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1인 가구를 비켜가는 부동산 정책은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변함이 없다. 싱글은 언제까지 부동산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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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결혼을 해.” 2년 전 독립을 하겠다고 선언한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 했다. 서른 살이 훌쩍 넘었으니 독립하는 셈치고 결혼하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난 결혼 과 독립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며, 몇 년 안에 결혼을 하더라도 평생 오롯이 혼자 사는 경험은 지금이 아니면 늙어서 혼자가 되는 순간이 아니겠냐는 말로 반박했다. 그리고 호기롭게 집을 알아보며 숱한 좌절을 맛봐야 했다. 2년 전에는 빚을 져서라도 집을 사 라는 일명 ‘초이노믹스’가 활개를 쳤기에 나 역시 마음만 먹으면 전셋집 정도는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빚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과 찝찝함 때문에 내 수준에 맞는 허름한 월셋 집을 구했다. 그리고 1년 후 새 정부가 들어섰고, 지난 8월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다. 큰 줄기는 부동산 시장의 안정화인데, 내용을 크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청약 1순위 자격 요건 더욱 강화, 실제로 거주할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분양한다.
● 서울 전역과 과천, 세종 등 수도권 지역을 투기 과열지구로 보고 소유권 이전 등기 시 까지 전매 제한을 한다.
● 대출 규제 강화. 이번 부동산 대책의 핵심 포인트다. 최대 07% 이상 가능했던 주택담 보 대출이 실수요자(무주택세대, 부부합산 소득 7천만원 이하, 주택가격 5억원 이하, 지 역마다 차이는 있다)에 한해 최대 50%밖에 적용받지 못한다.

하지만 정책의 방향은 지난 정부에서도 그랬듯 1인 가구보다는 신혼부부, 신혼부부보 다는 4인가구 등에게만 쏠렸다. 변하지 않는 건 부부가 형성하는 가족만이 정상적인 가 구 형태이며, 내 집 마련을 일생일대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 혹은 강요된 가치관이었다.

내가 분양 시장에 관심을 둔 이유는 내년이면 집 계약기간이 끝나기 때문이었다. 최근 두 달 사이 서울권에서 민영 주택 분양이 이루어진 곳은 공덕과 상암. 서울에서 핫한 동 네임을 감안하더라도 20평대 아파트의 분양가는 5~7억원에 육박했다. 대출이 예전만 큼 되지 않기 때문에 분양가의 40% 이상은 현금으로 가지고 있어야(2~3억이 웬말!) 안정적이라는 전문가의 조언에 난 청약 신청을 포기했다. 더군다나 청약 신청을 할 때 무주택기간, 부양가족수, 청약통장 가입 기간을 점수로 매겨 합산하는 방식인 가점제 를 고려하면 나는 결혼도 하지 않고, 부양 가족도 없으니 불리했다. 몇 가지 설문 조항 에 답변한 후 산출된 나의 점수는 84점 만점에 29점. 그럴 리도 없지만 설사 당첨되더 라도 중도금을 메울 능력도, 돈도 없다는 건 더 큰 문제였다. 신혼부부에게는 대출 가능 액이 높을 거라는 전문가의 말은 나에게 “결혼하라”는 말보다 더 얄궂게 느껴졌다. 서 울에서 작은 아파트를 자가로 소유하고 있는 이들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싱글도 번듯 한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 가능할까? 물론 부모님이 도와줄 수 있는 형편이라면 이야기 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청년 주거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 민달팽이 유니온의 임경지 위원장은 한국 의 부동산 구조는 굉장히 독특하다고 말한다. 최상의 주거 형태가 자가 아파트인 데다 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자가를 많이 소유할수록 안정적인 노후는 보장된다.조 ‘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서글픈 말이 마냥 우습지 않은 이유다. 임 위원장은 불안한 고용과 요 동치는 금리 등 모든 것이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8‘.2 부동산 정책’은 분명 의미가 있 다고 말한다. “무리하게 빚을 내서 집을 사는 악순환은 끊어야 한다. 물론 이전보다 대 출을 많이 받지 못해서 답답한 감은 있지만, 현재 정부는 빚을 내지 않아도 충분히 안정 적으로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큰 틀을 보여준 것이다. 전 정권에서 전세 자금 대출도 넉넉하게 내주긴 했지만, 그만큼 전셋값과 집값이 동반 상승했다. 수요와 공급 의 시장 구조가 전혀 들어맞지 않고, 공급자에게만 유리한 상황이 반복되는 거다.”

이 모든 변화의 목표는 주택 가격의 안정성, 단 하나다. 그게 전세든, 월세든, 자가든 상 관없이 말이다. ‘8.2 부동산 정책’은 분명 빈틈이 많은 정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현 미 국토부 장관을 임명하며 “아파트 가격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주택 자가보유율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개인이 자산을 축적하는 데에는 월세보다는 전세, 전세보다 는 자가가 훨씬 유리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정부가 나서서 일생의 꿈을내 ‘ 집 마련’ 으로 만들어버리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을 따라가지 않는 노마 드족에게는 자가보다는 월세나 전세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인간 삶 의 기본 요건인 주거의 안정성, 더 정확히 말하면 주거 비용의 안정성은 필수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와 월세 인상률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는 전월세 상한제는 필요하다 . 독일 베를린은 불황일 때는 일정 기간 동안 임대인들에게 집값을 올리는 것을 금지한 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한 것이다. 영국은 건실한 임차인 협회가 있어 임대 인과 조직적으로 협상한다. 그에 비해 한국은 늘 부동산 정책이 공급자에게 치중돼 있 으며 시장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도 소극적이었다.

다행히 9월 말이 되면 정부에서 세입자들을 위한 부동산 정책을 다시 내놓을 예정이다 . ‘집을 꼭 사야만 하는 것인가?’ ‘결혼을 한 4인가구만이 정상적인 주거 형태를 가질 수 있는 것인가?’ 이처럼 당연하게 여겼던 것에 대한 의문과 고민이 담겨 있길 바란다. 시 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부동산 정책은 1인가구를 영영 소외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