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 있는 사업가이자 마음 따뜻한 자선가이기도 한 칼리 클로스. ‘톱 모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지만 그것만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그녀의 현재 그리고 미래.

 

보디슈트와 슈즈는 에밀리오 푸치(Emilio Pucci). 귀고리는 프로엔자 스쿨러(Proenza Schouler). 팔찌는 파스팔리(Paspaley). 반지는 카일리스(Kailis).

보디슈트와 슈즈는 에밀리오 푸치(Emilio Pucci). 귀고리는 프로엔자 스쿨러(Proenza Schouler). 팔찌는 파스팔리(Paspaley). 반지는 카일리스(Kailis).

 

스윔슈트와 스커트는 미우미우(Miu Miu). 오른손의 반지는 조지 젠슨(Georg Jensen)과 티파니(Tiffany). 왼손의 반지는 스와로브스키(Swarovski). 슈즈는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스윔슈트와 스커트는 미우미우(Miu Miu). 오른손의 반지는 조지 젠슨(Georg Jensen)과 티파니(Tiffany). 왼손의 반지는 스와로브스키(Swarovski). 슈즈는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의자에 등을 기대앉은 칼리 클로스는 통유리 너머의 시드니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다음에 인터뷰를 할 때는 이런 곳 이 제 사무실이 되어 있을 거예요”. 손짓으로 허공에 큰 원을 그리며 칼리는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망 좋은 사무실과 큰 회의실을 둔 CEO가 될 거라고요.” 웃으며 말했지만 그녀의 말에 진심이 묻어났다. 칼리 클로스는 길거 리에 있으면 단번에 눈에 띌 정도로 천생 모델이다. 시드니 본다이 비치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면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긴 팔다리, 섬세한 포즈,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목구비, 컷마다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손. 말괄량이 소녀 같다가도 눈썹을 치켜세우면 성숙해 보인다. 미국 미네소타 주 세인트 루이스에서 태어난 칼리 클로스는 캘빈 클라인 쇼에서 모델로 데뷔했고, 단숨에 슈퍼모델이 됐다. 완벽한 모델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춘 칼리는 주요 패션쇼 런웨이에 빠짐없이 올랐다. “모델 생활한 지 10년 이 다 되어가요.” 그녀는 스물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비해 꽤 오래 모델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쑥스러워했다. “활동 기간을 말하면 제가 굉장히 성숙한 것 같아요”. 모델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을 뿐 아니라, 그녀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알려져 있다시피 칼리는 코더(Coder: 컴퓨터 프로그래머)이고 제빵사이며, 사업가이자 자선가, 그리고 뉴욕대 학생이다. 앨 맥퍼슨이나 타이라 뱅크스를 보면, 모델이 유명 사업가로 거듭나는 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과의 차이점은 칼리의 사업 분야가 패션이나 뷰티 관련 업계가 아닌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제빵사업을 한다 는 것이다. 칼리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사업에 임한다. 그녀는 “현재에 만족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저를 규정하는 수식어가 하나인 것도 원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보낸 고등학교 재학 시절, 그녀는 모델 일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모델 일이 이전보다 저에게 주는 자극이 많지 않더라도 그만두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모델 활 동을 기반으로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찾기로 했어요. 패션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더라도요.” 칼리는 자신이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앱을 만드는 데 필요한 컴퓨터 프로그램 이야기가 나오면 그녀는 눈을 반짝였고, 창의력이 필요한 기술적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다. 칼리가 처음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아비 플롬 바움을 만나면서부터이다. 아비 플롬 바움은 뉴욕 코딩학교인 플랫아이언 스쿨(Flatiron School)의 창립자이자 학장으로 6개월 동안 칼리에게 코딩을 가르쳤다. “일단 배우고 싶었어요. 새롭게 도전할 대상이 필요했거든요. 아비의 수업 덕분에 재미없어 보이던 컴퓨터 기술에 흥미를 느끼게 됐어요”. 칼리와 아비는 남학생이 대다수 참여 하는 이 수업에 어떻게 하면 여학생도 참여하게 할지 의논했다. 그리고 마침내, 칼리가 자신의 팬을 독려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저를 좋아하는 소녀들이 컴퓨터 기술에 흥미를 갖기를 바랐어요. 남성 비율이 절대적 으로 많은 산업에 더 많은 여성이 뛰어들어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코드 위드 클로 시(Kode with Klossy)’라는 장학 재단을 설립했다. 물론 혹자는 모델이 왜 여성들의 코딩 교육을 지원하는지 의아해했 다. 그에 대해 칼리는 이렇게 설명한다.“ 저를 평가절하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 알아요. 그래서 더 잘해서 그들이 틀렸 다는 걸 증명하고 싶고, 무엇이든 최선의 결과를 내고 싶어요.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하는 것도 좋고요” 칼. 리의 자선 사업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제빵에 관심이 많던 그녀는 뉴욕 모모쿠쿠 밀크바의 셰프이자 오너인 크리스티나 토 시와 협업해 칼리스 쿠키(Karlie’s Kookies)라는 쿠키 브랜드를 만들었다. 전 세계 불우 아동을 위한 모금을 마련하기 위한 사업이다. 모델 랭킹 사이트 모델스닷컴(models.com)과 기술전문지 <데크 크런치(Tech Crunch)>, 두 곳에 프로필이 올라가 있는 사람은 칼리가 유일할 것이다. 칼리는 SNS에서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에서 지속적으로 기술에 대해 언급해왔다. 그녀는 대중들에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잘 알고 있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람들이 코딩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데 그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몰라요. 하지만 세상은 계속해서 기술과 함께 변할 거예요. 코딩 기술을 습득한다면 산업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지금도 일어나는 중이고요.”

