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하반기, 스타들의 헤어 스타일을 지배한 건 눈썹이 다 보이는 처피 뱅이었다. 몇 년간 시스루 뱅을 고집하던 뷰티 에디터의 처피 뱅 도전기와 처피 뱅을 멋지게 소화하는 방법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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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앞머리계의 왕좌는 시스루 뱅이 지키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추구하는 패션 & 뷰티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으면서 다양하게 스타일링하기에도 어렵지 않은 시스루 뱅이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것이다. 하지만 2016년부터 철옹성 같던 시스루 뱅의 왕좌가 위태로워지기 시작했다. 눈썹이 다 보이는 짧은 앞머리 ‘처피 뱅’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처피 뱅은 ‘고르지 못한, 뚝뚝 끊어지는’이라는 뜻을 지닌 처피(Choppy)와 앞머리(Bang)의 합성어로, 눈썹이 다 보이도록 짧은 불규칙한 느낌의 앞머리를 일컫는다. 눈을 찌를 듯 말 듯 긴 길이와 이마가 보일 정도로 적은 머리숱이 특징인 ‘시스루 뱅’과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이다.

사실 해외에서는 2016년 봄/여름 시즌 패션쇼가 열리던 2015년 가을부터 처피 뱅이 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엉뚱한 분위기를 풍기는 너드 룩이 유행하면서, 제멋대로 앞머리를 자른 듯한 처피 뱅이 런웨이를 장악한 것. 당시 아크네 쇼의 헤어를 담당한 아티스트 유진 슐레이먼은 이렇게 짧은 앞머리를 두고 “매우 시크하고 강해 보이지만, 동시에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스타일”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난해까지만 해도 처피 뱅을 다들 ‘외국에서 잠깐 유행할 독특한 헤어 트렌드’일 뿐이라 치부했다. 자연스럽고 여성스러운 스타일을 좋아하는 한국 여성들이 너도나도 앞머리를 삐뚤빼뚤 짧게 자를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한 탓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예상은 가뿐히 뒤집어졌다. 2016년 봄, 가인과 공효진, 설리, 루나가 앞머리를 짧게 자른 이후 정유미, 김새롬, 이성경, 유빈, 리지, 서인영, 강예원, 김민정까지. 수많은 스타가 앞다퉈 처피 뱅으로 머리를 자르며 처피 뱅이 어느새 가장 핫한 헤어 트렌드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1인 헤어숍 마스터피스의 이영현 원장 역시 앞머리 트렌드의 세대 교체를 실감하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손님들이 앞다투어 처피 뱅에 도전하고 있어요. 다들 시스루 뱅을 지겨워하던 찰나에 처피 뱅이 등장하면서, 귀여워 보이면서도 개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처피 뱅이 사랑받고 있는 것 같아요.”

 

