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인구 200만 명이 넘어가는 이 시점, 우리는 다른 나라의 음식을 제대로 알고 먹고 있는 걸까? 타드 샘플은 한국에 21년째 거주 중인 미국인이다. 한국에서 맛볼 수 있는 현지 ‘정통 음식점’을 소개하는 그의 트위터 계정은 얼마 전 1주년을 맞이했다. 그에게 넓고 다양해지는 한국의 식탁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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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설팅 회사 샘앤박의 대표 타드 샘플의 트위터 계정 ‘타드 샘플 Eats(@toddsample_eats)’의 소개글은 다음과 같다. “많은 분들이 다양한 음식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정통 외국 음식점을 소개하는 계정입니다.” 그가 말하는 정통 음식점이란 ‘오리지널’이라는 개념과 통한다. ‘현지화(Localization)’라는 말을 무기로 한국인의 입맛에 맞추지 않은, 현지 음식의 맛을 고스란히 가져온 가게를 소개하기 위해 일주일에 네다섯 번은 새로 생긴, 혹은 괜찮다는 레스토랑에 들르며 열심히 꾸려온 계정은 얼마 전 1주년이 됐다. 타드가 ‘궁극의 리스트’를 입수하는 경로는 다양하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 커뮤니티, 각국의 대사관 직원, 그리고 길에서 마주친 다른 나라 사람에게 무작정 물어보기까지! 좋다, 그렇다면 스스로 ‘푸디(열렬한 미식가)’는 아니라고 선언한 이 남자가 이토록 정통 음식점에 집착 아닌 집착을 하게 된 이유는 뭘까?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경북 안동에서 일했어요. 그 당시 한식이 아닌 음식을 파는 가게는 롯데리아뿐이었을 거예요. 피자, 햄버거, 모두 한국 스타일이었죠. 그리고 10년 전쯤부터 이태원에 다양한 외국 음식점이 생겨나기 시작했죠. 그런데 이태원의 가게들 역시 고향의 맛이라고 할 만한 곳은 드물었어요. 지금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인구가 200만명이에요. 외국에 살다 온 경험이 있거나,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한국 사람도 엄청나게 많죠. 그러다 보니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이 정통 음식점을 오픈하기도 하고, 그 맛을 알아보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늘어났고요. 유럽 여행, 혹은 일본 여행 때 먹은 그 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까지 하면 현지 맛에 대한 수요는 엄청나죠.” 이제는 많은 한국 사람이 ‘이 맛이 진짜인지, 아닌지’ 안다. 코스트코에서 사온 브런치 세트를 데워다 내놓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토르티야가 있다고 해서 멕시칸 요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거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파이가 커졌다. 심지어 꽤나 먹음직스러운 파이다.
“제 계정은 일종의 가이드예요. 이게 정통요리인지 아닌지, 정말 믿고갈 만한 레스토랑인지 아닌지 알려주는 안내판 같은 역할을 하죠. 예전에 무역 관련 일을 하며 알게 된 대사관 관계자나 다른 외국인들에게 자국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어디에 가는지 물어보고 직접 가서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눠요. 사실 한국에서 정통 음식점을 여는 분들 중에서 자본이 풍부한 사람은 드물어요. 맛, 분위기, 서비스 모두 중요하지만 레스토랑이 정착하는 데 마케팅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특히 외국인은 한국 시장에 어떻게 어필해야 하는지 잘 모르죠. 레스토랑을 오픈할 때 조언을 하거나 홍보를 맡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저 또한 정통 외국 음식점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한 사람이기 때문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죠.”
