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하고 부드러운, 모범생이라고만 생각해왔다면 정해인을 잘못 본 거다. 그는 연기자이고, 언제든 다른 옷을 입을 수 있기에. 이를테면, <역모 : 반란의 시대>가 그렇다.

코트와 팬츠는 모두 오디너리 피플(Ordinary People). 실크 소재의 셔츠는 시스템 옴므(System Homme). 슈즈는 벨루티(Berluti).

코트와 팬츠는 모두 오디너리 피플(Ordinary People). 실크 소재의 셔츠는 시스템 옴므(System Homme). 슈즈는 벨루티(Berluti).

촬영하면서 뒷골목의 풍운아 같은 감정을 말했어요. 당신에게도 어 두운 면이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어떤가요?
하다 보니까 있네요, 저도 몰랐는데.(웃음) 원래 성향이 ’다크’하진 않거든 요. 처음 해보는 색다른 콘셉트여서 정말 재미있게 했어요.

항상 밝고 단정한 역할을 많이 했죠?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도 있나요?
배우라면 다양한 역할에 욕심을 내야 할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욕망이 있고요. 이것저것 다 도전하고, 깨져도 보면서 제가 잘하는 것들을 찾고 싶어요. 제 안의 날카로운 것들을 찾고 싶어요.

올해 작품 활동도 그 과정이었겠네요.
<당신이 잠든 사이에> 이전에는 제가 작품 활동을 안 하는 줄 아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열심히 했고 이제 영화 <역모>도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현대극 드라마 다음엔 다시 사극 영화예요. 이쯤 되면 사극 전문 배우라고 해도 되겠어요.
사극을 하다 보니 4년 연속 끊임없이 하고 있어요. 세트와 분장 때문에 사극 자체가 주는 매력이 있어요. 글쎄요, 굳이 하나 고르라고 하면 저는 현대극을 고를게요. 현대극에서 못해본 것들이 더 많거든요.

정해인이라는 배우를 물으면, 아직 연기 경력이 길지 않음에도 사람마다 기억하는 캐릭터가 달라요. <그래, 그런 거야>의 유세준, <불야성>의 탁, <도깨비>의 첫사랑.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한우탁.
작품 속의 캐릭터로 기억된다는 건데 그게 훨씬 좋은 거 같아요, 캐릭터의 이름으로 불러주시는 게 좋고 더 보람을 느껴요.

배우 정해인을 기억하는 것보다 더 좋아요?
네. 그때마다 ‘내가 일을 계속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거든요. 작품을 할 때마다 여운이 오래가는 편이에요. 작품이 끝나도 캐릭터가 가지고 있던 성격이 제 안에 남아 있어요. 그걸 다른 캐릭터로 지우면서 다시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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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는 쟈딕앤볼테르(Zadig&Voltaire). 팬츠는 참스(Charms). 스니커즈는 체사레 파치오티(Cesare Paciotti). 실버 소재 네크리스는 토마스 사보(Thomas Sabo). 서스펜더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중에서도 연기의 재미를 알려준 캐릭터는 누구죠?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한우탁은 연기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대사가 주는 철학이 있어요. 대본을 읽으면서도 감동을 많이 받았고, ‘정의’에 대한 대사 등 감명 깊게 받아들였던 대사가 많아요. 만화책을 기다리는 독자처럼 오매불망 기다렸던 기억도 있고요.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제 또래의 배우들과 같이 연기해본 적이 처음이었어요. <그래, 그런 거야> 현장에는 선 생님이 많이 계셔서 배울 점이 많았지만, 또래와는 재미가 있죠. 제 성격이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심해서 친해지는 데 오래 걸려요. 종석 씨와도 촬영 내내 존댓말을 할 정도로요. 물론 쫑파티 때 편해졌지만요.

내성적인 사람은 먼저 말을 걸기보다 말을 걸어주길 기다리잖아요. 누가 먼저 다가왔어요?
종석 씨와 수지인 거 같아요. 아무래도 세 명이 ‘꿈꾸는 3인방’이고 같은 용띠 친구들이니까요. 또 저는 그들에 비해서 경험도 많이 부족한 신인이라, 제가 긴장했을 걸 알고 먼저 다가와준 거 같아요, 하하. 그런 모든 게 다 좋았어요. 상엽이 형, 재하와도 호흡이 다 맞아서 재미있었어요.

아직도 스스로를 신인이라고 생각해요?
저를 모르시는 분들도 아직 많아서…(웃음) 아직 한참 부족한 거 같아요, 데뷔한 지 4년밖에 안 되었으니까요.

