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커트 길이가 불황과 호황을 반영한다는 것이 헴라인 이론이다. 그렇다면 봄/여름 시즌 런웨이를 강타한 지그재그 모양의 헴라인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fa-헴라인 이론

뉴욕의 피자 한 조각 가격은 지하철 요금과 동일하다는 피자 법칙, 바퀴벌레가 하나 발견되면 실제로는 수천 마리가 진을 치고 있는 것처럼 경제 문제도 하나가 수면 위로 드러나면 더 많은 문제가 잠재해 있다는 바퀴벌레 이론 등 경제를 둘러싼 이런저런 이야기가 참 많은 세상이다. 그리고 그 분야의 ‘클래식’이 있으니 바로 헴라인 이론이다.
헴라인, 즉 스커트 길이가 경기를 반영하는 신호로 인식된다는 것이 바로헴라인(Hem Line) 이론이다. 영국 경기가 활황이었던 1 920년대와 60년대는 미니스커트가 유행했고, 불경기였던 30년대에는 스커트 길이가 길어졌다. 하지만 세계대전 당시에는 이 논리가 통하지 않았다. 극도로 경기가 안 좋았던 당시 스커트 길이는 과거 어느 때보다 짧았다. 이후 1990년대 중후반, 경기 침체를 겪을 때는 치마 길이는 다시 길어졌다. 물론 스커트 길이를 두고 경기의 흐름을 설명하기엔 페미니즘에 반하는 면이 있다. 그렇다고 이 흥미로운 이론을 접어두기에는 좀 아쉽다. 브렉시트, 트럼프의 미 대선 승리 등 정세가 불안한 시기에 많은 디자이너가 2017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인 스커트가 규칙 없는 지그재그형인 것은 그저 우연인걸까? 유럽을 비롯해 미국, 중동, 아프리카, 아이슬란드까지 둘러봐도 현재 지구는 유례없는 격동 속에 있는 게 분명하다. 끌로에, 마르니, 프린, 프로엔자 스쿨러, 로다테, 사카이가 선보인 이번 시즌 스커트와 드레스의 헴라인은 모두 물결 치는 듯한 커팅이 주를 이루었다. 이 정도면 패션 디자이너들이 예언자라도 되는 건 아닌지 소름이 끼친다.
“브렉시트 이후 발생할 혼돈의 사회를 생각했어요.” 프린의 디자이너 테아 브레가치는 남편 저스틴 손튼과 함께한 프린의 봄/여름 컬렉션 준비 과정에 대해 물었을 때 이렇게 답했다. 그들의 생각은 데이비드 캐머론전 영국 총리의 부인 사만타 캐머론에게 전해진 건지도 모른다. 그녀는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가 작년 6월 사임 발표를 할 당시 프린의 드레스를 선택했다. 이후 프린의 두 디자이너는 오르락내리락하는 경제 지표를 보는 듯한 헴라인의 스커트를 내놓았다. 사선으로 자른 헴라인과 일부러 끝이 해지도록 둔 블루&옐로 시폰 러플 드레스와 하얀 시퀸 장식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드레스 등 이번 시즌 컬렉션에서 프린은 지난 수년간 고수해온 스카프 헴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로에베의 J.W. 앤더슨은 보다 세밀한 디자인을 내보였다. 행커치프를 덧댄 헴라인이 돋보이는 리넨, 코튼 소재 드레스와 스커트를 선보인 것. 거칠게 처리된 리넨 드레스 밑단은 길게 늘어졌고 물결 모양으로 커팅된 프린지 울 드레스는 무릎에서 찰랑였다. 자신의 브랜드인 J.W. 앤더슨에선 작업이 보다 정교해졌다. 옴브레 미니드레스의 헴라인 커팅을 사선이나 직선으로 다양하게 변형했고, 허리 라인까지 긴 S자 모양을 만들었다. 정치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올봄, 유행의 중심에 선 지그재그 모양의 헴라인은 불안정한 정세를 반영한 듯하여 탐탁지 않지만 오직 스타일의 관점에서 보자면 환영할 만하다. 스타일닷컴의 패션 디렉터 야스민 시웰의 의견은 이렇다. “입기 편하면서도 멋스러운 것이 이 언밸런스 스커트의 매력이에요. 짧게도 길게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연출의 폭이 넓죠” .언밸런스 스커트나 드레스를 입을 때에는 전체적으로 볼륨을 슬림하게 하고 심플한 상의를 더해 스커트의 헴라인을 강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로 어울리지 않은 듯한 귀고리나 뱅글을 착용해 시선을 분산시키고, 벨트로 허리를 강조하는 것도 추천했다. 그리고 뒷모습도 반드시 체크할것! 스커트 길이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무릎 뒤처럼 원치 않는 곳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흥미로운 헴라인의 스커트를 아직 안 입어봤다면 올봄, 한번 입어볼 만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