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첫 이직을 했다. 퇴사와 이직은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새로운 연인을 만나는 과정과 매우 흡사했다. 그 맺고 끊음의 과정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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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안녕?
이별은 늘 어렵다. 수북하게 쌓인 정도 떼야 하고, 감성적인 추억도 기억으로 바꿔야하며 애틋했던 초심도 모른 척 덮어둬야 한다. 어떤 종류의 이별이냐에 따라 상대에게 비난도 받아야 한다. 2010년 11월부터 다니던 회사와 이별하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권태로움 때문이었다. 일이 너무 많아 체력적으로 버겁고, 상사와 한창 마찰을 빚었던 시기가 지나자 매사에 시들해졌다. 장단점을 알면서도 결혼을 결심하기엔 못내 아쉬운 남자친구라고나 할까? 하지만 마음을 재정비하고, 새롭게 뭔가를 시작하기엔 난 회사의 화석 같은 존재였다. 이직이 잦은 잡지 업계에서 6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그렇다. 나의 이직 소식에 많은 선배들은 “그래, 옮길 때 됐다”라고 말했으니까. 새로운 회사는 한 달이라도 빨리 와주길 바랐고, 난 욕 먹을 각오를 하고 다니던 회사에 퇴사 일정을 고했다. 이직하는 사람들이 으레 겪는 일이지만 퇴사 일정을 최대한 빨리 결정해서 통보하는 게 양쪽 사이에 껴 샌드위치 신세가 된 나를 아끼는 일이라 생각했다. 미안한 마음도, 서운한 감정도 이별의 통과의례라 여겼다. ‘웃으며 안녕’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았다. 그럼에도 그런 감상에 빠지기엔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과제들이 무거웠다. 퇴직서에 사인 받기, 책상 정리하기, 작별 인사하기 등. 시간의‘스킵’ 버튼이 있다면 누르고 싶었다. 그 과정을 겪으며 깨달은 것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고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니 미루지 말 것. 둘째, 상사의 원망 어린 눈빛과 냉정한 태도에 상처받지 말 것. 셋째, 가능하다면 회사 짐은 신속히 조용하게 정리할 것. 넷째, 회사 건물에서만 마지막일 뿐 만날 사람은 얼마든지 회사 밖에서 더 자주 만날 수 있으니 너무 서운해하지 말 것. 마음은 복잡했지만 이별의 절차는 단순했다. 그렇게 난 27권의 잡지를 만들고, 첫 직장과 헤어졌다.

다시 신입사원
이직해서 새로운 회사로 출근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지금,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전 직장에서는 어땠어?”이고,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전 직장에서는~”이다. 아무리 동종업계지만 회사, 시스템, 사람들이 다르니 미묘한 차이점도 많다. 그럼에도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조급증이 생겼다. 모르는 게 당연한 신입사원과는 엄연히 다른 7년 차 중고 신입사원이었기 때문이다. 모르는 게 생기면 유관부서 사람에게 메일이나 전화로 연신 질문을 했다. 처음이라 미안하고, 자꾸 물어 죄송한 상황은 계속됐다. 첫 마감을 한 후 상사는 나에게 “일해보니 어땠냐?”라고 물었고, 난 “첫 달이 가장 중요하다고 해 부담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첫 달? 당연히 중요하지. 그런데 두 번째 달, 세 번째 달도 다 중요해.” 상사의 그 말을 듣고 보니 나는 신입사원이었을 때 겪은 마음 고생을 반복하고 있었다. 누구도 재촉하고 비난하지 않았는데 자책하고, 자괴감을 느끼는 것. 나는 다시 신입사원이 돼버렸지만, 그게 싫지만은 않았다. 그 덕에 권태로움에 몸서리쳤던 때가 언제였는지 까마득해졌으니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문득 전 직장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내가 없이도 그 회사는 잘 돌아가는지, 진로고민을 하던 후배는 어떻게 결론을 내렸는지, 후배를 괴롭히던 상사는 여전한지 등. 물론 그새 달라진 건 없었다. 나를 비롯한 회사원들이 자주 하는 오해, 나‘ 아니면 안 된다’ 라는 생각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입사 2개월 차 신입사원이지만, 난 많은 것을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

커리어 중간 결산
이따금씩 조급증이 도지면 새로운 회사에 오면서 다짐한 사소한 것들을 떠올리며 현재 상태를 점검한다. 첫째, 회사 책상에 많은 물건을 두지 않는다 . 내 책상을 본 선배는 “넌 이미 그 자리에 한 1년 이상 앉아 있었던 것 같아” 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마감 때마다 생활 패턴이 밤낮으로 바뀌지만 나름 잘 지키고 있다. 출근 길에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오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셋째, 오늘 할 일은 오늘, 내일 할 일은 내일 한다. 그동안은 연차가 쌓이면서 엉덩이가 무거워지니 오늘 할 일을 내일 미루고는 했다. 최근엔 야근을 해야만 하는 마감 때가 아니고서는 늦은 시간까지 회사에 남아 일할 거리를 만들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선방하고 있다. “반년 정도 지내다 보면 내 회사라는 생각이 들 거야.” 2년 전에 이직을 한 선배가 조언했다. 그래서 딱 그만큼의 유예기간을 나에게 줄 생각이다. 새로운 회사에서 낯설게 느끼는 많은 것은 시간이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직해서 좋냐고 내게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6년간의 직장 생활에 대한 보상처럼 두둑한 퇴직금을 받아서 좋고, 미운 사람을 보지 않아서도 좋다. 그러나 가장 좋은 건 이직을 함으로써 내 커리어를 중간 결산 및 정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이야말로 나의 약점을 땜질하고, 강점을 더 드러낼 수 있는 기회라 여긴다. 회사를 옮기는 일은 분명 번거로운 일이다. 그러나 그럴 가치는 충분히 있다.

새로운 직장에 잘 적응하려면
1 부정적인 의견은 반만 믿는다 전 직장에서 내가 그랬듯, 현 직장의 동료들 역시 회사를 잘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100% 그대로 믿거나 받아들이기보다는 적절히 필터링해서 듣는 게 좋다. 오히려 일할 때 선입견이 생겨 방해가 될 수 있는 데다가 어차피 직접 겪어야 알 수 있는 일이다.
2 하던 대로 한다 새로운 회사에 어필할 생각으로 그동안 안 하던 것을 하면서 굳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려고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 옮긴 회사에서 적응한 후, 본래 내 모습이 드러나는 바람에 사람들이 괴리감을 느낄 수 있다.
3 내 편 한 명을 사귄다 처음부터 많은 사람을 사귀려 들지 말고, 내 편이 될 만한 한 사람을 사귄다. 취향과 성향이 맞는 사람이면 정서적으로 가장 좋겠지만, 회사 적응을 위해서는 발도 넓고, 사내 소식에 빠른 사람과 친해지는 게 좋다. 다른 사람들의 성향과 특성, 시스템을 파악할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4 이름과 직함, 자리를 파악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 직함 등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익히게 돼 있다. 그중에서도 업무와 밀접한 사람의 정보는 빨리 파악할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