영화 <역모>가 곧 개봉을 앞두고 있죠. 첫 주연을 맡았죠? 당신에게 이 영화는 어떤 작품인가요?
평생 잊지 못할 작품이자 애증의 작품이에요. 지금도 신인이지만 지금보 다 더 신인이던 2년 반 전에 열정과 패기 하나만으로 촬영한 작품이죠 . 사극에 액션 영화다 보니 몸도 너무 힘들었어요. 촬영 일정이 정말 빠듯 했고요. 또 첫 주인공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책임감이 어마어마하구나, ’ ‘주인공이라는 게 참 쉽지가 않구나’ 많이 느끼게 해준 작품이에요.

애증이라고요? 사랑은 알겠는데, 미움은요?
힘들고 열악한 환경 때문에 저뿐만 아니라 감독님부터 스태프까지 모두 힘들어했어요. 감독님은 폐병에 걸리고 스태프도 다치고…. 촬영장에서 고생한 기억들이 크게 남는 거 같아요. 이제 개봉을 한다고 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2015년 6월 말부터 준비해서 7월 말에 끝났어요. 한 달 반 정 도 찍은 거로 기억해요.

장편 영화를 말이죠? 꼬박 촬영했겠어요.
잠을 못 잤어요. 일주일에 6시간도 못 잔 적도 있고요.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액션 장면을 했던 경우도 있었어요. 실내에서 액션을 찍는데 너무 더웠어요. 땀이 계속 나서 500ml 생수를 10병 가까이 마셨는데도 화장실을 한 번도 안 갔어요. 그 정도로 탈수가 심해서 소금 사탕도 먹었죠. 엄청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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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소재의 트렌치 코트는 알렌느(Haleine).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팬츠는 참스. 워커는 올세인츠(All Saints).

<역모>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역모>는 제가 선택을 당한 거예요! 거부하지 않은 이유라면. 우선 액션을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김호라는 캐릭터가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쭉 끌고 가는 힘이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캐릭터가 변화하는 모습이 좋게 다가왔어요. 데뷔한 지도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나한테 독이 되든 약이 되든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무조건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극중 역할인 김호는 조선 제일검이죠. 검뿐만 아니라 다양한 무기를 다뤄야 해서 방망이, 활, 검 연습을 다 했다면서요?
저는 검이 좋았어요. 방망이는 너무 짧아서 거의 맨몸으로 싸우는 거거 든요. 상대방은 칼이고 저는 방망이라 불리한 조건이라서 집중하지 않으면 사고로 이어져요. 아무것도 모를 때, 열정과 패기로만 달려든 거라 액션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지금도 어려워요 액션은.

그러면서 성장도 느껴졌을 것 같은데요?
너무 좋았던 건 영화 속 제 캐릭터가 영화의 성질과 맞았어요. 감독님도 연기를 하면서 처절하게 하라고 말씀해주셨어요. 무너지고 다시 무너지고 그리고 다시 올라가고. 이거를 반복하다 보니 서사적으로 쭉 가야 하는 흐름이 필요한 제 캐릭터에 몰입하기 좋았어요. 다만 몸이 힘들었을 뿐이죠. 그 영화 촬영을 끝내고서 병원을 순례했어요. 손이 찢어지기도 하면서 정말 고군분투했습니다.

사극은 역시 대왕대비를 해야 하나 봐요.
왕을 해야 해요. 최고로 편했어요. 아직 개봉 전인 <흥부>에서는 제가 왕 역할을 했는데 내년에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가장 편했어요. 단상에 앉아 내려다보고 더우면 부채가 있고. 신분 상승을 하니까 편하더라고요. 하하.

<역모>는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팩션’이죠. 역사적 배경이 중요하게 등장하는데요. 연기할 때도 도움이 되었나요?
그 당시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더 파고들어가서 공부를 많이 했었어요 . 붕당정치와 고등학교에서 배운 걸 더 공부했고 영조가 어떤 왕인지에 대해서도 공부했어요. 대사 중에 그런 말이 있어요. ‘오늘 밤은 절대 기록이 되면 안 된다.’ 역사라는 게 결국엔 다 기록인 건데, 기록이 되지 않은 사건도 있을 거라는 말이죠. 거기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됐어요. 역사라는 건 승자의 기록인 거 같아요. 패자는 기록할 수 없으니까…. 과연 무엇이 더 옳았는지를 엔딩 부분을 찍으면서 많이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