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있다. 멋진 관광지나 맛집을 검색하는 대신 자연과 이웃을 생각하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 여행자들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친환경 여행을 실천한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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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겨울 눈 내린 강원도 대관령 선자령 고개의 기막힌 설경.
2 오색찬란한 가을 단풍이 한창이었던 경기도 가평의 연인산.
3 여름철 무더위를 식히는 경북 포항 내연산의 계곡 산행.

우주로 가는 백패킹
“우주로 가는 가장 분명한 길은 야생의 숲을 통과하는 것이다.” 산에서 하룻밤을 보내본 사람이라면 20세기 자연주의자 존 뮤어의 말을 이해할 것이다. 1박 이상의 짐을 꾸려 숲으로 들어가는 백패킹은 두 발로 떠나는 우주 여행인 셈이다. 초록빛 우주를 탐험하는 데 있어 무거운 배낭은 그야말로 짐일 뿐. 가볍게 가야 더 멀리 갈 수 있고 자연에 집중할 수 있다. 등산을 좋아해 미니멀리즘 지향의 아웃도어 브랜드를 만든 나는 3년 전부터 ‘프리하이커스’라는 소모임을 결성해 BPL과 NLT를 전파하는 중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백패킹 철학인 BPL(Back Packing Light)은 배낭의 짐을 간소화하고 단순화시켜 무거운 짐으로 인한 에너지 소비를 자연에 집중하는 데 쓰자는 것이다. LNT(Leave No Trace)는 미국환경단체가 정한 지침으로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일곱 가지 아웃도어 활동 수칙을 제시한다. 첫째, 사전에 계획하고 준비하라. 둘째, 쓰레기는 확실히 처리하라. 셋째, 그대로 보존하라. 넷째, 지정된 탐방로와 야영장을 이용하라. 다섯 번째, 캠프파이어는 최소화하라. 여섯 번째, 야생동물을 존중하라. 일곱 번째 다른 캠퍼들을 배려하라. 이를 실천하면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한결 자유로운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자연과의 유대가 높아질 뿐 아니라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다.산에서의 하루는 매우 단순하다. 해가 뜨면 걷고, 걷기 위해 먹고, 해가 지면 자고 오롯이 자연을 보고 느끼는 데 에너지를 할애한다. 배낭은 가볍고 내용물은 소박하다. 야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짐만 챙기다 보니 식단은 절로 간소해진다. 같은 용도의 장비라면 좀 더 가볍고 부피가 작은 것을 고른다. 개인용 에코백은 필수다. 산행 중에 발생하는 쓰레기를 집으로 되가져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프리하이커스와 많은 곳을 누비고 다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의 변화무쌍함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다. 봄이 되면 남해로 내려가 가장 먼저 봄기운을 느꼈다. 백운산이 있는 전라남도 광양의 매화꽃은 3월 말에 만개한다. 여름엔 뜨거운 태양을 피해 시원한 계곡 산행을 즐겼다. 산의 맑은 공기와 시원한 계곡물은 도시의 찜통 더위를 잊게 해준다. 가을이면 오색찬란한 단풍을 눈에 담아왔다. 가을산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겨울에는 설산에 올라 상고대와 설경을 가슴에 품었다. 흰눈으로 덮인 하얀 산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지난여름 다녀온 일본의 중앙알프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한국의 산과는 또 다른 풍광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3박4일 동안 산에 버려진 쓰레기를 전혀 볼 수 없었다는 점도 놀라웠다. 일본의 하이커들은 초경량 하이킹(Ultra Light Hiking)을 즐긴다. 작은 배낭을 꾸려 짐은 최소화하고, 숲속에서 찾아낸 돌과 나무로 테이블과 의자를 대신한다. 화장실 문제에 있어서도 엄격하다. 그들의 산행 의식은 분명 본받아야 할 점이다.캠핑이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이 먹고 마시는 야영에 집중하다 보니 배낭의 부피는 커지고 야영의 흔적이 늘어나면서 산은 오염되고 있다. 물론 환경오염이 잘못된 캠핑 문화 때문만은 아니다. BPL과 LNT 철학이 전 지구적인 자연 파괴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 속도를 늦출 수는 있다. 뻔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자연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으로부터 빌려온 것이라지 않던가. 숲이라는 이 아름다운 우주를 계속 탐험하고 싶다면 간소한 산행 문화와 윤리의식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산은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준다. 그 푸른 품에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자연을 생각하면 어떨까? 이제는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을 때다. 글 | 김민환(마운틴로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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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자가 아니어도 해외여행은 가능하다. 더 아름답고 싼 풍경을 얻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2 2005년 길거리 밴드를 하던 친구들과 일했던 유럽의 생태공동체 마을.
3 지난해 태국 여행 중의 발리 사누르 해변.

