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을 돌이켜본다.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이 가져다준 현상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패션은 격동의 시대를 맞이할 태세를 갖추어야만 했다. 2016년의 패션은 변화를 선택했고, 이는 미래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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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모델
케이팝과 케이뷰티 그리고 케이모델의 시대가 열렸다. 올해 아시아 모델 중 가장 많은 쇼에 선 최소라가 그 스포트라이트의 주역. 여기에 동양적인 마스크가 매력적인 신현지와 2017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데뷔한 정호연과 배윤영이 뒤를 잇는다. 배윤영은 프라다와의 독점 계약을 시작으로 프라다의 익스클루시브 모델로 밀라노 패션 위크에 등장했고, 디올과 로에베의 쇼에도 캐스팅되었다. 정호연은 뉴욕부터 밀라노를 거쳐 루이 비통의 익스클루시브 모델까지 석권하며 코리아 특급을 증명해냈다.

직구 격돌
샵밥, 마이테레사닷컴, 네타포르테 등 거대한 온라인 편집숍들이 국내 시장을 향한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만큼 직구가 한국 소비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 한국에 바잉되지 않은 다양한 브랜드를 접할 수 있고 나의 쇼핑 취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으며 가격도 저렴하고 클릭 한 번으로 총알 배송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한국어 서비스도 지원하니, 직구의 세계는 무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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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몽클레르 2 미우미우 3 사카이

청담동 탐방
청담동에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가 추가되었다. 까르띠에가 자리를 옮겨 보다 한국 정서를 반영한 인테리어로 거듭났고, 이웃사촌으로 미우미우의 청담 부티크가 들어섰다. 미우미우 맞은편에는 몽클레르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들어섰고 분더샵 청담과 마주한 자리엔 사카이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새로운 지형도를 완성했다. 청담동의 풍경이 보다 패셔너블해졌다.

‘제철’ 쇼
시 나우 바이 나우(See Now, Buy Now)! 새로운 패션 캘린더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디자이너들은 제 계절에 맞는 의상을 선보이고 고객은 쇼가 발표되자마자 매장에 진열된 옷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버버리와 톰 포드가 가장 적극적으로 이 시스템을 가동 중이며 타미 힐피거, 랄프 로렌, 타쿤 등의 뉴욕 브랜드가 이를 지지했다. 디자이너들은 내년에도 창의성과 판매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쇼를 선보이는 방식과 시기에 대한 변화를 모색해야 할 듯.

 

1612_WEB_FASHION KEYWORD_2-3의미심장한 전시
패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정리한 의미 있는 전시 두 개가 열렸다. 한국판 <보그>의 20주년을 기념하는 <Mode & Moments: 한국 패션 100년>과 파리의 앙팡 테리블 <장 폴 고티에 전>. 100년간의 한국 여자와 문화가 시대의 특징별로 정리된 약 300점의 옷에 담겨 있었고 이는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감동을 전했다. 마네킹에 전시된 135점의 의상, 패션 스케치, 사진을 비롯한 평면 작품 72점, 오브제 작품 20점 등 총 220여 점으로 채워진 장 폴 고티에의 전시장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한 사람의 치열한 열정과 날카롭고 천재적인 감각으로 가득했다.

경험의 럭셔리
인터내셔널 <보그> 에디터 수지 멘키스가 주관하는 콘데 나스트 럭셔리 컨퍼런스(이하 CNI)가 서울에서 열렸고 이는 한국 패션의 위치와 럭셔리 산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럭셔리란 무엇인지, 미래를 맞이하는 패션의 가치와 방향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기술에 대한 대담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럭셔리는 소비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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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니아 리키엘를 추모했던 2017년 봄/여름 컬렉션. 2 빌 커닝햄을 상징하는 파란 재킷을 입고 포토라인에 선 사진가들.

모두 안녕히!
2016년 6월 25일 파란 재킷을 입고 거리를 누볐던 세계 최초의 스트리트 패션 사진가 빌 커닝햄이 우리와 이별했다. 그는 87세까지 힌결같이 열정적으로 현실의 패션을 렌즈를 통해 또렷하게 기록했다.8월 25일에는 ‘니트’의 여왕이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빨간 머리 여자, 소니아 리키엘이 아듀를 고하며 우리의 곁을 떠났다. 2016년은 패션계의 전설적인 인물들이 진짜 전설이 된 가슴 아픈 해이기도.

뎀나와 미켈레
2016년 패션계의 메가 이슈는 뎀나 바잘리아와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대결 구도다. 뎀나 바잘리아가 2016년 가을/겨울 시즌 발렌시아가의 첫 데뷔를 마친 후 이 두 명의 디자이너가 패션계를 이끌어갈 것임이 분명해졌다. 뎀나는 마르지엘라식의 해체주의를, 미켈레는 신비로운 장식주의로 완전하게 다른 노선을 선택했지만 패션을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닮아 있다. 개인의 특징과 취향을 존중한다는 점! 그들의 진보적인 사고 덕분에 모델과 일반인의 경계가 무너졌고, 우리는 시즌과 성별을 고려하지 않고 옷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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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의 크리스털 장식 귀고리.

역시나 쿨하게
밀레니얼 세대가 하루아침에 ‘짠’하고 탄생한 것은 아니지만, 2016년은 소셜 미디어가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디지털에 능숙한 이들이 주로 즐기는 ‘유스 컬처’ 스타일이 패션계의 주류로 자리 잡은 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스트리트적인 취향과 하이엔드적 안목을 동시에 지닌 이들의 스타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쿨하게 옷을 입는 태도. 그리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

귀고리 만세
커다란 드롭형 귀고리를 모던한 슈트나 베트멍식의 전위적인 후디와 함께 매치하는 것은 세상 쿨한 자세. 이는 남성적인 룩에 여성성을 드리우기 위해 화려한 귀고리가 알맞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이는 2017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남녀 모델 모두에게 반짝이는 크리스털 귀고리를 착용시킬 정도로 커다란 귀고리는 당분간 유행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을 듯하다.

순백의 만찬
지난 6월 11일 반포 한강공원 달빛 광장엔 순백의 의상을 입은 천여 명의 사람들이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이는 20년 전 파리에서 시작된 디네 앙 블랑(Diner en Blanc)으로 공공장소에서 비밀스럽게 펼쳐지는 게릴라식 디너. 참가자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색 옷으로 차려입고 자신이 준비한 만찬을 즐기면 된다. 서울에서 처음 열린 디네 앙 블랑에세도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낸 서울리안들의 올 화이트 룩이 압도적인 광경을 만들어냈다. 굉장히 눈부시고 근사한 만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