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육수 진하게 내 보글보글 끓인 된장찌개와 짭조름한 고등어 구이가 기다리고 있는 저녁 식탁. 후쿠시마산 수산물이 식탁 위에 오른다고 해도 우린 여전히 이 따뜻한 저녁을 즐길 수 있을까?

 

1105-66

 

식탁 위에 올라온 후쿠시마산 수산물
지난 9월, EU는 2011년 원전 재난이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산 식품 수입 규제 완화 재검토안을 거부했다. 유럽 소비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지 검증하기 어렵고, 방사능에 오염된 음식의 노출을 확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한국은? 한국은 2011년 원전 폭발 이후 후쿠시마와 주변 8개 현에서 나는 50개 수산물의 수입을 금지했으며, 그로부터 2년 후 일본 도쿄전력이 원전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물이 바다로 유출됐다고 발표하자 8개현의 모든 수산물 수입을 금지한 상태다. 하지만 일본은 즉각 반발하며 세계무역기구(WTO)에 한국의 수출 규제가 자국의 수출에 심각한 지장을 준다고 이의를 제기하며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어두운 전망을 예측하는 목소리가 크다. 내년 1월 한일 양국이 제출한 최종보고서를 WTO 회원국이 회람하는데,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는 1차 분쟁은 패소가 확실해 보인다고 예측한다. 이어 2심에서까지 패소한다면 한국은 2019년에는 후쿠시마산 수산물의 수입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물론 2017년 현재도 식탁 위 방사능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건 마찬가지. 지난해 후 쿠시마 인근 해역에서 잡힌 노가리 370톤이 원산지가 조작된 채 국내 유통된 것이 적발돼 큰 파장을 일으켰는가 하면 지난달 해양수산부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일본산을 국내산으로 조작해 적발된 사례는 3배나 급증했다.

음식물의 방사능 오염 정도를 측정할 때 지표가 되는 대표적인 물질은 세슘과 요오드다. 특히 세슘 137은 물리적 반감기가 30년으로, 그사이 온몸의 혈액과 근육으로 이동해 DNA의 구조를 변형시킨다. 기준치를 초과할 경우 백혈병이나 갑상선암으로 진행될 확률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일각에서는 지나친 우려이며, 현재 음식물에 의한 방사선 노출 확률은 매우 낮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후쿠시마산 농산물 애용 캠페인에 동참한 몇몇 일본 방송인이 내부 피복이나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는 뉴스를 흘려들을 한국 사람은 없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식탁에 오르는 고등어부터 보글보글 된장찌개의 국물을 내줄 멸치에 이르기까지, 방사능 오염 확률에 대해 알아봤다.

 

국민 반찬, 고등어 
방사능 수산물 논란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고등어다. 한국인의 식탁에 가장 자주 오르는 생선인 데다가, 고등어는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회유성 어종이어서 한국산, 일본산, 중국산이라는 개념이 크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의 저자 김지민은 바다에는 국경이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원산지는 조업한 배의 국적에 따라 결정됩니다. 가령, 일본산 명태는 북해도 주변 해역에서 조업하는데 이것이 러시아 공장을 거쳐 들어오면 이 명태는 러시아산이 됩니다” .물론, 한국 연안에 방사능 오염이 없으면 국산 생선의 피폭 확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국산 고등어는 제주도와 남해, 동해로 회유하므로 안전하지만, 일본산 고등어는 후쿠시마로 회유하는 무리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국내산 고등어와 태평양계군의 일본산 고등어는 어떻게 구분 할까? “국내산의 경우 대부분 자반이나 생물로 유통합니다. 반면 일본산 고등어는 냉동으로 유통되는데 해동해서 팔면 이 둘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국산 고등어는 등의 무늬가 조밀하고 흐리며, 일본산은 청색이 또렷하고 무늬가 굵고 선명한 편이죠.”

 

한국인의 육수, 멸치
평소 생선은 입에 대지도 않는다고 안심하기엔 이르다. 잔치국수, 된장찌개, 미역국. 맛있게 한 그릇을 비운 이 국물 요리의 육수는 바로 멸치로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먹는 수산물 3위인 멸치는 국민 1 인당 연간 소비량이 4kg에 육박한다. 다행히 국내산 멸치는 일본산과 서식지가 달라 방사능과 무관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바다에는 국경이 없다는 전제’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칼럼니스트 김지민은 멸치의 수명과 크기를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볶음용으로 사용하는 잔멸치는 생후 15일에서 한 달가량 자란 것이죠. 일본에서 국내 해역으로 건너오기 위해서는 8개월 이상 걸리므로, 국내산 잔멸치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멸치 국물을 내는 중멸치는 1년 6개월에서 2년생이어서 일본해에서 국내 해역까지 충분히 건너올 수 있죠”. 물론 멸치는 방사성 물질이 축적되기엔 비교적 소형 어류이고 국산과 일본산의 서식 해역이 비교적 뚜렷한 편이다. 단 일부 유통업체의 비도덕적인 행태가 문제다. 지난해에는 세균에 감염된 일본산 수입 멸치를 국내 기장 멸치로 둔갑시켜 유통, 판매한 사건이 도마에 올랐고, 방사능 기준치를 초과한 가다랑어포가 대형할인마트와 재래시장에서 적발되어 논란이 됐다.

 

해저 수산물, 조개류
세슘은 무거워서 해저 바닥에 쌓일 확률이 높다. 일본산 가리비나 조개류를 먹으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도 이 때문인데, 실제로 인근 바다에서 채취한 개볼락(해저 수산물)에서 엄청난 양의 세슘이 검출되기도 했다. 정부에서는 미량이라도 세슘이나 요오드가 나온다면 곧바로 반송 조치 된다고 하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수산물품질관리원이 2015년 전국 수산물 판매 가공업체와 음식점을 단속하면서 원산지를 허위로 표시한 가리비 24건을 적발했는데 모두 일본산이었다. 한국인의 수산물 소비량은 전 세계 1위를 기록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와 세계수산양식현황 협회가 지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국민 1인당 연간 58.4kg의 수산물을 소비했다. 육류 식단에 비해 건강 식품으로 인정받는 것이 수산물 식단이라지만, 방사능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면 그다지 기뻐할 만한 1위는 아니다. 게다가 올 상반기 기준, 국내에 수입된 후쿠시마산 식품은 총 60여 톤. 우리의 식탁이 방사능의 위험으로부터 100% 안전한 식탁이라고 그 누가 확신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