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혼자가 돼 나만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은 결혼을 꿈꾸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독립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독거의 고수부터 1년이 채 되지 않은 초보들이 전하는 독립 생활의 매력과 생활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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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엄마가 비싸다는 이유로 좀처럼 사 주지 않던 제철 과일을 마음껏 사 먹는다.

소소하고 이기적인 사치
“나중에 크면 나도 저렇게 살래.” 드라마 주인공이 혼자 사는 모습을 보며 난 엄마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겨우 열 살밖에 되지 않은 딸의 말에 엄마는 서운해했다. 일찍이 독립을 선언했던 내가 진짜 독립을 한 건 불과 8개월 전이다. 나의 독립 실천에 발목을 잡은 건 늘 돈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5 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모아둔 돈은 전세금은 몰라도 보증금 낼 돈은 됐고, 월세를 내면 빠듯하겠지만 생활은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입은 있었다. 결정적으로 당시 6년 넘게 사귄 남자친구와 잠시 헤어졌는데, 그때 난 그 이별을 감당하기 벅찼다. 울어서 퉁퉁 부운 눈을, 한없이 침잠하는 내 감정을 엄마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걱정하고 마음 쓰는 엄마를 볼 자신이 없었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내 감정에 온전히 충실할 수 없었다. 치유가 필요했다. 그래서 독립을 택했다. 운명처럼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집 하나를 발견했다. 1층에는 부동산과 카페가 있는 오래된 상가건물 꼭대기층에 저렴하게 나온 월셋집이었다. 집을 보러 가서는 선배들의 조언을 하나씩 떠올렸다. ‘인테리어 상태 보고 집을 평가하지 말고, 집 구조와 잠재력을 보라’ ‘주변에 어떤 이웃이 살고 있는지 물어라’ ‘1층에 CCTV가 설치돼 있는지 확인해라’ 등. 큰 창이 있는 방과 부엌이 분리되어 있는 데다가 화장실엔 무려 욕조까지 있었기에 주저 않고 계약을 했다. 지은 지 30년 가까이 된 집이라 나무 몰딩은 곳곳이 갈라져 있고 옥탑방이라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집에 왔을 때 “생각보다 멀쩡하네?”라고 내뱉는 이유는 몇 가지 소소한 사치 때문이다. 사치 하나, 1만원대의 천연 섬유유연제. 일주일에 1~2회씩 빨래를 할 때 내가 좋아하는 향의 섬유유연제를 잔뜩 넣는다. 빨래만 널어도 온 집에 좋은 향이 가득하고, 퇴근해서 오면 집에서 좋은 냄새가 난다. 디퓨저가 따로 필요 없다. 사치 둘, 값비싼 비누와 샴푸를 쓴다. 가족들과 함께 살면 한두 달 쓰면 사라지는 소모품에 불과하지만 혼자 살기에 누릴 수 있는 사치다. 특히 비누는 가격이 나갈수록 확실히 잔향이 오래 남는다. 사치 셋, 엄마가 비싸다는 이유로 좀처럼 사 주지 않던 제철 과일을 마음껏 사 먹는다. 딸기, 망고, 멜론 등. 오직 내 입맛에 맞는 과일들이다. 그래서 나의 독립 생활은 만족스럽다. 결혼한 사람들이 느낀다는 그 안정감과는 또 다른 성질의 것이다. 집에 들어설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섬유유연제 향을 잔뜩 머금은 빨래만이 나를 반길지라도, 외롭지 않다. 진심으로 독립 만세다. – 전소영(33세, <얼루어> 피처 에디터, 독립 1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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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주말 아침이면 계절의 풍경을 잔뜩 담고 있는 큰 창을 내다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지금보다 더 우직하고 고상한 것으로 채워진 집을 꿈꾼다.

