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뺨을 적시는 보드라운 핑크빛과 강인한 진분홍색 입술, 온기 가득한 핑크 컬러가 런웨이를 장악했다. 이번 봄/여름 시즌, 트렌드 컬러로 떠오른 핑크 메이크업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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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핑크’라는 단어를 완벽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완벽의 극치라는 의미의 ‘The Pink of Perfection’, 패션의 정수라는 뜻의 ‘The Pink of Fashion’ 등 지금까지도 사용되는 영어 숙어들이 그 예다. 1900년대 초부터는 핑크가 건강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피부에 핑크빛이 돌수록 건강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핑크빛’이라는 형용사는 긍정적인 또는 우호적인 등의 의미로 해석된다. 단어 자체가 긍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셈이다. 틴트의 시조새격인 베네틴트는 원래 거무스름해진 유두를 핑크색으로 만들기 위해 개발된 제품이다. 바비 인형의 입술은 언제나 완벽한 핑크색을 띠고 있다. 핑크빛 입술, 핑크빛 유두 등이 순수함과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성의 화장을 상징하는 대표 색깔로 인식되던 핑크 컬러가 최근 우리의 화장대에서 잠시 외면당해온 것이 사실이다. 소녀스러움, 부드러움, 귀여움 등 핑크가 상징하는 전형적인 아름다움보다는 무심하고 시크한 룩을 추구하는 트렌드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봄/여름 시즌 핑크가 돌아왔다. 더욱 강인하고, 더욱 사랑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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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 디올의 루즈 디올 787 익주버런트 매트. 3.5g 4만1천원. 2 페리페라의 페리스 잉크 더 벨벳 에어리 벨벳 4호 미모열일. 8g 9천원. 3 맥의 컬러락커 버니빔즈. 3g 3만원대. 4 에스티 로더의 퓨어 칼라 엔비 블러시 컬렉션 핑크 티즈. 7g 5만2천원. 5 크리니크의 치크팝 12 핑크팝. 3.5g 3만원. 6 디올의 루즈 디올 787 익주버런트 매트. 3.5g 4만1천원.

베이비 페이스의 모범 사례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옆으로 쓴 스냅백과 큼직한 귀고리가 1990년대의 무드를 한층 고조시켰던 샤넬 쇼의 모델들은 얼굴을 온통 핑크색으로 물들였다. 광대뼈부터 관자놀이까지, 눈썹 아래부터 이마까지 연결한 핑크빛 블러셔는 그 자체만으로 얼굴에 순수한 윤곽을 만들었다. 과연 무거운 셰이딩 파우더나 하이라이터가 더 이상 필요할까 싶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입술에는 좀 더 반짝거리고, 진한 핑크 컬러를 얹었다. 색은 통일하되 볼과 눈가는 보송하게, 입술은 촉촉하게 마무리하여 얼굴 위 각기 다른 질감을 연출한 것이다. 덕분에 얼굴의 입체감은 더욱 완벽해졌다. 질감의 차이를 활용한 메이크업 아티스트 톰 페슈의 전략이 완벽하게 성공한 셈이다. 샤넬 쇼 외에도 핑크색의 존재감이 도드라지는 것은 단연 모델들의 뺨 위에서다. 샬라얀, 하우스 오브 홀랜드, 스텔라 진, YDE 쇼의 모델들은 모두 뺨을 핑크빛으로 넓게 물들였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윤기다. 맥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린 데스노이어는 핑크와 같은 고전적인 컬러를 메이크업에 사용할 때는 마무리에 특히 신경 쓰라고 조언한다. “오일이나 글로스를 어떻게 더하느냐에 따라 얼굴에 생기가 돌도록 연출할 수 있죠.” 그 해답은 YDE 쇼에서 찾을 수 있다. 투명하게 윤기가 도는 텍스처가 핑크색을 더욱 생기있고 산뜻하게 만든다. 뺨 위의 핑크빛 외에는 얼굴의 다른 부위의 메이크업을 최소화한 것도 주목해야 한다. “나는 소녀들이 생기 넘치고 어려 보이기를 원했어요. 눈가에 얹은 파스텔 핑크가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죠. 또 마스카라나 아이라이너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 눈두덩의 핑크빛이 마치 소녀의 원래 피부 그대로인 것처럼 보여요.” 모델들의 눈매를 온통 연한 핑크색으로 물들인 폴 스미스 쇼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페트로스 페트로힐로스는 역시 눈두덩 위 핑크색 외에는 일체 색을 배제했다. 그 결과 핑크색에 깨끗한 피부와 깔끔하게 다듬어진 눈썹이 더해져 모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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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네피트의 단델리온 트윙클. 3g 4만2천원. 2 슈에무라의 루즈 언리미티드 슈프림 마뜨 PK376. 3.4g 3만6천원대. 3 바비 브라운의 아트 스틱 리퀴드 립 8 릴리. 5ml 3만5천원대. 4 샤넬의 르 베르니 568 뛸. 13ml 3만4천원.

반면 입술 위의 핑크색은 보다 대담하다. 이를 두고 콘데나스트의 인터내셔널 뷰티 디렉터인 캐시 필립스는 봄/여름 시즌, 강인한 핑크 컬러가 등장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펜디 쇼의 지지 하디드는 입술에 핑크 스팽글을 잔뜩 붙인 채 런웨이에 올라섰고, PPQ 쇼에서는 진분홍 입술색이 등장했다. 스페인의 북쪽 지방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미켈라 앨리슨은 짙은 눈썹과 분홍 입술로 모던한 세뇨리타 룩을 완성했다. 모델들의 입술을 형광 오렌지, 빨강 등 온갖 비비드 컬러로 색칠한 마리 카트란주 쇼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린지 알렉산더 역시 핑크를 빼놓지 않았다. 진한 푸시아 컬러로 모델들의 입술을 뒤덮은 그녀는 입술에 많은 색을 넣으면서도 촌스럽지 않아 보이는 방법은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의 양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피부는 반짝이고, 꼭 필요한 부분에만 윤기가 돌아요. 마스카라나 아이브로, 브론저는 모두 생략했죠.”

봄/여름 시즌에는 반질반질 윤기 나는 핑크빛으로 뺨이나 눈두덩을 물들여도 좋고, 짙은 분홍색으로 입술에 힘을 줘도 좋다. 보송함과 글로시함으로 질감 차를 더하거나 혹은 강렬한 색감으로 원 포인트 메이크업의 원칙에 충실하면, 핑크색도 충분히 시크할 수 있으니 말이다. 바야흐로 핑크가 멋진 계절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