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 SF 작가 윌리엄 깁슨의 이 말은 미래에 대한 가장 유명한 격언이 되었다. 우리의 일상은 지금도 계속 전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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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아날로그와 디지털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매년 발표한 산업백서 중 <음악 산업백서>를 들여다보자. 장장 565페이지에 걸쳐 지금 우리가 음악을 누리고 있는 방식을 설명한 지표를 보면 사람들의 91%가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동시에 라디오, CD의 고전적인 방식도 꾸준하다. 45%는 이동 시에 음악을 듣지만, 집이나 직장에서 음악을 듣는 사람도 각각 34.2%, 17.1%나 된다. 디지털 음원이 세계를 집어삼킨 것 같은 이때에 아이와, 산요, JVC 켄우드의 빅터는 오히려 부활했다. 영원히 사라진 줄 알았던 레코드와 카세트 플레이어가 다시 돌아온 것. 일본 소니 역시 29년 만에 레코드판 생산을 재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레코드판 제작 공장인 ‘바이닐팩토리’가 생산 라인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레코드와 테이프를 듣지는 않겠지만 누군가는 선택할 것이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영혁은 “오히려 디지털 쪽은 스트리밍에서 정체되어 있다. 스트리밍 다음에 뭐가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취향은 세분화되고, 사람들은 여전히 음악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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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LoveWins
2001년 4월 네덜란드가 역사상 첫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세계의 흐름은 명백하다. 동성결혼을 허용하거나 사실상 인정하는 국가는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2015년 미국 대법원의 동성결혼 금지에 대한 위헌 결정 이후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아시아에서는 대만이 올해 5월 최초로 동성결혼 합법화를 결정했다. “동성인 두 사람이 친밀함과 배타성을 동반한 영구적 결합을 하는 것”을 금지하는 현행법이, 결혼의 자유와 인민 평등권을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벨기에, 영국,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이 뒤를 따랐고, 스위스, 이탈리아, 헝가리 등 ‘시민 결합’ 형태로 인정한 국가도 있다. LGBT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와 #LoveWins라는 해시태그는 세계가 공유하는 상징이 되었다. 작년 말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LGBT 수용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35개 OECD 회원국 중 31위를 차지했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이미 미래는 시작되고 있다. 아주 빠른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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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 내 하루의 녹색 한 조각
서울역 앞 고가도로에 만들어진 ‘서울로7017’은 수많은 화분을 머리에 이고 문을 열었다. 찬반 여론이 거세지만, 서울 도심의 값비싼 공간을 공공과 자연에 내주었다는 것은 그만큼 달라진 인식을 보여준다. 이제 현대인은 도시에서 살 수밖에 없다면, 아파트에서 살 수밖에 없다면 그 공간에서라도 자연을 누리고자 한다. 이를 ‘반려식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공공장소는 물론 집 안, 사무실 한 곳까지 녹색 식물을 들여놓는 플랜테리어의 유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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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콘텐츠를 팝니다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대중을 대상으로 모금을 하는 크라우드 펀딩, 텀블벅 등은 이미 새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쪽에서의 크라우딩 펀딩이 화제가 되곤 하며, 미국에서는 샤워기처럼 일상에서 필요한 생활 상품에 대한 아이디어도 인기가 있다. 최근 거센 상승세를 보이는 퍼블리(publy.co)는 지적 자본으로 유료 콘텐츠를 만드는 스타트업이다.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공공성을 갖춘 콘텐츠를 지향한다. 콘텐츠를 판매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기획안을 퍼블리에 등록하고,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선주문을 받은 후 일정 시기까지 목표 금액이 달성하면 콘텐츠를 발행한다. 퍼블리의 인기 콘텐츠들은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면서 동시에 돈을 지불할 만큼의 전문성을 갖춘 것이 많다. 광고, 출판, 경제 관련의 콘텐츠가 활발히 거래된다. 2017년 칸광고제 리포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참관기, 세계 개발자대회 보고서 등 자신의 전문 분야의 전망을 높일 만한 정보 등이 많다. 콘텐츠 가격은 제각기 다르지만 1~3만원선.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필요한 정보라면 사람들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타깃 독자의 연령대와 직업군은 20대~40대 초반이다. 2016년 누적펀딩 금액은 약 2억원이며 올해에는 더욱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릴 것으로 예상된다. 퍼블리의 성공은 디지털 속 정보는 모두 공짜라는 공공연한 인식에 반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정보에는 지갑을 연다. 또한 기존의 유료 콘텐츠 플랫폼인 빙글, 스토리볼 등 보다 ‘편집’의 힘이 더해졌다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디지털 콘텐츠의 미래에 대한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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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극장전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예상치 못한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극장 관객수를 좌지우지하는 멀티플렉스와 온라인을 기반한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의 싸움이었다. 작년 정식으로 한국에 상륙한 넷플릭스는 세계 최대 사업자다. 인터넷으로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을 서비스하는 ‘넷플릭스’의 이름은 인터넷(Net)과 영화(Flicks)에서 따왔다. 넷플릭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제작된 <옥자>는 처음부터 극장 개봉과 넷플릭스 동시 개봉을 계획했지만, 멀티플렉스 측은 최소 3주 동안 극장 개봉을 우선시할 것을 요구했다. 각각 이익을 대변하는 입장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멀티플렉스를 제외한 전국 100여 곳의 스크린에서만 개봉하게 되었다. <옥자>를 스크린에서 보길 원하는 관객은 몇 되지 않는 극장을 선점하기 전에 애써야만 했다. 2012년부터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시리즈’ 등으로 불리는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고, <옥자> 역시 그 일환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은 감독에게 전권을 주는 유일한 곳이었기 때문에 넷플릭스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영화관에 걸리지 못해도 영화는 영화다. 또한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볼 수 있다. <옥자>를 거절한 멀티플렉스는 대신 <리얼>을 걸었다. 영화 관객을 사이에 둔 콘텐츠의 경쟁력과 멀티플렉스라는 영화 권력의 싸움은, 앞으로도 흥미진진할 것 같다. 그러나 극장 개봉이 그저 선택이 된 넷플릭스가 좀 더 유리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