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가을/겨울 시즌의 쿠튀르 영역을 담당하며 깃털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가볍게 흩날리며 낭만을 드리우는 깃털은 이번 시즌 가장 관능적인 장식이다.

 

1031-121-1

 

깃털이 바람에 부드럽게 나부끼는 슬립 드레스와 시선을 압도하는 타조 깃털 모자가 프라다 컬렉션에 등장했다. 깃털이 다시 유행이라고? 깃털 스툴을 두르고 관능적으로 누워 있는 오래된 흑백 영화 속 할리우드 여배우 메이 웨스나 마릴린 먼로를 떠오르게 하는? 아니면 반짝이는 시퀸과 함께 한물간 유행의 무대 의상이거나!

깃털은 오래전 할리우드 신에서 관능을 담당했지만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섹시함을 부각시켜 되레 촌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곤 했다. 그런데 올 가을/겨울 시즌에는 이러한 잔상을 말끔히 지워야 할 듯하다. 디자이너들은 깃털이야말로 올 시즌을 평정할 가장 세련되고 멋진 장식이라고 이야기한다. 더욱이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잘리아, 프라다, 캘빈 클라인의 라프 시몬스, J.W. 앤더슨의 조나단 앤더슨 등 동시대를 이끌어가는 디자이너들의 선택이니 한 치의 의심 없이 받아들여도 좋다. 그들은 공기를 타고 나른하게 흔들리는 깃털이 지닌 가벼움의 힘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가벼움이 어떤 룩도 나긋나긋하게 만드는 낭만적인 힘을 불러옴을 말이다.

비정상적인 해체와 조합으로 단숨에 발렌시아가에서 성공을 거둔 뎀나 바잘리아는 한쪽 어깨를 낚아챈 듯 한 실루엣의 코트와 오버사이즈 재킷, 형형색색의 스타킹 부츠, 자동차의 윙 미러에서 영감을 받은 클러치백 등으로 자신이 주장하는 ‘현대적인 세련미(Modern Sophistication)’를 이룩했다. 그리고 발렌시아가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크리스토벌 발렌시아가의 1950년대 아카이브에서 찾아낸 거대하게 부풀었거나, 분홍빛 꽃을 드리웠거나, 커다란 리본을 장식한 아홉 벌의 드라마틱한 드레스를 선보였다. 그 행렬 말미엔 온통 타조 깃털로 장식된 드레스도 있었다. 깃털은 그렇게 날카로운 모던함에 섬세함을 더하는 장치로 사용되었다.

섬세함과 모던함을 오가는 데 재능을 지닌 J.W. 앤더슨 역시 이번 시즌 자신의 컬렉션을 두고 위‘ 버- 페미닌(Uber-Feminine)’이라고 정의 내렸다. 극도로 여성스러운 스타일을 일컫는 이 단어를 언급한 이유는 컬렉션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몸을 타고 흐르는 저지 드레스와 반짝이는 실버 체인 소재, 비대칭으로 유연하게 흩날리는 패치워크 드레스 사이로 타조 깃털로 밑단을 장식한 저지 스커트가 컬렉션을 채웠다. 물론 조나단 앤더슨은 극도로 여성스러운 의상을 하이톱 스니커즈, 날렵한 부츠와 매치해 현대적인 뉘앙스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깃털과 같은 장식으로 현대 여성이 갖추어야 할 여성성에 대한 예를 제시한 것이다. 2017년 가을/겨울 시즌 캘빈 클라인으로 이적해 모든 이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던 라프 시몬스도 현대적인 여성성에 대한 해답으로 깃털 장식을 선택했다. 라프 시몬스가 캘빈 클라인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컬렉션은 드라마틱한 변화보다는 미국 태생다운 DNA가 도드라졌다. 카우보이에서 영감 받은 체크 슈트, 인디고 데님 셔츠와 팬츠, 보디를 부분적으로 드러내는 커팅의 톱과 스커트 등의 실루엣은 간결하고 담백했고 장식은 되도록 배제되었다. 그러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회화적인 깃털 장식만은 예외였다. 투명한 PVC 소재 안에 갇힌 깃털은 낭만적 쿠튀르를 완성했던 파리에서의 라프 시몬스를 떠올리게 했다. 비닐과 조합한 깃털이었기에 더욱 특별한 인상을 남겼다.

누구보다 깃털 장식을 현대적인 여성성의 증거로 내세운 디자이너는 미우치아 프라다. 그녀는 옷에 장식으로 깃털을 사용했을 때 일어날 효과를 잘 알고 있었다. 크리스 털 장식과 함께 황새 깃털과 타조 깃털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한 룩을 선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유혹의 무기는 언제나 같아요. 깃털, 그리고 란제리.” 남녀의 경계를 구분 짓는 것이 더 이상 의미 없는 ‘젠더 플루이드’ 시대에 성적인 무기로 깃털을 사용하란 뜻인가? 어떤 이들은 미우치아 프라다의 의견에 반문을 제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성이 성적 매력을 부각시키기 위한 패션적인 장치로 깃털과 란제리만 한 것이 없다는 그의 말은 경험에 의해 오랜 시간 동안 확인된 사실이다. 젊은 시절 입생로랑의 옷을 입고 마르크스주의 집회에 참석했던 미우치아 프라다는 새로운 시대의 페미니스트들을 위해 본능적으로 타고난 여성성을 숨기지 말라고 주장 한다. 깃털은 그렇게 21세기에 걸맞은 여성성을 부각 시키는 데 매우 탁월한 유혹의 기술을 발휘한다.

가볍고 화려하며 더 나아가 시적인 분위기마저 이끌어내는 깃털은 이번 시즌 가장 관능적인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모던함 속에 섬세함을 더할 수 있는 아주 영리하고도 영리한 무기다.

 

1031-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