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정체성과 다양성, 과거와 미래가 관통한 시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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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E CLOTHING
이는 디지털 시대의 혼란기를 거쳐 자신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디자이너들의 간절한 바람처럼 느껴졌다. 전통성을 지닌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하되 신선하고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어야 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의 고민이 엿보였다. 거리에서 온 것들은 한 꺼풀 거둬졌고 장인정신을 기반으로 한 세련미가 다시 주목받았으며 과거 아카이브가 재조명되었다. 브랜드의 100주년을 맞이한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잘리아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아카이브에서 풍성하고 우아한 실루엣의 드레스를 발췌했다. 완벽하게 똑같이 복사한 드레스에 사이보그 선글라스와 샛노란 스타킹 부츠를 동시대적인 태도를 집어넣어 완벽하게 다른 룩으로 변모시켰다. 디올의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무슈 디올이 가장 좋아했던 색 중 하나인 네이비의 행렬을, 1949년에 선보인 드레스에서 영감을 받은 후디 재킷과 팬츠 룩을 오프닝 무대로 선보였다. 100번째 컬렉션을 맞이한 드리스 반 노튼은 자신의 과거에 빛났던 의상들을 다시 런웨이로 불러들였다. 리즈 시절을 함께한 90년대 모델들과 함께! 그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세련되고 젠틀한 여자를 위한 옷을 만드는 세린느와 스텔라 맥카트니는 실용성에 약간의 예술성을 더하며 브랜드 유전자를 더욱 확고히 했다.

 

PARIS, FRANCE - MARCH 06:  A general view of Comme Des Garcons dresses and installation during the "Rei Kawakubo Comme Des Garcons Art Of The In-Between" Presentation as part of the Paris Fashion Week Womenswear Fall/Winter 2017/2018 on March 6, 2017 in Paris, France.  (Photo by Vittorio Zunino Celotto/Getty Images)

HOT ISSUE
붉은색 물결 파리 컬렉션 기간 동안 파리는 붉게 물들었다. 지방시의 2017년 가을/겨울 컬렉션은 지방시를 떠난 리카르도 티시를 향한 헌정이었다. 리카르도 티시가 남기고 간 유산이 붉은색으로 다시 태어난 것. 또 한 명의 거장 꼼데 가르송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오는 5월에 열릴 전시 <Rei Kawakubo/Comme des Garcons: Art of the In-Between>를 미리 선보이는 자리를 가졌다. 레이 카와쿠보의 형태에 관한 철학을 보여주는 붉디붉은 창조물들이 시선을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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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간 샤넬 나사는 ‘트라피스트-1’이라는 별을 중심으로 지구의 질량과 크기가 비슷한 7개의 행성이 공존하는 태양계와 같은 시스템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우연일까? 샤넬, 올리비에 데스켄스, 발렌시아가 등 가을/겨울 런웨이에 은하계에서 입을 법한 옷을 선보였다. 게다가 샤넬은 그랑팔레에서 거대한 우주 로켓을 쏘아 올리기까지 했다. 자욱한 연기와 불꽃이 뿜어져 진짜 천장을 뚫고 나가는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스펙터클한 피날레였다.

Photo: Umberto Fratini / Indigital.tv

아듀! 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2017년 가을/겨울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끌로에를 떠난다. 가족들이 있는 런던에서 거주하기를 원하고 무엇보다 어린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서라고. 자유분방한 보헤미안 정신을 지닌 동시에 파리지엔의 세련됨을 지닌 끌로에의 소녀들을 선보였던 그녀의 마지막 무대는 60년대, 70년대, 80년대가 공존했고 여전히 세련된 낭만이 흘렀다. 그녀의 자리를 채울 후보자로는 루이 비통의 시니어 디렉터이지자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오른팔 나타샤 램지 레비가 유력하다는 소문. 하지만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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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합니다 두 명의 한국 모델 이지와 정소현이 해외 무대에서 성공적인 신고식을 마쳤다. 이 둘의 공통점은 쿨한 버즈 컷의 중성적인 마스크로 현재 패션계가 원하는 매력을 두루 갖추었다는 것. 둘 다 뉴욕의 빅 브랜드인 알렉산더 왕과 마크 제이콥스의 러브콜을 받으며 기분 좋게 첫 무대를 시작했다. 정소현은 펜디, 마르니, 세린느, 샤넬, 에르메스, 미우미우의 런웨이에, 이지는 발렌시아가, 메종 마르지엘라, 미우미우 등 4대 컬렉션의 큰 무대에 오르며  슈퍼 루키로 주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