 

재킷과 팬츠, 점프슈트는 세린느(Celine).

재킷과 팬츠, 점프슈트는 세린느(Celine).

 

톱과 팬츠, 슈즈는 발렌시아가 (Balenciaga). 반지는 조지 젠슨.

톱과 팬츠, 슈즈는 발렌시아가(Balenciaga). 반지는 조지 젠슨.

칼리는 촬영을 위해 호주에 머물면서도 페미니즘 관련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칼리는 그런 자신을 당당하게 ‘너드(Nerd)’라 말했다. 그녀는 조만간 TV 쇼 진행자이자 과학자인 빌 나이가 진행하는 <세상을 구하는 남자 – 빌 나이>에 통신원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수학이나 과학처럼 학교에서 배우면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것들이 있어요. 저는 성적이 반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하는 학생이었어요. 하지만 창의력은 별로 없었죠”. 패션계에 종사한 경험은 그녀의 부족한 창의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창의력을 SNS나 유튜브를 통해 마음껏 활용하고 있다. 칼리는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가 없던 시절과 비교하며 패션계가 SNS를 수용하는 방식을 눈여겨봤고, 거기에서 얻은 것을 자신의 패션 커리어에 적용했다. “그때는 인스타그램이 없었어요. 패션쇼 런웨이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되면서 큰 변화가 생겼죠. 모두가 사람들과의 소통 방식을 새롭게 만들어야 했어요”. 지금 칼리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스냅챗, 트위터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모델뿐 아니라 누구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SNS를 하고 있으면 힘이 나요.” 그녀가 이렇게 자신감을 갖기까지는 수년이 걸렸다. 최근 <패스트 컴퍼니(Fast Company)>라는 한 테크 매거진 화보 촬영에서 그녀는 커리어에 대해 이야기했다. “패션 화보 촬영을 할 때는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게 좋아요. 하지만 테크 매거진과의 촬영에서는 제 모습 그대로를 담았죠. 왠지 나약하고 발가벗은 듯한 기분들이었어요.” 이어 그녀는 자신의 커리어가 무엇을 촬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인정했다. “자아 정체성을 찾는 게 중요한 시점이 있죠. 저는 아직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있어요. 그리고 계속 그러길 바라요. 내면의 불안감 때문에나 자신을 증명하려고 계속 노력하게 되니까요. ” 대화 중에 칼리는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특히 삶, 커리어, 자신의 내면에 관해서는 더욱 그랬다. 이는 칼리가 이미 삶의 우선순위를 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니 드레스와 레깅스는 구찌(Gucci). 귀고리는 세론(Cerrone). 오른손의 반지는 스와로브스키. 왼손의 반지는 불가리(Bulgari), 하디 브라더스(Hardy Brothers). 슈즈는 폴 앤드류(Paul Andrew). 146-

미니 드레스와 레깅스는 구찌(Gucci). 귀고리는 세론(Cerrone). 오른손의 반지는 스와로브스키. 왼손의 반지는 불가리(Bulgari), 하디 브라더스(Hardy Brothers). 슈즈는 폴 앤드류(Paul Andrew).

칼리가 사업가 기질을 가지게 된 데에는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가족과 함께 캠핑 여행을 다닐 때 칼리의 부모님은 오디오북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반복 재생해서 틀어주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전 시리즈를 반복 재생해서 들었는데 이상하게도 ‘자기 자신의 보스가 되어라. 성장할 수 있는 것에 투자해라’라는 구절이 뇌리에 박히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테크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고, 관련 산업 기반을 만드는 코딩을 계속 배우려고 하는 거예요”. 호주판<보그>에서 진행하는 보그 코드(Vogue Codes) 캠페인에 대해 인터뷰하던 중 칼리는 말했다.“저는 코드 위드 클로시가 더욱 성장하고 영향력을 갖게 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새 사업을 구축하고도 싶어요.” 관심만큼 그녀는 테크 분야의 인맥도 넓다. 남자친구 조슈아 쿠시너도 그중 한 명이다. 이방카 트럼프의 남편 자레드 쿠시너의 동생이기도 한 조슈아 벤는 처기업 트라이브 캐피털(Thrive Capital)의 공동 창립자이다. 칼리는 패션 디자이너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나 모델 크리스티 털링턴과 같은 멘토들의 조언을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매사에 감사하고 진실하면서 끈기가 있어야 해요.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달라고 하기 어려웠던 때가 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기꺼이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녀에게 회사의 미래에 대해 물으니, 자선적 성격을 띠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세부적인 건 정해지지 않았지만 저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요”. 현재 코드 위드 칼리와 유튜브 채널을 관리하는 직원은 총 여덟 명이다 . 지금까지는 칼리의 뉴욕 아파트에서 작업을 했지만 곧 소호에 사무실을 낼 거라고 한다. “꽤 성장한 거죠. 정말 신나요. 제게 사업가적 면모가 있는 게 좋아요.” 칼리가 코딩 장학 재단과 쿠키 기금 사업을 시작하기 몇 년 전에 그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수년이 흘렀지만 그녀의 호기심이나 낙천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은 듯했다. 누군가는 그녀가 아직 젊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단순히 나이의 문제는 아니다. 칼리 클로스라는 사람의 천성이 그렇다. 칼리는 자기계발은 물론 배움을 끝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늘 자기 자신과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수많은 프로젝트를 해낸 그녀는 여전히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다. “디자이너 다이앤이 저의 멘토이자 친구가 되어주었듯, 또 다른 누군가가 다이앤의 멘토이자 친구였겠죠. 저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다이앤 같은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지금 하는 일부터 잘해내야겠죠? ” 곧 칼리가 세울 회사의 미래가 기대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