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것도 쉬운 역할은 아니다. 영화 <다른 길이 있다>에 이어 드라마 <구해줘>의 상미 역을 맡은 서예지는 단순한 히로인과 다르다. 자신과 주변을 구하는 슈퍼 히어로다.

 

스웨터는 에스카다(Escada).

스웨터는 에스카다(Escada).

 

드레스는 마쥬(Maje).

드레스는 마쥬(Maje).

하나씩 들여다보면 모두 어려운 역할이었다.< 사도>에서는 단 몇 장면으로 존재감을 남겨야 하는 정순왕후 역할을 맡았고, <화랑>에서는 선천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몸으로 무예를 단련한 공주를 맡았다. 영화 <다른 길이 있다>에서는 현실의 아픔으 로 ‘동반 자살’을 꾀하게 된 여고생 역할이었다. 그 다음은 조금 쉽게 갈 법도 한데, 그녀가 선택한 건 사이비 종교에 빠진 가 족과 자신을 구해내려는 <구해줘>의 상미다. 선택은 때로 아주 많은 것을 설명해주는 법이다. 서예지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말이다.

촬영하는 동안 인터뷰 제목이 떠올랐어요. ‘서예지가 웃는다’ 어때요? 작년 드라마 <화랑>, 영화 <다른 길이 있다>, 그리 고 <구해줘>에서까지 웃는 장면이 거의 없었죠.
마음에 들어요! 촬영하면서 많이 웃을 수 있어서 좋아요. <구해줘>를 촬영하는 4개월 동안 웃음을 잃었던 터라, 웃는 게 어 색해지더라고요. 순수하게 웃을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웠어요.

아직 방송 중이지만 <구해줘> 촬영은 지난주에 마무리되었어요. <구해줘>를 어떤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한 <구해줘>는 사회 고발 드라마예요. 어느 나라든 가장 예민한 부분이 종교인 것 같아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니 까요. 인간의 연약한 마음을 잘못된 형태로 이용하는 것은 종교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잘못된 것사을회 적 으로 고발하고 싶었어요.

그래서인지 그 어떤 호러 영화보다 무섭다는 반응이 많아요. 사이비 종교인 구선원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은, 실제로 평 범한 종교인들이 쓰는 말이거든요. ‘신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 준다’거나 ‘기도가 부족하다’라는 대사처럼 말이죠.
저도 너무 무섭고 소름 끼쳤어요. 시청자분들이 남긴 글을 보면 구선원을 떠나지 못하는 상미를 두고 ‘고구마’라고 표현하시 기도 하는데, 실제로 제가 촬영을 해보니까 구선원을 나갈 수 없는 마음이 이해가 되었어요. 아버지는 완전히 세뇌되었고, 어머니는 아픈 상황에서 혼자 갈 수는 없는 거예요. 혼자 도망 가는 건 부모를 버리는 거고, 자신은 고아가 되는 거니까요.

무거운 주제고 어려운 인물이죠. 주인공이 예뻐 보이는 역할 또한 아니에요. 이 작품을 피하고 싶진 않았나요?
전혀요. 연기를 어떻게 할까만 생각했는데, 상미가 고통의 상황에 있는데도 연기하는 자체는 굉장히 편했어요. 그 색깔이 저랑 잘 맞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잘 버틸 수 있었어요.

극중 무지군의 실제 촬영지는 양평군이죠? 평화로운 곳 아닌가요?
그런데 다들 양평을 그만 오고 싶어 해요.(하하) 너무 거기서만 찍으니까. 촬영지는 풍경도 아름답고 좋았는데 심적리으로 는 계속 불안해야 하니까, 어둠 속에서 풀밭과 강이 보이면 더 허허벌판 같고 을씨년스럽고 공포감이 더했어요.

극중 옥택연, 우도환 등 또래 배우가 많았죠. 촬영장에선 어떻게 지냈어요? 재미있게 보냈나요? 아니면 대기 중에도 캐 릭터의 감정을 유지했나요?
제가 연기하는 공간은 거의 구선원이었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과 친하게 지내진 못했어요. 저는 캐릭터의 감정을 유지하려 는 편이에요. 그런데 <구해줘>에서는 상미가 우울해 있으니까 전체 분위기가 침체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먼저 웃고 다가가려고 노력했어요. 현장을 오가는 네 달 동안 실제로 제가 매일 가위에 눌리곤 했어요. 이런 상황이 생기니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더라고요.

연출을 맡은 김성수 감독이 여러 인터뷰에서 당신을 칭찬하더군요. 상미 캐릭터를 위해 ‘고난의 수행’을 이어왔다고 했는데, 어떤 수행을 한 거예요?
촬영 3주 전부터 감독님이 추천해주신 음악을 듣고 밖에 나가질 않았어 요. 혼자 감금 생활을 해본 거예요. 그러다 보니 뭔가 우울증 아닌 우울증 이 왔는데, 상미가 이래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선배님들이 많이 도와주 신 덕분에 몰입이 잘됐어요. 감독님께서도 제 역할에 대한 이해와 위로 를 많이 해주셨고요.

체력 소모도 어마어마했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불기도 장면에서 맞다가 척추가 나가는 줄 알았어요.(하하) 연기 가 끝나고 보면 여기저기 긁혀서 피가 나고 멍들어 있었어요. 하지만 ‘상 미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서예지는 얼마나 정신적으로 힘들까’ 하는 시 청자분들의 한마디가 위로가 많이 되더라고요. 실제로 배우들은 고통스 러운 연기를 하면서 ‘나 정말 고통스럽다’고 이야기를 못하잖아요. 근데 봐주시는 분들이 그렇게 이야기해주니까 너무 감사했어요.

드라마가 이제 5부 능선을 넘었죠. 전반부보다 후반부가 기대되는 데, 전반부에서는 광신도가 된 아버지를 설득하려고 하지만 이제부터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구선원을 무너뜨리려 하죠. 어떻게 표현하 고 싶었어요?
두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전에는 이 사람들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표정, 말투, 톤과 눈빛에 싫고 좋은 감정 표현이 확고했는데 후반부에는 그걸 티를 내면 안 되고 ‘척’을 해야 하니까요. 혼자 있을 때 분노가 드러나 고, 다른 사람과 있을 때 아닌 척을 하는 변화무쌍함을 표현하고 싶어요.

어떤 면에서는 이 드라마가 남자들이 상미를 구하는 이야기가 아니 라 상미가 스스로를 구하는 영웅적인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에요, 남자 캐릭터가 여자를 구해주는 게 아니라, 상미의 강인함을 먼저 보여주면서 친구들이 도와주는 것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보통 영화나 드라마는 여성들이 약자고 남자가 강자라 고 생각하는데, 이 드라마는 그런 인식을 바꿔준 것 같아요. 저는 감독님 과 작가님께 “저는 지금 도구만 있으면 당장 교주인 백정기를 어떻게 할 수도 있어요. 상미를 너무 약자로 만들지 마세요. 그러면 상미가 한이 될 거 같아요”라고 한 적이 있어요. 상미도 4인방도 좀 파이팅하게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제 말이 맞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서로 소통 하면서 만들어간 작품이에요.

 

 

스웨터는 캘빈 클라인(Calvin Klein). 스커트는 페이우(Fayewoo).

스웨터는 캘빈 클라인(Calvin Klein). 스커트는 페이우(Fayew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