엑스트라 포르테 크림
“20대 초반 즈음, 어둡고 칙칙한 피부톤이 유독 고민이었다. 그래서 남대문 시장에서 판매하던 드루라의 크림을 애용했다. 가격은 아마 3천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여자들 사이에서 ‘외제 마사지 크림’으로 유행하던 제품이었다. 칙칙한 피부톤을 뽀얗게 밝히고, 화장발을 잘 받게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후에 알고 보니 그 제품에는 기준치를 초과한 수은이 다량 함유돼 있었다! 희고 고운 피부는 모두 ‘수은’ 덕분이었던 것이다.” – 고원혜(메이크업 아티스트, 50대)

 

7 캘빈클라인의 씨케이 원
“바야흐로 1996년, 대학교 앞에 자주 가던 카페가 있었다. 하루는 그곳에서 마주친 남자로부터 엄청 끌리는 향기를 맡았다. 지나치다 우연히 마주친 거라 그게 무슨 향인지 차마 물어볼 수가 없었고, 그 길로 향수 전문점으로 가서 코가 닳도록 향수들을 시향한 후 가장 향이 비슷하게 느껴졌던 씨케이 원을 구매했다. 근데 향을 맡으면 맡을수록 영 똑같지가 않더라(후에 친구로부터 그 향이 나길래 대체 뭘 뿌렸냐 물어보니, 그 정체는 다비도프의 쿨워터였다!). 나의 남자 향수 사랑은 아마 그때부터 시작된 듯하다.” – 백지수(<보그> 뷰티 디렉터, 40대)

 

8 클린앤클리어의 클리어 훼어니스 로션
“찹쌀떡처럼 뽀얀 얼굴을 동경하던 여고생 시절, 모든 친구들의 책상에는 톤업 효과가 있는 클리어 훼어니스 로션이 자리 잡고 있었다. 친구들과 나는 등교 후 네댓 번은 훼어니스 로션을 덧바르며 희고 고운 얼굴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피부톤 보정 효과가 마음에 들었다. 마치 드라마 속 청순가련한 여주인공이 된 느낌이랄까? 그때는 피부톤과 상관없이 모두가 훼어니스 로션만 사용했다. 하교 시간이 되면 로션을 여러 번 덧발라서 얼굴이 회색으로 변한 친구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 김보나(<얼루어> 뷰티 에디터,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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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코티의 에어스펀 파우더
“믿기 힘들겠지만 중고등학생 시절엔 모공이 하나도 없는 모찌 피부에 가까웠다. 그래서 당시 기초 제품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처음 사용했던 화장품은 중학교 1학년 때 엄마 화장대 위에 놓여 있던, 호피 무늬 통에 담긴 ‘코티분’이었다. 호기심에 한 번 발라봤는데 솜털이 그대로 살아 있는 모찌 피부가 연출되는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당시 엄마는 방판으로 구매한 랑콤의 파운데이션을 사용하느라 코티분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후 엄마의 파우더를 학교에 갖고 다니며 화사하고 뽀얀 피부를 연출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 손대식(메이크업 아티스트, 40대)

 

10 시슬리의 휘또-빠뜨무쌍뜨
“대학 신입생 OT날, 모두가 가방에서 소주를 꺼낼 때 우아하게 시슬리 비누를 꺼내 들던 우리 과 ‘수지’(모든 남학생의 첫사랑은 그녀였다)를 보고 시슬리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되었다. 예쁜 통에 담긴 브러시까지 있는 비누라니! 당시 잘나가는 언니들은 모두 시슬리 제품을 사용했다. 나도 잘나가는 언니가 되고 싶어서 갤러리아 백화점의 시슬리 매장에 용기를 내서 찾아갔다. 그러나 상상보다 높은 가격에 일보 후퇴! 첫 과외비를 받은 날 결국 비누를 구입했고, 특별한 날에만 사용했다. 그 기억 때문일까? 시슬리는 아직도 내게 최고의 화장품으로 여겨진다.” – 최향진(프리랜스 뷰티 에디터, 40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