상상력을 등에 메고
길거리 밴드를 하던 친구들과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다. 천성산을 지키기 위해 백일간 단식하던 지율 스님은 우리에게 “천만원을 줄 테니 유럽을 다녀오고 갚지 말라”고 했다.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광화문에서 노래했기 때문에 스님은 우리를 잘 알고 있었다. 비록 남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먹고, 지하철을 무임승차했으며, 술을 훔쳐 마시기는 했어도 우리는 멍청하지 않았다. 피 터지는 토론 끝에 그 제안을 받아들인 후, 유럽의 생태공동체에 메일을 보냈다. “우리는 주로 아나키스트고 공동체에 관심 있으며, 돈은 없지만 좋은 밴드다.” 덴마크의 스반홀름과 독일의 지벤린덴에서 답장을 받았다.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겠다. 대신 노동을 하라.” 2005년의 일이었다. 코펜하겐 근교에 위치한 스반홀름에서는 매일 아침 8시에 일어나 차를 마시며 작업 회의를 했다. 회의가 끝나면 자전거를 타고 아름다운 호수를 지나 휘파람을 불며 딸기밭으로 갔다. 이국적인 경치에 취해 친구들과 농담을 나누다 이제 일을 시작해야지 마음먹으면 어느새 차를 마실 시간이었다. 차와 쿠키를 먹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일터로 가 괭이질을 몇 번 하다보면 또 점심시간이다. 공동부엌에서 100여 명에 이르는 공동체 식구들과 어마어마하게 푸짐하고 맛있는 유기농 요리를 먹고, 유기농 커피에 유기농 우유를 타서 마셨다. 오후 3시가 되면 하루 일과가 끝났다. 당시 덴마크는 5월이라 밤 10시까지 해가 지지 않아 일보다 노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어쩌면 기분 좋게 놀기 위해 일을 했던 것도 같다. 주말엔 바다를 보러 가거나 공동체 식구들과 탁구를 쳤고 유채밭 옆에서 합주를 했다. 게스트도 공동부엌에 가득 찬 모든 식재료를 마음껏 꺼내 먹을 수 있고, 옷 보관소에 있는 빈티지 옷과 신발을 취향에 따라 골라 가질 수 있으며, 그렇게 한 달이 지나면 용돈까지 준다고 했다. 아, 이곳이 말로만 듣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닐까? 나는 스반홀름의 개가 되고 싶었다.구동독 지역에 있는 지벤린덴은 작은 소그룹들의 연대공동체다. 우리를 초대한 ‘클럽99’ 멤버들은 유럽의 공동체를 소개한 <에코토피아>라는 책을 쓴 사람들로 기계를 전혀 쓰지 않아 말을 이용해 밭을 갈고 전기와 가스도 쓰지 않으며 완전한 채식을 한다. 플라스틱에 포장된 음식도 먹지 않는다.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술과 마약, 종교 따위는 금지한다. 이렇게 엄격한 곳에서 우리는 새로 집을 지을 터에 나무를 베어 껍질을 깎아 말리는 일을 했지만, 역시 슬렁슬렁 웃고 떠들면서 일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날에는 모든 공동체 식구들 앞에서 공연을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는 한국에서 막 에스페란토를 공부하고 있었다. 에스페란토는 루도비코 라자로 자멘호프 박사가 평화와 평등을 위해 1887년에 발표한 인공어로, 현재까지 이 언어를 쓰는 에스페란티스토는 20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자부심과 연대감이 두터워 외국을 여행할 땐 하룻밤 재워주기도 한다. 우리가 에스페란토를 배운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아, 물론 평화와 평등의 언어라는 것도. 에스페란토 네트워크를 통해 알게 된 프랑스의 나이 많은 에스페란티스토 친구들이 우리를 따뜻하게 환영해주었다. 우리가 도착한 날, 마을 사람들은 다 같이 마을회관 같은 데 모여 전통의상을 입고 아코디언처럼 생긴 전통악기를 연주했다. 그때 우리는 ‘안녕’이라든가 ‘잘 가’ 같은 단어만 겨우 말할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다음 날에는 리옹에 있는 에스페란토 클럽에서 공연을 했고, 리옹의 지역신문에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그렇게 2주 동안 덴마크, 독일, 프랑스를 다녀왔을 때, 우리한테는 아직 2백만원이 남아 있었다. 부자가 아니어도 해외여행이 가능하다는 걸 그때 배웠다. 중요한 것은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상상력과 용기라는 것도. 내가 대책 없이 시골에서 10년 가까이 살 수 있었던 것도 이 여행 덕분이다. 까끌까끌한 불편함은 상상력으로 부드럽게 만들 수 있지만, 맨질맨질하고 날카로운 편리함은 끝이 없다. 돈으로 해결하는 것은 너무 쉽고 조금 덜 멋지지 않나. 그리고 그 돈을 가지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행복을 뒤로 미뤄야 하질 않나. 가난은 편리하지 않지만 상상력을 키워준다. 나는 상상력으로 채워진 여행자의 낡은 배낭처럼 늙고 싶다. 언제나 그 상상력을 등에 메고 멀리 떠나, 다시 돌아오고 싶다. 글 | 사이(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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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트 드림 캠프’에 참여해 인도네시아 전통 수공예 바틱을 배우는 학생들.
2 토탈미술관에서 준비한 바틱에 관한 일러스트 스티커.
3 인도네시아 아이들의 상상 속 겨울 풍경을 표현한 바틱.

