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복을 판매하는 쇼핑몰의 사진이 야릇하다. 짙은 화장, 야릇한 표정과 포즈. 이 사진들은 마치 성인잡지와 같은 문법을 따르는 듯하다. 쇼핑몰 사진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두 사람이 이야기한다.

 

28-109

명백한 성적 대상화

조카가 둘 있다. 남자, 여자, 연년생이다. 그 아이들을 통해 성 관념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배운다. 우리 집안은 외할머니도, 어머니도 아들이 없는 터라여 ‘자는/남자는 어떠해야 한다’는 구분을 엄격하게 삼간다. 하지만 바깥 세상은 그렇지 않다. 오빠와 우당탕탕 뛰놀며 자란 둘째 조카는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 친구에게서 “오늘 옷 안 예뻐.” 지적을 받은 뒤로 분홍색 공주 옷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언니와 나는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끼리 “‘츄리닝’ 입은 게 제일 예뻐.” “여자애들이 톰보이처럼 입는 게 그렇게 귀엽더라.” 소곤거리는 걸 자주 보여줬을 뿐이다. 아이는 나름대로 절충점을 찾아 이건 이것대로, 저건 저것대로 좋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얄팍한 전략이 먹힐지는 모르겠다.

온 세상이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고, 또한 연령에 관계없이 미숙하고 나약하고 예쁘고 만만하며 남자의 성적 욕구를 위해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암시하는 판국에, 가정 교육만으로 주체적인 여성을 길러내는 게 과연 가능할까? 20대 여자들이 엉덩이만 간신히 가리는 교복 치마를 입고 애교를 부리는 게 주류 엔터테인먼트인 나라다. 여중생을 시간차 윤간한 걸 책에다 자랑한 남자가 버젓이 공직자가 되는 나라다. 일하는 여자, 말하는 여자, 생각하는 여자는 지워버리고 명품 밝히고 남자 돈이나 뜯어먹는 여자 아니면 아이 낳아 기르는 자궁으로서의 여성만 미디어에 노출하는 나라다. 그래도 어릴때부터 제 머리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면 면역이 되겠거니 했다. 그런데 이번 달, 아동복 화보 논란을 접하고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사지를 늘어뜨리거나 허리를 있는 대로 꼬고 도도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여자 아이들은 영락없이 로리타다. 여자들의 주체성, 강인함, 카리스마를 거세하고 섹스 어필하는 능력만 한껏 부각시키는 변태적인 사회화 작업이 어릴때부터 얼마나 부지불식간에 진행되는지 엿볼 수 있다. 몸매를 보정하기 위해 포토샵을 사용한 흔적도 보인다. 성인 여자들에게도 다이어트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을 사랑하라고 캠페인을 벌이는 판에 2차 성징도 안 나타난 아이들에게 그런 비현실적인 몸매를 보여주는 게 잘하는 짓일까? 관계자들은 황당할 거다. 예뻐 보여서 그랬을 뿐 ‘성적 대상화’는 꿈도 안 꿨다고. 그게 문제다. 얼마나 여성의 성적 대상화가 만연하면 그게 바로 성적 대상화고,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눈치도 못 챘냐는 말이다. 여자는 그렇게 공기처럼 차별과 억압을 호흡하며 자란다. 페미니즘을 몰라서 문제의식이 없었고, 창의력이 없어서 성인 잡지를 따라 했을 뿐인데 갑자기 비난이 쏟아져서 놀랐다면, 그래, 동정할 수 있다. 하지만 ‘Can I Touch Your Tits?(네 젖꼭지 만져도 돼?)’, ‘Girls Say Yes to Boys Who Say No(소녀들은 안 된다고 말하는 소년들을 좋아해)’ 같은 끔찍한 문장을 애들 옷에 새겨 넣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제발 제 돈 내고 콘돔을 살 수 있고, 원치 않은 요구를 거절할 수 있고, 젠더를 확립할 때까지만이라도 아이들을 중립적인 존재로 내버려두면 안 되나? 그게 이 나라에서는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글 | 이숙명(칼럼니스트)

 

쇼핑몰의 입장

아이들을 모델로 하는 아동복 쇼핑몰을 하는 입장에서 그다지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주제다. 나 역시 쇼핑몰에서 논란이 된 사진을 보았다. 특히 문제가 되는 문구는 논란이 되지 않았다면 눈여겨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쇼핑몰을 하니 다른 시선에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먼저 쇼핑몰이 여자아이들을 성인처럼 대상화하는 사진을 찍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두 가지라고 본다. 첫 번째는 운영자가 애초부터 여성의 대상화에 대한 인식이나 개념이 없는 경우다. 이들은 이 사진을 두고 예쁘다고 생각할 뿐, 비난하는 대중이 이상한 시선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즉 눈이 세 개인 나라에서는 눈이 두 개인 사람이 비정상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인식과 개념은 다소 있지만 상업성과 타협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눈길을 끌어 팔리는 이미지를 택한 경우다. 물론 나도 미국의 갭이나 제이크루처럼 ‘아이를 아이답게’ 촬영한 사진을 놓고 판매하면 좋겠다. 그러나 그런 사진으로는 옷이 팔리지 않는다. 다수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쇼핑몰에서 아이 옷을 사는 사람들은 성인 여성이다. 이들이 선호하는 상품 이미지는 여성성을 극대화하는 쪽이다. 성인 옷을 판매하는 쇼핑몰만 봐도 안다. 평범한 여성들이 옷을 평범하게 입은 사진을 보고 상품을 주문할까? 아니면 팔다리를 늘이고, 가슴을 강조한 채 핫플레이스에서 촬영한 쇼핑몰 사진을 보고 상품을 주문할까? 나는 아동복 쇼핑몰을 운영하기 전에 성인 쇼핑몰을 운영했다. 솔직히 답은 후자다.

온라인에 기반한 쇼핑몰은 대다수가 소규모다. 전략은 1차원적이고 단순하다. 이미지 전략을 세우거나, 광고를 꾸준히 할 여력이 있는 곳은 소수의 매우 잘되는 곳뿐이다. 대개 쇼핑몰에 있어 상품 사진은 최대의 홍보이자 마케팅이다. 자신의 아이에게 입히는 경우가 가장 많고,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은 눈에 띄는 예쁜 아이 모델에게 모델료를 지불하고 스튜디오나 예쁜 카페, 펜션 등을 빌려서 촬영한다. 성인처럼 화장을 시키고 팔다리를 좀 더 늘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걸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쇼핑몰 세계에서는 뭐 하나가 반응이 좋으면 금세 그것을 따라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SNS에서 논란이 될 정도의 사진을 촬영한 적이 없었기에 그 사진을 보고 적잖이 놀라긴 했다. 나 역시 불편함과 위험함을 느꼈다.

다만 나는 운영자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고 싶다. 결국 시장의 잘못된 점을 바꾸는 가장 큰 세력은 소비자라는 것이다. 사진에서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것이 옳지 않다고 느껴 현상을 바꾸고 싶다면 모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편함을 말하고, 그런 사진을 게시하는 쇼핑몰을 거부해야 한다. 그래야 변한다. 소비자의 반발에 부딪히면 판매자는 방침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요즘 이런 논란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데, 생산 공장에서 종종 만나는 다른 판매자도 최근 이슈가 된 사진과 문구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프로불편러’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나부터도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요즘은 여자아이를 위한 슬로건 티셔츠를 만들기 위해 멋진 슬로건을 고민 중이다. 글 | 쇼핑몰 운영자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