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 동물과 식물이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며 사는 멋진 왕국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자연주의 사상가 데이비드 소로의 말이다. 그 왕국의 수도는 습지다. 오랜 시간 습지의 생태계를 관찰해온 젊은 예술가들이 이 아름답고 사연 많은 젖은 땅의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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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초감도
‘초감도’는 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새처럼 공중에서 수직으로 새긴 지도가 조감도(鳥瞰圖)라면, 초감도(草瞰圖)는 풀의 시선으로 바라본 미시 생태계다.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 물줄기가 만나면서 푸른 들이 펼쳐지는 땅,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에서는 지난해 봄부터 생태문화 예술 활동 ‘초감도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400년 수령의 느티나무와 황포 돛배, 아름다운 물안개, 연꽃정원 세미원이 있는 두물머리는 주말이면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유명 관광지다. 또한 30년 전부터 이 땅의 친환경 유기농을 일궈온 농부들에겐 자연과 사람을 살리는 국내 유기농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지난해 경기문화재단과 함께 초감도 프로젝트를 기획한 ‘두물머리활짝’은 4대강 사업이 발표된 2008년부터 이곳의 농민들과 연대해왔다. 한국환경교육연구소의 책임연구원인 봄날을 비롯하여 슉슉, 알록, 로맨스 조 등 눈이 맑고 솜씨 좋은 조합원들이 힘을 보탠다. “8년 전 두물머리에서 4대강 투쟁을 하면서 마지막까지 남은 농민들과 시민, 그리고 에코토피아라는 생태캠프의 친구들과 함께 농민들이 떠난 빈 땅에서 경작을 하기 시작했어요. 경작 투쟁을 한 거죠.” 두물머리활짝을 대표해 봄날이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년간 갈등을 빚어온 농민들과 4대강 추진본부는 2012년 8월 두물머리에 생태학습장을 조성하는 데 합의했다. 호주의 세레스, 영국의 라이튼과 같은 시민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꾸려가는 지속 가능한 생태학습장을 꿈꿨던 것이다. 그러나 파머 컬처(Farmer Culture)는커녕 활동의 기반조차 불확실한 현실에서는 먼 나라의 얘기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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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팔당댐 부근의 두물머리에서는 2016년부터 생태문화 예술활동 ‘초감도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두물머리활짝이 기획한 강들학교와 산책하는 의자, 할머니 탐구생활, 강들땅바닥 음악회.

“우리끼리라도 여기서 뭔가 흐름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옛 논과 밭의 자취가 거의 사라진 두물머리는 습지와 들판이 되어갔고, 강 바로 옆에서부터 들 안쪽으로는 버드나무 숲이 서서히 밀려오고 있었다. 이 변화된 생태계에서 온전한 식물의 역사가 시작되고 동물과 사람들의 삶이 깃들기를 바란 두물머리활짝은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해 강들학교를 열었다. 아이들은 초록빛 부들과 버들 사이에서 신나게 뛰놀았다. 어른들은 둥근 달빛 아래 둘러앉아 달 노래를 배우고 춤을 추며 달맞이를 했다. 들판엔 파빌리온 쉼터가 생겼다. 상호지지 건축 워크숍을 통해 뽕나무와 매실나무 사이 안쪽으로 투명한 지오돔을 완성했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보드라운 흙의 감촉을 느끼며 흙 벤치를 지었다.

두물머리활짝은 풀과 나무의 높이에서, 관망이 아닌 관여의 태도로 다채로운 실험을 펼쳐나갔다. 강들학교 외에도 ‘산책하는 의자’라는 프로그램을 개설해 화구 상자와 의자, 방석, 망원경 등 이런저런 산책도구를 만들기도 했다. 참여자들은 완성된 작품을 들고 들판으로 나갔다. 두물머리에 피어난 꽃과 풀, 열매를 그리고, 두물머리 농부와 함께 옛 논두렁길을 걸었다. 들에서 채집한 채소와 과일로 풀밭 만찬이 열리기도 했다. 농부 수업도 진행되었다. 이 모든 것은 지속 가능한 삶을 디자인하는 파머 컬처를 바탕으로 한다. 파머 컬처는 우리의 의식주 전반에 관한 태도와 사고방식, 실행 체계다. “유기농이라도 비료를 대규모로 투입해 지력을 손상시킨다면 파머 컬처라고 할 수 없어요. 파머 컬처는 자연과 생물의 다면적 기능을 고려해 생태계의 관계망을 깨뜨리지 않는 방식으로 디자인하죠. 예를 들어 양배추는 우리의 식량이지만 곤충의 먹거리이자 집이고, 알을 낳는 장소이기도 해요. 또 습지를 보존하고 미세 기후를 만들죠. 아직 한국에선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세계적으로는 굉장히 유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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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함께 강과 습지를 살피는 한강기행, 폐기물을 배출하지 않는 평화로운 강들땅바닥 음악회도 열렸다. ‘할머니 탐구생활’도 흥미로운 프로그램 중 하나다. 부용리 할머니들이 일손이 부족한 유기농부들의 밭에 품팔이를 갈 때마다 원정대처럼 따라다니며 일을 거든 참여 작가들은 할머니들과의 수다로 보낸 지난 1년의 시간을 ‘할매력’이라는 사랑스러운 달력으로 묶었다. 디자인과 그림, 사진 등에 재주가 있는 조합원과 작가들이 각각 12달을 나눠 맡았고 할머니들이 직접 숫자와 글씨를 써서 완성했다. “처음엔 잡지도 생각했는데, 할머니들은 잡지를 안 읽잖아요. 그런데 달력은 집에 걸어놓는단 말이죠. 할매력이 나오고 나서 동네에서 난리가 났어요. 더 달라고. 자식들도 쓸어가고요. 자랑스러우셨던 거죠.” 이 모든 프로그램은 지역주민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페이스북(doomoolcoop) 신청을 통해 참여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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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감도 프로젝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올해는 기존 프로그램 외에도 두물머리 산책길의 한쪽 구석에 커뮤니티 정원 ‘강들정원’을 만들어볼 계획이라고 했다. 다양한 재활용 상자로 디자인된 정원에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정원 쉼터와 태양열로 요리하는 키친 가든이 생겨날 것이다. “잘만 하면 전에 없던 특별한 정원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우린 돈이 없으니 멀리 봐야죠. 우리의 바람은 이 강들정원을 좋은 공간으로 만들어 지역의 신뢰를 받는 거예요. 올해는 정원 의자 하나, 상자텃밭 요만큼. 내년엔 의자 두 개, 이런 식이죠. 그렇게 조금씩 성장할 수 있다면 좋곘어요.” 두물머리활짝은 이곳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해보는 중이다. 지금껏 국내에 없었던 색다른 강변 생태 문화 콘텐츠다. 풀과 눈높이를 맞추어 천천히 나아가는 이들이 그려낸 두물머리의 지도는 달리는 차창 밖의 빠른 세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습지의 크고 작은 생물과 사람들의 온갖 이야기가 쌓여 지층을 이루고 강으로 흘러든다. “지금은 그냥 예쁜 들처럼 보이지만 언제 또 대규모 개발 사업이 진행될지 몰라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역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는 거예요. 이러한 생태문화예술이 두물머리라는 아름다운 생태적 자원을 가장 잘 이용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역을 살리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잘 모르지만 그러니까 계속 해보려고요. 지금은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