더불어 바틱
인도네시아에는 겨울이라는 단어가 없다. 차가운 온도, 혹은 냉정한 마음을 뜻하는 ‘Dingin’에 계절을 칭하는 ‘Musim’을 붙여 ‘추운 계절’이라 부르지만 1년 내내 평균 기온이 27℃를 웃도는 이 무더운 나라에선 산타클로스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한여름을 사는 동자바 섬, 파수루안의 아이들에게 겨울은 환상의 세계다. 해외여행도 그렇다. 자전거로 산길을 달려 1시간 거리의 학교를 가는 게 인생 최고의 장거리 여행인 이곳 아이들이 한국에 온다는 건 그야말로 꿈같은 일일 것이다. 그 꿈이 현실이 된 건 불과 얼마 전이다. 이 동화 같은 이야기엔 나름의 긴 사연이 있다. 한국의 예술가들과 패션지 에디터였던 내가 인도네시아로 떠난 건 지난해 겨울이었다. 토탈미술관의 책임 큐레이터 신보슬이 이 여행의 모든 것을 기획했다. 사실 그녀는 전부터 ‘플레이그라운드 인 아일랜드(Playground in Island)’라는 프로그램을 수년째 지속해오고 있었다. 현대미술의 인프라가 없는 말레이시아 지역 학생들에게 미디어아트를 소개한다는 취지였다. 그렇게 몇 차례 말레이시아를 오가는 동안 프로그램의 방향은 보다 이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변화했다. 바로 전통 수공 염색 기법인 바틱(Batik) 프로젝트다. 7세기경부터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지역 고유의 문화로 뿌리내린 바틱은 그곳 사람들의 삶을 반영한다. 그 지역에서 난 천연 재료로 물을 들이고 신성한 동식물이나 전설 속 영웅의 무용담이 기하학적인 무늬로 완성된다. 여럿이 함께 해야 하는 작업이라 공동체 정신과도 연결된다.문제는 화학염료를 이용한 바틱이 늘어나면서 환경이 오염되고 있는 데다 공산품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관심에서도 멀어져 발전은 고사하고 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다는 점이었다. 플레이그라운드 인 아일랜드를 통해 알게 된 사바 애니메이션 센터의 디렉터 마리나는 사바대학에서 운영 중인 바틱 공방을 소개했고, 친환경 바틱의 다양한 가능성을 한국의 예술가들과 함께 실험해보고 싶어 했다. 궁극적으로는 바틱을 통해 소수 부족과 저소득층 학생들이 스스로 삶을 꾸려갈 힘을 얻는 것이었다. 바틱은 고등교육을 받거나 비싼 장비를 구입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예술이기 때문이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2년 전 처음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바틱을 배웠다. 그냥 여행인 줄 알고 따라왔다가 일주일 내내 작은 공방에 묶여 바틱의 제작 과정을 체험하고 직접 재료를 보러 키나발루 산까지 올랐다. 서울에서 화려한 셀러브리티들을 상대로 트렌드 기사나 쓰던 내가 이 산골짜기에서 염색기술을 배우는 게 대체 이들의 삶에 무슨 보탬이 될까 싶었다. 그건 여러 해 전부터 이 프로그램에 참가해온 노순택 작가나 서효정 작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일단 구경이나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마음이 움직인 건 맹그로브 숲에 도착했을 때였다. 코타키나발루에서 100여 킬로미터 떨어진 북부 보르네오 섬, 강과 바다가 만나는 맹그로브 정글에선 바틱의 주재료가 되는 맹그로브 뿌리를 구할 수 있다. 사람 키보다 높은 나무 뿌리들이 얽히고설킨 이곳 늪지대엔 악어와 반딧불이, 희귀종인 긴코원숭이 등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있었다. 원시적인 생명력을 간직한 맹그로브는 이들의 삶의 터전이자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를 막고 아마존의 밀림과 함께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 하지만 최근 정글은 부동산 개발 등의 산업적 이해관계에 밀려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함께 보트를 타고 둘러보던 바틱 전문가 부 이파는 “망고를 먹기 위해선 망고나무를 심어야 하는 것처럼 천연 바틱을 지속하기 위해선 맹그로브 숲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사라져가는 건 맹그로브뿐만이 아니다. 바틱과 같은 전통 수공예나 원주민들의 토착문화 역시 그랬다.

