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외모를 품평하는 문화는 서로가 서로에게 화살을 쏘는 꼴이나 다름없다. 예쁘거나 예쁘지 않거나. 마르거나 마르지 않거나. 어느 한쪽은 괜찮은 문제가 아니다. 이제 외모에 대한 말을 멈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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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만 벌써 외모 품평을 열 번쯤은 당했다. “기자님, 왜 이렇게 살이 많이 빠졌어요?”, “다크가 아주 무릎까지 내려왔네”, “어디 아프세요?” 모두 내 얼굴을 보고 걱정스럽게 하는 말이다. 안다, 이들이 좋은 사람들이며 나를 염려해서 한 말이라는 것을.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말들은 나의 기운을 북돋우긴커녕 스트레스만 남겼다. 사람들은 알까? 내가 평생 이런 말을 들으며 살아왔다는 걸. 그리고 나는 살이 빠지지 않았다. 내 체중은 항상 일정한 편이다.

그렇다. 나는 꽤나 마른 편에 속한다. 뼈대가 가늘고 길쭉한 몸은 집안의 내력이다. 제법 키가 큰 아버지도, 동생도 그런 몸이다. 내 신체에 대해서 나는 항상 두 가지 말을 듣고 산다. “말라서 부럽다”는 것. 그러나 나의 마른 몸은 곧 귀찮음과 고통이었다. 옷을 사도 허리나 품을 줄여 입어야 했고, 몸에 감기는 실크나 저지 소재는 잘 입을 수 없었다. 또한 “너무 말라서 약할 것 같다”는 말을 듣는 게 싫어서, 아파도 남들보다 두세 배는 참았다. 마른 몸에 대한 일방적 찬사 뒤에는 마른 몸에 대한 일방적 후려치기도 존재한다. “남자들은 너무 마른 여자는 싫어해”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렇게 말라서 애는 낳겠냐”는 또 어떤가? 30대 중반이 된 지금은 이런 말들에 전혀 휘둘리지 않지만, 많은 시간 나도 적잖이 고통을 받아왔다. 내 몸을 좋아할 수 없었다. 내 신체를 더 긍정할 수 있었음에도 왜 가슴이 작을까, 왜 더 살이 찌지 않을까를 고민하며 보낸 10대, 20대가 분명 있었다.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하라는 말은 실례라고 생각하면서, 마른 사람에 대한 외모 품평은 실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같은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후배 J는 아름다운 몸을 가지고 있다. 내 몸이 직선적이라면, 그녀는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 날, 우리는 라테를 마시며 서로가 받는 외모 품평에 대한 스트레스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녀는 ‘마른 여자’가 겪는 고충에 대해 알고 놀랐고, 나는 또한 ‘섹시한 몸을 가진 여자’가 받는 시선과 스트레스, 성적인 농담에 대해 놀랐다. 그러니까 우리는 몰랐다. 결국 타인의 사정에는 둔감했다. 타인의 시선에 따라 난도질당하는, 도마 위에 올라간 몸이라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내 몸을 비난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예쁘거나 예쁘지 않거나. 마르거나 마르지 않거나. 외모 품평이란 어느 한쪽은 괜찮은 문제가 아니다. 칭찬의 의도였어도 다시 넣어둘 일이다 . 외모에 대해 품평을 하는 문화는 결국 사람에게 상처를 남긴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완벽한 외모라는 건 없기 때문이다 . 사람들이 극찬을 보내는 연예인을 매달 만나지만, 그들 역시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를 안고 산다. 사람의 미의 기준은 모두 다른데 그들이 모두 한마디씩 한다면…. 이렇게 외모를 품평하고 비난하는 바디 셰이밍(Body Shaming)은 사람의 자존감을 떨어트린다. 자신의 몸을 타자화 하고, 사랑하지 못하게 하며 때로는 우울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최근 ‘머리어깨무릎발’이라는 조사를 진행했다. 신체 부위별로 여성들이 겪는 외모 지적 사례는 내가 겪은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왜 아니겠는가? 한 온라인 쇼핑몰은 ‘유두 색깔’까지 검열해가며, ‘핑크색 유두’로 만들어준다는 크림을 판매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대선 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이 한 ‟북한응원단이 자연미인이었다”는 말은 결국 사과로 끝났다. 젠더 감수성을 지녔다는 문재인 대통령조차 그랬다. 나라의 위기에 목소리를 낸 촛불 집회에서조차 외모를 품평당하고, 여성 아르바이트생의 80%가 이상이 외모 품평을 당한다. 대학교 단톡방에서는 과동기에 대한 외모 평가가 이뤄진다. 외모 품평은 남성이 심하지만, 여성이 여성에게 하는 비율 또한 결코 낮지 않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외모 품평이 관심의 표현이자 칭찬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칭찬 하고 싶으면 “오늘 멋지다”고 말하라. “옷이 잘 어울린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제 외모 품평을 당하고도 침묵만 지키는 시대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일상적으로 외모 품평을 하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입을 다물어야 할 것이다. 그 말이 당신과 당신의 소중한 사람의 직업, 평판, 미래를 위협할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