한국에 이탤리언 레스토랑은 많지만 대부분은 오일, 토마토, 크림 파스타를 선보이는 한국형 이탤리언 레스토랑이다. 이탈리아인 셰프가 요리하는 레스토랑의 파스타에는 ‘너무 짜다’는 평이 잊을 만하면 따라다닌다. 고수가 없는 태국 요리와 베트남 요리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많은 사람이 아직 고수 맛을 어려워하는 통에 아예 고수를 빼고 주는 가게도 있다. 그렇다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게 나쁜 걸까? 요리의 현지화가 이뤄진 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타코벨의 타코나, 차이니스 익스프레스의 달콤한 닭강정이 중국 요리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저는 정통 음식이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고 싶지는 않아요. 미국에도 정체 모를 외국 요리가 많이 있죠. 하지만 미국 스타일에 맞춘 중국 음식점과 멕시칸 음식점이 있는 반면, 제대로 된 정통 음식점도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진짜’를 먹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이후에 ‘짬뽕’ 같은 요리를 맛볼 수 있느냐, 아니면 후자의 경우가 압도적이냐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일단 그 나라 음식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갖고 변형을 시도하는 것과 다짜고짜 변형된 음식을 소개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거죠. 외국 여행을 하다가 된장찌개가 너무 먹고 싶어서 한국 음식을 파는 식당에 들어갔는데 현지 입맛에 맞춘다고 케첩과 피클을 넣어 끓였다면 그걸 된장찌개라고 할 수 있겠어요? 그런 이상한 일이 한국에서는 너무 당연하게 일어나고 있어요. ” 그리고 정통성에 대한 무시는 결과적으로 외식업계나 미식업계의 판을 축소한다. 식전빵을 발사믹 식초에 찍어 먹는 것은 익숙하지만 발사믹이 샴페인처럼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임을 모른다거나, 다양한 파스타 면과 치즈의 종류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할 기회가 없는 거다. 물론 모를 수 있다. 그러나 스파게티 면으로 된 파스타만 판매하는 레스토랑만 다니다 보니 파스타를 스파게티의 동의어로 여기는 이들이 많을 만큼 레스토랑에서의 외식 경험이 대체적으로 얄팍한 것은 문제가 있다. 이 치즈와 저 치즈는 다르다는 것, 스파게티 면이 아닌 다른 선택도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하는데 그것에 대해 궁금해할 틈조차 주지 않는다는 거다. 그렇다면 대체 그토록 외치는 한국인의 입맛이라는 게 뭘까? 마늘을 많이 넣으면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이 되나? 매운 걸 잘 먹는다고 하니 매우면 되는 건가?
“한국인의 입맛이라는 건 없어요.” 타드는 꽤 단호하게 말한다. “한국사람들이라고 다 김치를 좋아하나요? 전 매운 걸 잘 못 먹는 한국 사람을 많이 알아요. 흐름은 바뀌고 있어요. 왜 바토스(Vatos)나 라이너스 바비큐(Linus BBQ)가 성공을 거뒀을까요? 한국의 스타일에 맞추지 않고, 맛뿐 아니라 분위기까지, 완전히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기 때문이죠. 외국인들이 인정하고 자기 친구들을 데려오고, 함께 온 호기심 많은 한국 사람들이 여긴 좀 다르다는 걸 느끼는 거죠. 제 트위터 계정을 팔로우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국 사람들도 어떤 게 정통이고, 어떤 게 변형된 맛인지 아주 잘 알고 있어요. 저는 정통 음식점은 처음부터 불특정다수의 한국인을 타깃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간혹 레스토랑 컨설팅을 부탁받을 때도 그렇게 말해요.”
그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까닭은 한국, 적어도 서울에 사는 외국인과 해외 거주 경험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여행자의 수만 고려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사람들은 쉽게 레스토랑의 단골손님이 되지 않는다. 핫플레이스에 가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린 뒤에 다시 그곳을 재방문하는 비율이 현저히 낮다. 인구 60명당 식당 비율이 한 개에 이를 정도로 외식업체가 많은 것도 그 이유가 될 수 있지만 다시 오고 싶게 만드는 문화를 가진 식당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타드의 의견이다. “고기 굽는 냄새와 연기가 가득한 삼겹살 구이에 소주! 이건 완전히 한국 문화죠. 제가 한국을 찾은 외국인 여행자라면 이런 식당을 가보고 싶을 거예요. 이건 한국에만 있는 거니까요. 저는 외식이라는 건 영화관에 가는 것처럼 일상을 두 시간 동안 탈출하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음식부터 서비스, 공간, 음악까지, 완결된 하나의 문화를 체험하고 싶어요. 태국 레스토랑에 케이팝이 나올 필요는 없잖아요. 음악은 심지어 공짜나 다름없다고요!”