지난해 겨울 우리는 다시 한번 바틱 여행을 떠났다. 이번엔 바틱의 본고장 인도네시아였다. 기회가 좋았다. 마침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는 평창문화올림픽의 일환으로 겨울이 없는 남반구 아동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문화 예술 프로그램 ‘아트 드림 캠프’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의 예술가들이 일정 기간 동안 해당 지역을 방문해 현지의 고유 문화를 접목한 예술 교육을 진행하고, 이후 참가자 중 일부를 한국에 초청해 축제를 연다는 내용이다.

지난 말레이시아 여행에서 만난 부 이파는 자신의 고향 인도네시아 파수루안의 알람 바틱 센터(Alam Batik Center)를 소개했다. 부 이파의 제자들이 운영하는 곳으로 그 지역의 소외계층 아이들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었다. 사진작가 노기훈, 영상작가 최윤석, 전시 공간 디자인팀 제로랩의 장태훈, 브랜드 MASO를 론칭한 경험이 있는 패션디자이너 마소영, 그래픽디자이너 손혜인, 그리고 큐레이터 신보슬과 내가 함께했다. 우리는 각자의 전공을 살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미술가와 패션디자이너는 아이들에게 상상 속의 이미지를 자기만의 개성적인 패턴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뜨거운 장대비가 연일 마당을 적시는 센터의 툇마루에 앉아 아이들은 눈처럼 새하얀 천에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겨울을 바틱으로 새겼다. 불의 신이 살고 있다는 신성한 브로모 화산엔 눈꽃이 피었고, 작고 푸른 마을은 별처럼 쏟아지는 함박눈 속에서 조용한 잠을 잤다. 아이들이 직접 그리고 여러 날 염색하여 완성한 작품들은 캠프 마지막 날, 수코레조 읍사무소 한켠에서 전시되었다. 제로랩의 장태훈은 인도네시아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대나무를 주재료 삼아 걸개를 만들고 버려진 나무 테이블을 이용해 전시 공간을 연출했다.

나와 그래픽디자이너 손혜인은 센터에 모인 어린 바틱 전도사들과 함께 바틱 책자를 만들었다. 바틱으로 만든 바틱 안내서였다. 컴퓨터는커녕 프린터도 없는 시골 마을에서 바틱을 홍보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말레이시아에서도 그랬지만 이곳에서도 바틱에 관한 영문 서적을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바틱을 배우기 시작한 학생들은 직접 바틱에 대해 취재하며 보다 능동적으로 학습할 수 있었다. 염색과 삯바느질 끝에 완성된 책자는 어설펐으나 다행히 학생들은 흥미를 보였다.

그리고 지난 2월 파수루안의 학생들이 한국을 찾았다.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오랜 시간 차를 타본 아이들은 멀미 때문에 한참을 고생했다. 그럼에도 엄청나게 들뜨고 신이 나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모든 게 첫 경험이었으니까. 비행기도 비빔밥도, 그리고 눈과 겨울도. 지난 여행에서 난 이들에게 꿈을 물었다. 아이들은 바틱을 통해 자신의 삶이 좀 더 나아지길 원했다. 바틱은 이들의 미래다. 땅에서 재료를 채취해 햇빛과 물로 빚는 천연 바틱은 환경을 오염시키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알게 한다. 동남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망고, 잭프루트 같은 열대 과실수의 잎사귀, 마호가니 나무 껍질, 우람한 맹그로브 뿌리부터 들판에 핀 작은 꽃 한 송이까지 적도의 태양 아래서 자란 모든 것이 훌륭한 식물성 염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나는 인도네시아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이번엔 전설적인 브로모 화산도 올라가보려 한다. 사실 처음 바틱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 나는 오랫동안 다니던 잡지사를 막 그만둔 상태였다. 스스로 택한 낯선 길이었지만 설렘만큼이나 불안감도 컸다. 고백하자면 나는 두 번의 바틱 여행 덕분에 겨우 두려움을 마주할 용기를 얻은 소심하고 나약한 인간이다. 바틱이라는 전통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열정과 맑고 소박한 삶의 자세, 그리고 약한 마음을 따뜻한 빛으로 어루만져주는 자연이 큰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 비록 바틱엔 소질이 없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더불어 산다는 건 서로의 부족함을 나눔으로 채우는 일인 것을. 태양과 나무, 꽃과 벌이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인생이라는 여행에 필요한 모든 정보는 인터넷이 아니라 자연에 있다. 비록 해외여행은 처음이었지만 파수루안의 사람들은 이미 그러한 삶의 지혜를 아는 진정한 여행의 고수들이 아닐까? 글 | 이미혜(독립 기획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