나만의 은밀한 공간
열아홉 무렵부터 혼자 살았다. 처음 살던 집은 학교 근처인 흑석동이었다. 그 시절 집을 고를 때 우선순위는 ‘새것’이었다. 처음으로 가지게 된 집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학가에는 새로운 집들이 홍수처럼 넘쳐나기에 가능했다. 이후엔 서초동과 역삼동, 잠실동에서 살았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한 잡지사 어시스턴트 일 덕분에 회사를 다니기 편한 ‘위치’가 집을 구하는 우선순위였다. 계약 기간 2년이 채워지면 꼭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그래서인지 혼자 사는 집이라는 건 나에게 그저 한철 머무르는 계절 같았다. 계절처럼 스쳐가는 그 집들엔 도무지 정이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졌다. 종종 부모님 집에 들르지만 며칠을 버티지 못했다. 난 점차 도시가 아닌 동네에 대한 열망이 강해졌다. 계절이 바뀌는 시간 , 달라지는 공기를 흠뻑 빨아들이며 살고 싶어졌다. 지난해부터 월세 일부를 보태주시던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자립을 하며 이제 이 낯선 도시에서 혼자 살아가는 일이 어쩔 수 없는 숙명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새로운 집의 조건은 하나였다. 무조건 ‘창문을 활짝 열 수 있을 것’. 그간 숨막히 게 오밀조밀한 도시에서 살며 커튼 한 번 시원하게 걷은 적이 없던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찾은 동네가 부암동인데, 처음의 다짐과 달리 창문 외에 많은 것을 살피는 나를 발견했다. 채광은 물론이고 수압이나 바람이 부는 방향까지 모두 살펴봤다. 혹시나 벌레가 있을까 싶어 벽장이며 문틈이며 작은 점(벌레가 지나다니는 흔적)들이 흩어져 있는 것까지 면밀히 봤다. 일부러 한밤중에 그 집에 찾아가 으슥하지 않은지도 체크했다. 이렇게 까다롭게 군 만큼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럽다. 여름엔 매미, 가을엔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린다. 창을 열면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언덕이 있다. 출근 시간이 한 시간이 넘고, 요즘처럼 집회가 열리는 토요일이면 어디 멀리 나가지 못하지만, 좋다. 요즘엔 부쩍 인간 관계를 정리하듯 잡다하고 조잡한 물건을 버리는 대신 그 자리를 우직하고 고상한 것으로 채우고 싶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보다 창문이 더 크고 깊숙하게 숨어 있는 은밀한 집으로 이사를 가야겠지? 마치 알바 알토의 집처럼. – 김선영(29세, <싱글즈> 패션 에디터, 독립 11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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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삭막해 보이는 오피스텔이지만, 나의 공간에 들어오면온기가 느껴진다. 창문 너머로 햇살이 들어오면 한없이 게을러지고 싶던 마음마저도 채근하게 된다.

어른아이의 인큐베이터
30세를 넘기면서 독립 생활의 삶을 막연히 동경했다. 혼자 사는 사람을 만나면 어디에 사는지, 어떻게 공간을 꾸몄는지 연신 물어보며 내심 독립의 이점만을 수집했다. 입사년 6 차를 맞이해 나는 부모님께 선전포고했다.“ 독립을 하지 않으면 회사를 그만둘 것 같아요”. 강동구에 있는 본가와 강서구에 있는 회사는 같은 서울 아래 있는 지역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멀기만 했다. 출퇴근이 총 세 시간씩 걸리는 괴로운 통근 시간을 버텼으니, 부모님도 나의 의지를 반대할 명분은 별로 없었으리라. 이미 5년간 사회생활을 한 상태에서 독립을 했기 때문에 모아둔 돈에 약간의 대출만 하면 오피스텔 전세금으로는 충분한 자금이 있었다. 그래서 회사가 있는 상암동 근처 오피스텔을 집중적으로 물색했다. 이미 독립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집 구석구석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며 나에게 집 구하는 노하우를 알려주었지만 정작 난 굉장히 직관적으로 집을 구했다. 집에 들어서면0 1초 안에 느껴지는 고유한 분위기가 가장 중요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기운, 즉 포근하고 따뜻한 곳. 난 8평 남짓한 이 아담한 집에서도 확 트여 있는 큰 창을 좋아한다. 아침마다 출근 준비하면서 밝은 에너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산다는 자유뿐 아니라 또 다른 책임감을 선사한다. 자유와 책임에 적절히 균형을 갖춘 어른이 된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부모님과 살 때보다 외박의 횟수가 훨씬 줄어들었다.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보다는 집에 사람들을 초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덩달아 생활에 긴장감이 생긴다. 청소할 때만큼은 유독 능동적이지 않은 편인데 손님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니 날마다 일정 수준의 청결을 유지한다. 오피스텔 특성상 계약 기간이 1년밖에 되지 않아, 집주인과 이야기를 잘하면 조금 더 이 집에서 머물 수도 있고, 곧 이삿짐을 싸야 할 수도 있다. 어디가 됐든, 앞으로도 난 나의 공간에서 더 가치 있는 시간
을 보냈으면 한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온기,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조용히 나를 돌아보는 휴식. 무엇이든 괜찮을 것 같다. – 최희수(33세, CGV마케터, 독립 1년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