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을 지나는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지구가 소란하다. 이럴 때 문화며 예술이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하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삶을 견디게 하는 건 즐거움과 아름다움이다. 2016년, 우리가 누린 문화와 예술.

 

아트

사진의 시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그럴듯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남이 찍은 사진을 보기 위해 갤러리를 찾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예쁘고 아름다운 사진 이상으로 시대상이나 메시지가 강렬하게 들어가 있는 전시가 유독 많았던 올해. 패션 사진계의 거장 허브 릿츠가 포문을 열었다. 전시 <마돈나를 춤추게 한 허브 릿츠>에서는 그의 카메라 앞에 기꺼이 선 스타들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여전히 영향력 있는 패션 사진가 닉 나이트는 국내 최초로 전시를 개최했다. 전시명은 <거침없이, 아름답게>. 화려한 패션 사진뿐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패션 캠페인 등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명징하게 보여주었다. 각본과 연출 따위는 없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드라마로 일컬어지는 <로이터 사진전>도 열렸다. 기록하는 행위가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사진 한 장, 한 장이 말하고 있었다. 세계 최대 규모라는 말은 결코 허황된 말이 아니었다.

아트 읽어주는 스타들
올해도 ‘아트 테이너’의 활약은 멈추지 않았다. 배우 이정재는 <이중섭, 백 년의 신화 전>에서 특유의 감성을 담아 이중섭 선생의 일생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오디오 가이드에 목소리로 담았다. <로이터 사진전>에는 진구가, <거장 vs 거장-샤갈, 달리 뷔페>전에는 유오성, <호안 미로 특별전>에는 박해일 등이 친숙한 목소리로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안내했다. 최근엔 배우 조여정이 데이비드 라샤펠의 전시회 오디오 가이드 녹음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또한 장근석은 올해 초 <반 고흐 인사이드 : 빛과 음악의 축제>전에 홍보대사로 나섰고 박서준 역시 제주도에서 열린 반 고흐 작품 전시의 홍보대사가 됐다. 빅뱅의 탑은 아예 소더비 게스트 큐레이터로 나섰다. 유아인은 직접 아티스트 그룹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만들어 다양한 형태의 아트워크를 진행하고 있다. 그들은 진정한 아티스트였다.

21_이중섭, 황소, 1953-54, 종이에 유채, 32.3x49

이중섭의 <황소>

위대한 탄생 이중섭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이중섭.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를 기록하고, 보존한다. 탄생 100주년, 서거 60주년을 맞은 이중섭을 기리는 콘텐츠는 무수히 쏟아졌다. 이중섭 탄생 기념 우표가 발행됐고, 그의 삶을 기리는 다큐멘터리 영화 <이중섭의 아내>가 개봉됐다. 연극 <길 떠나는 가족>은 2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작품 전시도 활발했다. 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이중섭은 죽었다>전을 시작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 제주 이중섭 미술관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이름> 등 1년 내내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일민 미술관의 UP & DOWN
UP 지난 3월에 열린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은 지난 10년간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성장한 소규모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의 성과를 정리하는 자리였다. 단순히 디자인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에 대한 전시로 초점을 맞춰 기획된 것이기 때문에 디자인이 발전하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은 또 다른 전시는 김용익 작가의 <가까이…더 가까이…>였다. 40년간 그의 작품을 돌아보는 회고전으로 미술의 흐름까지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DOWN 큐레이터 함영준이 성희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미술관은 발 빠르게 그를 사직 처리하는 것으로 수습했지만 비난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놀이터가 된 미술관
놀 곳이 없다던 젊은 사람들은 갤러리, 미술관 등을 놀이터 삼았다. 심지어는 미술관 입장을 위해 줄 서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맛집도 아닌데 말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은 대림미술관의 <컬러유어라이프>, <닉 나이트 사진전>, 디뮤지엄의 <아홉 개의 빛>, KT&G 상상마당의 <장자끄 쌍뻬-파리에서 뉴욕까지> 등의 공통점은 1만원 내외로 입장료가 저렴하고, 작품이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설명 없이 작품을 보더라도 직관적으로 감상한다. SNS에 올리면 반응이 괜찮을 법한 사진도 여러 장 건질 수 있다.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해 맛집, 카페를 찾듯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산책하다 미술관에 무심코 들어가 작품을 감상하는 장면이 파리, 뉴욕 등이 아닌 서울에서 연출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승효상_주택드로잉_논산주택

<열두 집의 풍경>

거장의 귀환
화가, 도예가, 조각가 등으로 유명한 호안 미로. 세종미술회관에서 열린 특별전은 아시아와 유럽을 통틀어 가장 큰 규모로 기획됐다. 한 명도 아닌 세 명의 거장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전시도 있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거장 vs 거장-샤갈, 달리, 뷔페>전. 국내 거장으로는 건축가 승효상의 전시 <열두 집의 풍경>이 열렸고, 올해로 서거 10주기를 맞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전시가 있었다. <백남준 쇼>와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 실험적이고 전위적이던 그의 작품 세계만큼이나 자유롭고 특별한 기획으로 호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