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사느냐의 단순한 기호를 넘어 인생의 방향과 태도를 결정짓는 채집과도 같다. 각자의 색과 무게로 삶을 사랑하는 여섯 여자의 취향과 패션 이야기.

 

1 최근 꽂힌 짐 홀랜드의 페인팅. 색의 조화가 따뜻하고도 담담하다. 2 기자였던 시절, 조르주 모란디의 정물 시리즈는 구성 면에서 많은 영감을 주었다. 3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악은 여전히 CD를 직접 사서 듣는다. 버릴 곡 하나 없는 명반인 벨엔 세바스찬의 .

1 최근 꽂힌 짐 홀랜드의 페인팅. 색의 조화가 따뜻하고도 담담하다. 2 기자였던 시절, 조르주 모란디의 정물 시리즈는 구성 면에서 많은 영감을 주었다. 3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악은 여전히 CD를 직접 사서 듣는다. 버릴 곡 하나 없는 명반인 벨엔 세바스찬의 <The Life Pursuit>.

 

4 애정하는 도쿄의 편집숍 플레이 마운틴에서 선보인 신타로 코지마의 전시. 5 지난봄 도쿄 신미술관에서 어린 시절부터 접해온 쿠사마 야요이의 방대한 회고전을 관람했다. 6 오사카 여행에서 찾은 마법 같은 빈티지숍, 리코르도. 7 오래 쓸 수 있는 빈티지 그릇을 모으기 시작했다.

4 애정하는 도쿄의 편집숍 플레이 마운틴에서 선보인 신타로 코지마의 전시. 5 지난봄 도쿄 신미술관에서 어린 시절부터 접해온 쿠사마 야요이의 방대한 회고전을 관람했다. 6 오사카 여행에서 찾은 마법 같은 빈티지숍, 리코르도. 7 오래 쓸 수 있는 빈티지 그릇을 모으기 시작했다.

 

다양한 문화와 자유로운 삶이 내게 선물한 것들
이민경(패션 칼럼니스트, 번역가)

얼마 전, 스테레오 포닉스의 ‘Song for the Summer’를 듣다가 어릴 적 여행길에 아빠의 차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컨트리 가수 존 덴버의 ‘Annie’s Song’이 떠올랐다. 후반부의 전주 흐름이 묘하게 닮아 있다. 이들도 그의 음악을 많이 들었던 것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그러고 보면 취향이란 건 나를 둘러싼 환경의 부산물이다. 잘 보이지도 않고 콕 짚어 설명할 수도 없지만 우리가 보낸 시간, 즉 함께 지낸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과의 추억과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조금씩, 우리 안에서 쌓이고 피어나는 미묘한 것들. 그렇게 각자의 빛깔로 아름답게 빛나는 그 무엇이 아닐까.

어렸을 때부터 나는 좋아하는 것도, 궁금한 것도 많았다. 내게 영감을 주는 대상을 묻는다면 여름의 뜨거운 햇살과 후끈한 공기, 록과 인디 팝, 서핑, 그림, 이탈리아와 LA, 필라테스, 술 등 너무 많아서 딱 한 가지를 꼽기도 뭐하다. 나의 경우, 어린 시절을 홍콩에서 보낸 덕에 다양한 동서양의 문화와 영국식 교육을 접할 수 있었다. 주말이면 아빠와 등산을 가고, 근처 크고 작은 섬에서 친구들과 바비큐를 하거나 산악 자전거를 탔다. 방과 후엔 HMV로 달려가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펑크 록을 실컷 듣고는 CD를 한아름 사오는 게 낙이었다. 그 시절 사진을 공부했던 경험 또한 자연스럽게 사진과 그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지금도 크고 작은 미술관을 기웃거리게 만든 것 같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곳에서 내가 진짜 배운 건 대단한 취향이 아니라, 세상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가장 나다운 삶이고 행복한 길이라는, 인생을 바라보는 어떤 자유로운 방식이었던 것 같다. 특히 각종 운동으로 땀을 흘리며 느꼈던 그때의 짜릿한 기분은 필라테스를 평생 운동으로 택하게끔 만들었다. ‘인정 사정 볼 것 없는’ 듯한 필라테스 수업을 듣고 나면, 머리는 맑아지고 마음은 그때 느꼈던 똑같은 분량의 희망으로 가득 차는 것이다. 그건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먹어도 된다는 귀여운 믿음이고, 보다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된 것만 같은 기분이며, 내일은 좀 더 나은 나를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은 긍정이다.

일본으로 넘어와 산 지 꼬박 1년. 지금 나를 둘러싼 환경이 선물한 또 다른 취향은 빈티지의 가치다. 소위 제일 잘나가는 컨템퍼러리 편집숍은 물론이고 주말 벼룩시장에는 늘 빈티지가 자유롭게 뒤섞여 있는데, 그것을 보며 빈티지와 새 물건, 앤티크의 구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 대대로 이어지는 가게 혹은 오랜 세월과 히스토리를 간직한 물건에 대해 높은 자부심을 가진 주인들, 그리고 그것을 단단하게 받쳐주고 있는 손님들의 성숙한 소비 문화는 내게 좋은 물건을 단번에 알아보는 심미안과 오래 쓰는 물건에 대한 가치를 알려준다. 요즘 나의 쇼핑 리스트가 점차 빈티지로 채워지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