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마을

눈 덮인 마을

 

양귀비꽃

양귀비꽃

모네, 르누아르, 고흐, 고갱 등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들은 대개 인상파 쪽에 속한다. 누가 봐도 아름다운 그림이라 대중적인 사랑을 많이 받았고, 현재도 그렇다. 1900년대 초반 타성에 젖어 있는 인상파의 화풍에 반기를 든 젊은 작가들의 짧은 만남으로 형성된 미술운동이 바로 야수파다. 대담하고, 강렬한 색채를 구사하는 야수파 화가들의 작품은 화가의 주관적인 감정을 격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 주축이 된 두 명의 화가가 바로 앙리 마티스와 모리스 드 블라맹크다. 마티스에 비해 블라맹크라는 이름의 화가는 낯설다. 블라맹크는 반 고흐의 전시를 보고 자극을 받았고, 마티스를 만난 후에 비로소 처음 작품을 발표했다. 그리고 올여름 한국에서 최초로 <블라맹크 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는 ‘작품 속에서 작가의 삶을 바라보다’라는 주제로 네 가지 파트로 나누어진다. 회색과 흰색, 검은색에 가까운 청색을 두껍게 칠한 풍경화를 주로 그리며 폴 세잔의 작품을 연구해 입체감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던 시기, 큰 변화 없이 하늘과 들판, 길의 정경 등을 담은 풍경화와 정물이 주를 이룬 시기 등 1907년부터 1958년까지 작가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순서로 진행된다. 총 70여 점의 작품으로 모두 한국에서는 처음 소개된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에 전시되는 블라맹크의 작품들은 거침없는 화가의 필치와 중후한 색채가 돋보인다. 캔버스에 직접 유화 물감을 짜서 붓칠을 한 화가 특유의 작업 방식은 모니터 화면에 띄운 그림으로는 결코 확인할 수 없다. 격정적인 화가의 감정이 작품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확연히 느껴진다. 그래서 이번 전시를 ‘유화를 왜 원화로 봐야 하는지 증명해주는 전시’라고도 말할 수 있다. 선명한 색채와 두툼한 질감을 가진 그림은 생동감이 넘친다. “직관이 예술의 기초를 이룬다”라고 믿은 블라맹크가 왜 야수파 화가 중에서도 선명한 표현력을 지닌 작가로 평가받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왜?’라는 질문이 어울리지 않는 영역이 예술이지만, 블라맹크에게는 더욱 우문처럼 느껴진다. “뛰어난 회화는 훌륭한 요리법과 같아서, 맛볼 수 있으나 설명하기는 어렵다”라는 그의 말처럼 직관과 감정으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세상의 기준에서 화가로서의 명성을 인정받는 것에는 무관심했다. 오히려 루브르박물관에 단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과거의 거장들에게 그림 배우는 것을 경멸했다. 블라맹크에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인간이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처럼 자연발생적인 신체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인정과 찬사는 이 자유로운 예술가에게는 크게 의미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역동적이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터치가 가득 담긴 블라맹크의 작품은 1년 중 가장 뜨거운 이 계절과 무척 닮았다. 우리가 블라맹크를 미술관에 가서 직접 눈으로 보며 느껴야 하는 이유다. 8월 20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