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폴센의 조명을 달고 허드슨의 원목 테이블을 탐닉하면서 정작 집에선 쓰레기통으로 가기 직전으로 너덜해진‘ 츄리닝’을 입고 있진 않은지. 일상에서도 멋지고 세련되게.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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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옷과 속옷 마니아다. 파리로 출장을 갈 때면 제일 먼저 봉마르셰 백화점의 속옷 층으로 달려가 프린세스 탐탐 , 스텔라 맥카트니, 에레스의 언더웨어와 파자마를 한아름 안고 나온다. 뉴욕 쇼핑 리스트 1위는 슬리피 존슨, 스리 J NYC의 파자마다. 이달 커버 촬영으로 간 태국의 리조트에서도 하얀 파자마 슈트와 이그조틱한 문양의 로브를 사 왔다. 어느 날 아이를 안고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무릎 나온 저지 팬츠를 입고 집 안을 돌아다니다, 거울 속의 나의 모습이 낯설고 서글프다는 생각이 든 이후부터 나는 그렇게 집에서도 ‘잘 입기’를 선택했다. 집은 밖에서 치이고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이니 편한 대로 아무렇게나 입어도 될까? 집은 사랑하는 이와 저녁을 먹고 아이를 재우며 애정을 확인하는, 평범한 행복이 축적되는 일상의 공간이다. 그런 일상에서 입는 옷은 하이 패션의 욕망과 환상이 빚어낸 유행과는 비교될 수 없는 편안한 우아함의 무게를 지녀야 한다. 대충 입어도 된다고 각생한다면 삶 중에서 가장 소중하고 긴 시간을 대충 보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늘어난 홈 드레싱 브랜드는 이런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을 대변한다. 무인 양품, 자주, 자라홈, H&M 홈 등 라이프스타일을 전개하는 브랜드들은 라운지 웨어 라인을 독립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그중 자라홈은 집 안 어디에서든 자신의 취향에 맞게 옷을 선택할 수 있도록 라운지 웨어, 란제리 컬렉션, 에센셜 컬렉션으로 세분화할 정도로 홈 드레싱에 집중한다. 세련되고 편안한 일상복에 대한 고민을 일찍부터 해온 유니클로 역시 룸‘ 웨어’ 라인으로 라이프 웨어에서 집의 영역을 보강했다. “ 집에서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스타일리시하게 입을 수 있는 편안한 옷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죠. 게다가 차려입지 않았지만 멋져 보이는 것을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은 실내와 실외 어디에서든 입을 수 있는 옷을 좋아해요 .”유니클로의 마케팅팀 이나래는 라이프웨어가 각광받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라운지 웨어가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는 더 있다. 라운지 웨어 영역이 멜트, 르네, 꼬꼬테 서울, 로브로브(실외복으로 영역을 확장했지만) 등 디자이너가 중심이 되어파 자마와 로브를 선보였던 소규모 브랜드에서 기업형 브랜드로 확산되고 있는 것. 2015 아메리칸 이글스는 자연스러움과 건강함에 초점을 맞춘 라운지 웨어 브랜드 에어리를 선보였고, 신세계 인터내셔널은 원마일 웨어(집 반경마 1일 내에서 입을 수 있는 간단하지만 절대 아무렇게나 입은 것 같지 않은 옷)를 표방하는 라운지 웨어 브랜드 브이 라운지를, 컨템퍼러리브 랜드비지트 인 뉴욕은 숍인숍 개념으로 캐시미어, 앙고라 등의 고급 소재를 사용한 N.Y 스튜디오를 론칭했다. 국내 시장에 고급 소재에 편안함을 접목해 우아한 생활 양식을 제안한 것은 한섬의 더 캐시미어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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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급스러운 소재를 사용하여 생활의 품격을 강조하는 더 캐시미어. 2 언더 웨어 브랜드 오이쇼는 나이트 가운, 홈 드레스, 점프슈트 등 다양한 홈 컬렉션을 선보인다. 3 레이온 소재 파자마 셔츠는 9만8천원, 멜트(Melt). 4 리넨 소재 로브는 15만8천원, 로브 로브(Lov Lov). 5 플로랄 패턴의 로브는 8만원대, 오이쇼(Oysho).

“이불 밖은 너무 위험하다는 말이 유행일 정도로 요즘 사람들은 집에 있기를 좋아하죠. 그만큼 피로도가 높다는 이야기 아닐까요? 멜트는 쉼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즉각적인 휴가(Instant Vacation)’를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프로젝트 였어요. 집에서도 잘 갖춰 입으면 마음가짐도 달라지죠. 우아하게 차를 내려 마시며 책을 본다거나 사색을 하게 되요. 어디에서든 자신을 기록하기 위해 셀피를 찍어야 하는 세상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니 집에서도 멋지게 입고 있어야 하고”요. 파자마와 로브 등을 선보이는 멜트의 이예지는 쉼이 필요한 현대인을 위해 라운지 웨어를 선보였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파자마나 로브를 입기 시작한 것은 낮과 밤,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요즘의 흐름을 따른 것이기도 하다. 작년 여름 그리고 가을까지 이어진 가장 큰 패션 트렌드가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는지. 바로 슬립 드레스였다. 이제는 티셔츠 위에 슬립 드레스를 입는 것이 레이어링의 공식으로 인정받을 만큼 속옷을 겉으로 입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16년 로샤스가 리조트 컬렉션에서 선보인 샛노란 파자마 슈트, 2015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동시대의 멋쟁이들을 위해 세린느가 선보인 루스한 핏의 파자마 팬츠와 누비이불처럼 어깨 위에 두른 케이프, 페르시안 카펫과 잘 어울리는 구찌의 털 달린 블로퍼 등 끊임없이 침실 구역의 것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길 시도했고,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제 완전하게 침실 밖과 안의 구분은 사라졌다. 디자이너들의 손을 거쳐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그야말로 하이 패션적으로 재탄생한 란제리와 파자마는 역으로 침실에서의 모습을 더욱 멋지게 만들어주었다. 낮을 위하건 밤을 위하건 집 안에서든 밖에서든 나를 사랑하는 자기주도식 스타일링의 중심엔 편안하고 세련된 홈 드레싱이 있다. 잘 차려입은 실내복이 삶의 의욕을 북돋아주고 지친 내면을 치유해주는 것은 확실하다. 다만 그것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짜 나를 위한 길이었음 좋겠다. 집에서 행하는 모든 것들이 나 혹은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삶을 멋지게 기록하는 소중한 순간임을 잊지 말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