한국의 식탁이 넓어졌다
타드가 최근 가장 좋아하는 식당은 합정역 근방의 야마뜨다. 브르타뉴 출신의 프랑스 남자와 한국인 여자 부부가 함께 운영하며 브르타뉴의 정통 음식인 크레페와 갈레트를 선보이는 공간은 고향에서 가져온 할머니의 소장품과 가구로 차 있다. 가족과 고향 이야기를 손님과 나누고, 주차장에서는 브르타뉴의 전통 게임을 함께 할 수도 있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공간인 셈! 물론 정통 음식을 선보이는 레스토랑이라고 해서 꼭 현지인 셰프가 필요한 건 아니다. “꼭 현지인만 그 나라의 요리를 잘하는 건 아니에요. 한국인도 충분히 훌륭한 정통 음식점을 할 수 있어요. 저는 정말 그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최근 경리단길에서 남미식 치킨 요리를 선보인 투칸의 오너셰프와 맛있기로 정평이 난 타코를 선보인 돈 차를리의 주방을 지켰던 카를로스는 선릉역 근처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레스토랑 파이럿츠 테이블(Pirates Table)을 차렸다. 투칸의 오너셰프는 한국인이다. 역삼역 골목길에 등장한 아메리칸 비스트로 스터본(Stubbron) 역시 미국의 요리 학교에서 만난 세 명의 한국인 셰프가 차린 곳이다. 이건 꽤나 용감한 시도다. 이태원이나 연남동, 가로수길처럼 사람이 끝없이 드나드는 곳이 아닌, 오피스 타워로 가득한 공간에 본격적인 정통 음식점을 차렸다는 것 말이다. 그러나 타드가 보기에는 꽤 해볼 만한 시도다. “처음에는 위험해 보일 수 있죠. 그런데 잘만 하면 경쟁자 없이 굳건하게 자리 잡을 수 있어요. ‘동네’에서, 콘셉트가 확실한 레스토랑을 한다는 거요. 그리고 그런 식당이 처음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저도 가로수길에서 신사복 매장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데, 사업이란 어떤 날은 잘되고, 어떤 날은 안 되면 안 돼요. 계속 바빠야 해요. 계속 밀어줘야 한다고요.”
확실히 한국, 적어도 서울의 음식은 다양해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타코는 이태원에서나 찾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베트남 쌀국수 체인점은 꽤 있었지만 파테와 고수를 넣은 반미 샌드위치를 선보이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제 ‘똠얌꿍’과 ‘셰비체’가 어떤 음식인지 아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북경 오리와 사천식 훠궈를 구분해 판매한다. 중동, 아프리카, 파라과이, 러시아 음식도 원한다면 맛볼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 비율이 높은 수원과 안산의 다문화 푸드랜드에 흥미를 보이는 한국 사람도 많다. 외국인 거주자가 많은 부산, 미군 부대가 있는 대구와 군산도 앞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꽤 높은 지역이다. 어떤 레스토랑을 가야 할지 몰라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그리고 TV 프로그램에서 정보를 찾아 헤매지만 그것마저 완전히 믿지 못하는 우리가 이 다양해진 식탁에 발맞춰 변화해야 할 만한 일이 있을까?
“하루에 딱 열 판만, 피자를 굽는 가게가 있어요.< 수요미식회>에 소개된 이후, 인스타그램 계정 프로필에 아예 ‘우리는 갈릭 디핑 소스가 없습니다’라고 써놨더라고요. 갈릭 디핑 소스를 좋아하는 건 비난받을 건 아니죠. 그런데 다른 가게에 가서도 요구하는 건 예의 있는 일은 아니에요. 자부심을 갖고 자기 요리를 하는 식당에 가서 ‘피클이 왜 없죠? 다른 레스토랑에서는 다 주던데’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거죠.” 많은 훌륭한 레스토랑의 셰프들이 TV 출연을 꺼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방송에 출연하면 인증샷을 찍으려고 레스토랑을 찾는 일회성 손님이 몰려들고, 이로 인해 단골만 잃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 20년 넘게 거주한 외국인으로서 타드 샘플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정통 음식점’이라는 표현이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는, 외국 음식, 또는 외국인이라는 장벽이 없어지는 거다. 마치 관광지에 들르듯 음식을 소비하고 인증샷을 찍는 일종의 음식 체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함께 이뤄지길 원한다. “꼭 이태원에 가야 하는 게 아니라 바로 집 앞에서 제대로 된 인도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요? 그리고 얼마나 맛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