고심 끝에 도전한 처피 뱅
에디터 역시 몇 년간 시스루 뱅을 유지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금세 길이가 자라 눈을 찌르는 데다 쉽게 기름이 끼는 시스루 뱅에 슬슬 싫증이 나고 있었다. 그럼 에도 처음에는 감히 앞머리를 싹둑 자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설리의 처피 뱅이 화제를 일으켰을 때도 ‘이제 한국에서도 처피 뱅이 주목을 받겠구나’ 싶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처피 뱅을 하면 안 그래도 동그란 얼굴이 더 크고 동그래 보일 것 같았고, 어려 보이려 일부러 앞머리를 짧게 자른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용기 내 잘랐는데 실패하면, 머리가 워낙 짧아 다시 복구하는 데도 애를 먹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처피 뱅을 멋지게 소화한 연예인은 점점 더 늘어났다. 그럴 때마다 마음은 동요했지만, ‘연예인이라서 예쁜 거야. 나는 안어울릴 거야’라는 생각으로 유혹을 이겨냈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기를 몇 달, 고민의 마침표를 찍게 한 건 ‘윰블리’ 정유미의 처피 뱅이었다. 처피 뱅에 도전한 후 한층 더 사랑스러워진 그녀를 본 후 강한 욕구가 밀려왔다. 그래서 주변의 헤어 아티스트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돌아온 건 다행히도 대부분 긍정적인 답변이었다. “연예인들만 소화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처피 뱅은 생각보다 모든 얼굴형에 다 잘 어울려요. 각진 얼굴형은 시선이 앞머리로 분산돼 얼굴 각이 완만해 보이고, 둥근 얼굴형은 밋밋함이 없어지고 개성이 뚜렷해 보이죠. 자신의 얼굴형에 어울리는 디자인만 잘 찾는다면 누구나 개성 있게 처피 뱅을 소화할 수 있어요.” 제니하우스 청담힐점 유미 디자이너의 말을 듣고 나니 ‘한번 도전해보자’라는 용기가 샘솟았다. 그리고 곧장 미용실로 달려갔다. 수줍게 정유미 사진을 내밀며 ‘처피 뱅으로 자르고 싶다’고 말하자 헤어 아티스트는 미소를 지으며 “요새 다들 처피 뱅으로 많이 자르니까 너무 무서워하지 마요”라며 힘을 실어주었다. 얼굴이 동그란 편이라 정유미처럼 일자로 똑 떨어지는 처피 뱅은 어울리지 않으니, 옆머리를 길게 잘라야 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드디어 앞머리를 짧게 자르는 순간! 차마 거울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 됐어요”라는 말에 눈을 떠보니, 거울에 비친 건 낯선 내 모습이었다. 주변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귀 여워졌다”는 반응부터 “아기 때 얼굴이 보인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거울을 볼 때마다 낯선 내 모습에 깜짝깜짝 놀라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시스루 뱅에 워낙 익숙해진 터라 머리를 감고 난 후 스타일링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 “샴푸 후 앞머리를 늘어뜨리며 머리를 말려야 해요. 머리가 워낙 짧기 때문에 헤어롤을 잘못 사용하면 스타일이 이상해질 수 있으니 헤어롤은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게 좋고요. 앞머리를 빗은 뒤 손가락으로 모발 끝을 헝클어뜨린 다음, 스프레이로 고정해 마무리하는 게 좋아요.” 설리의 헤어를 담당하는 멥시의 서윤 원장의 조언대로 헤어롤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만 앞머리를 스타일링했다. 머리가 확 바뀌었으니 메이크업도 달리해야 했다. 눈썹이 훤히 보이는 만큼 브로우 메이크업에 가장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모발 색과 비슷한 갈색 브로우 펜슬로 라인을 또렷하게 정리하고, 파우더로 빈 곳을 채워 자연스럽게 또렷한 눈썹을 연출했다. 아이 메이크업은 짙게 하면 인상이 너무 세 보일 것 같아, 속눈썹만 마스카라로 또렷하게 컬링한 뒤, 베리 컬러의 립스틱을 발라 입술에 포인트를 줬다. 어떤 옷을 매치해야 하는지도 고민스러웠는데, 심플한 디자인의 옷부터 플라워 패턴의 화려한 원피스까지 두루두루 잘 어울렸다. 포멀한 정장이 아니라면 어떤 스타일이든 무난하게 잘 어울리는 헤어 스타일이었다. 개성이 너무 강하다고만 느껴졌던 처피 뱅, 생각만큼 어려운 스타일이 아니었다. “처피 뱅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저는 이왕 처피 뱅을 시도할 거라면 여름보다 겨울에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겨울에는 주로 무채색의 두꺼운 옷을 많이 입어서 액세서리나 의상으로 포인트를 주기가 힘들잖아요. 이럴 때 처피 뱅을 시도하면 칙칙한 스타일에 포인트를 더할 수 있어요. 겨울에는 여름보다 유분이나 땀으로 인해 앞머리가 기름질 확률도 적고요.” 처피 뱅으로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멥시의 서윤 원장의 조언이다. 매일 똑같은 스타일에서 벗어나 좀 더 나만의 개성을 강조하고 싶다면, 이번 기회에 독특한 매력을 지닌 처피 뱅에 도전해보길. 고민과 후회만 남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트렌드’라는 아주 좋은 핑계가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