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겨울 시즌 모델들의 머리 위는 더욱 화려해졌다. 연약한 생화와 티아라, 고풍스러운 브로치 그리고 온갖 참과 체인까지 헤어 액세서리의 소재는 더욱 다양해졌고 어디에, 얼마나 꽂아야 하는지 룰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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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머리를 로맨틱하게 감싼 랑방 쇼의 리본부터 머리카락을 목 부분에 느슨하게 고정한 디올 쇼의 초커 스타일의 헤어 장식, 70년대 스타일로 장식한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쇼의 코르사주까지, 지난 봄/여름 시즌의 헤어 장식은 실용적이고 우아한 포인트 역할에 가까웠다. 반면 이
번 가을/겨울 시즌 모델들의 머리 위는 동화처럼 드라마틱하고 로맨틱하다. “오늘날 모든 소녀는 공주가 되기를 원해요.” 디자이너 스테파노 가바나의 말처럼, 지난 몇 시즌 동안 아르누보 스타일의 금속 헤어 장식부터 스카프, 열대의 과일과 꽃 장식까지 온갖 예쁘고 화려한 것을 머리 위로 과감히 옮겨온 돌체앤가바나 쇼는 이번 시즌, 아예 런웨이 위에 현대판 디즈니 공주들을 재현했다. 테디 베어, 신데렐라의 호박 마차와 디즈니 동물 친구들이 수놓인 드레스뿐만이 아니다. 돌체앤가바나 쇼의 헤어 아티스트 귀도 팔라우는 리본과 꽃, 앙증맞은 모자로 모델들의 머리를 장식했다. “헤어 장식 앞에 오렌지, 핑크 등 만화 같은 컬러의 짧은 앞머리 가발을 붙여서 디즈니 공주처럼 보이게 했어요.” 장밋빛 뺨과 결점 없는 피부, 긴 머리카락과 화려한 헤어 장식의 매치가 자칫 고루하지 않아 보이는 것은 바로 이 펑키한 앞머리 가발의 힘이 아닐까. 물론 헤어 장식 역시 평범하지 않다. 레이스와 벨벳 등 다양한 소재와 갖가지 조화, 보석, 리본으로 꾸며진 이 커다란 헤어 장식은 스타일리스트 아담 리드가 제작한 것인데, 그는 바느질숍(Haberdashery Store)에서 찾은 태슬 장식이나 고무줄등이 사용된 이 DIY 헤어 액세서리에 ‘헤어배대서리(Hairbadashery)’라는 신조어를 이름 붙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 단어는 이미 인스타그램의 해시태그나 트렌드 관련 사이트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아담 리드의 신조어를 두둔이라도 하듯, 톰브라운의 모델들은 넥타이, 깃털 등을 활용한 독특한 헤어 장식으로 얼굴 주변을 장식한 채 런웨이에 올랐고, 안토니오 마라스 쇼에서도 망사, 모피, 리본 등 온갖 소재가 뒤섞인 헤어 장식이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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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리스털 장식의 브로치는 가격미정, 랑방(Lanvin). 2 진주 장식 헤어 밴드는 7만9천8백원, 빈티지 헐리우드(Vintage Hollywood). 3 진주 장식 티아라는 2만원대, 아르뉴(Arnew). 4 아크릴 소재 집게핀은 1만1천7백원, 아르뉴. 5 메탈 소재 헤어 밴드는 3만9천원, 빈티지 헐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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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체앤가바나 쇼의 모델들이 발랄한 공주를 닮았다면 알렉산더 맥퀸과 로다테 쇼의 모델들은 마치 신화 속의 여신들처럼 강인해 보이는 구석이 있다. 로다테 쇼에서는 부스스한 머리카락 위에 금속 왕관을 얹고 난과 백합 생화를 꽂아 이질적인 조화를 연출했다. 헤어 아티스트 오딜 질베르는 모델들의 머리 가운데, 혹은 양옆에 생화와 왕관 장식을 얹고 올림머리 주변을 꽃으로 장식했다. 모델들이 런웨이에서 걸음을 뗄 때마다 머리카락에 장식된 꽃이 흔들리게 하려는 의도였다. 연약한 꽃잎으로 우아하게 장식된 머리와 달리, 얼굴에는 강인함을 담았다. 마치 그리스 신화의 여전사처럼! “천상에서 내려온 듯 아름답지만 터프하죠.” 메이크업 아티스트 제임스 칼리아도스는 눈썹까지 검은 마스카라로 짙게 색을 입히고 입술에는 어두운 버건디 립스틱을 얼룩지게 발랐다. 알렉산더 맥퀸 쇼에는 할머니의 오래된 보석함에서 꺼내 온듯한 온갖 고풍스러운 브로치와 참, 체인 등이 머리 위에 등장했다. 디자이너 사라 버튼이 이 반짝이는 헤어 장식들을 모으기 위해 몇 주를 고심했을 정도. 헤어 아티스트 귀도 팔라우는 지저분한 올림머리에 이 헤어 장식들을 이마까지 삐져 나오도록 아무렇게나 꽂았다. 마치 머리 손질을 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루치아 피에로니는 로즈 골드 빛의 하이라이터를 모델들의 뺨에 바르고 눈가를 검게 연출하여 여성스러우면서도 펑키한 무드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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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폴리에스테르 소재 헤어 밴드는 2만5천원, 케이트앤켈리(Katenkelly). 7 메탈 소재의 라인스톤 장식 브로치는 가격미정, 샤넬(Chanel). 8 옐로 다이아몬드 장식의 18K 화이트 골드 티아라는 가격미정, 쇼메(Chaumet). 9 포니테일 연출에 사용하는 소가죽 소재 헤어 피스는 8만2천원, 먼데이에디션(Monday Edition). 10 18K 핑크 골드 소재의 핑크 오팔 장식 티아라는 가격미정, 쇼메.

과거 컬렉션에서 보여진 헤어 장식이 지나치게 쇼적이어서 현실에서는 적용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일상에서 활용할 만한 스타일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번 가을/겨울 시즌도 마찬가지다. 베르사체, 앤 드묄미스터 쇼에서는 부스스한 웨이브 헤어 위에 심플한 헤어밴드를 이마 가까이 얹어 스포티하고 반항적인 무드를 자아냈다. 타미 힐피거 쇼의 헤어 아티스트 유진 슐레이먼은 가르마를 아무렇게나 탄 다음 낮은 포니테일로 느슨하게 머리를 묶고 그 위에 작은 티아라를 얹었다. 마치 헤어밴드처럼 말이다. 뒤통수에 느슨하게 헤어핀을 꽂은 피터 필리토나 비오네트 쇼의 헤어 장식은 로맨틱하고 우아하다.

모델 각각의 개성을 가장 중요시 여겨 모델마다 헤어나 메이크업을 다르게 하는 요즘의 트렌드는 헤어 장식도 비켜나가지 않는다. 모델마다 다른 모양, 소재의 장식을 매치함은 물론이고, 머리에 얹는 위치도 제각각이다. 이것은 현실 속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헤어밴드나 핀을 어디에, 얼마나 꽂아야 하는지에 대한 룰은 없다는 말이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화려한 헤어 장식이 무심하게 잘 어우러지도록, 지나치게 정갈하게 정돈한 머리보다는 부스스한 헤어 스타일을 연출하라는 것이다. 부피감이 꽤나 큰 헤어 장식의 특성상 힐피거, 로다테, 알렉산더 맥퀸 쇼 모두 모델들의 모발을 아주 길게 연출했다는 점도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