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겨울 런웨이에서 모델들의 입술을 물들인 건 짙고 어두운 레드였다. 자연스러운 메이크업만 고집하던 에디터도 이번만큼은 다크 립에 도전할 이유가 충분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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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1 나스의 어데이셔스 립스틱 모나. 4.2g 3만9천원. 2 톰 포드 뷰티의 립 컨투어 듀오 메이크 미. 2.2g 6만원. 3 샤넬의 루쥬 알뤼르 벨벳 루쥬 오다스. 3.5g 4만1천원. 4 바비 브라운의 립 칼라 번트 레드. 3.4g 3만8천원대. 5 맥의 립스틱 비바 글램 아리아나 그란데. 3g 3만원대.

이번 시즌 가을/겨울 트렌드를 미리 엿보기 위해 지난겨울, 런던 컬렉션을 찾았다. 그 어느 때보다 복고적인 색채가 강렬했던 런웨이처럼 백스테이지 역시 복고풍의 짙은 립 컬러와 스모키 아이 메이크업이 주를 이뤘다. 그중에서도 에디터의 시선이 오래 머문 곳은 짙고 어두운 색으로 물들인 모델들의 입술! 시블링 쇼 백스테이지에서 투명하고 뽀얀 피부에 입술만 체리빛 레드 컬러로 물들인 모델을 보는 순간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손에 쥔 립스틱을 빼앗아 발라보고 싶은 욕구를 참느라 힘들었다. 컬렉션에서 돌아온 뒤로 화사한 봄날과 푹푹 찌는 여름을 보내면서 다크 립에 대한 욕망도 사그라졌지만 지난 8월호에 실린 가을/겨울 트렌드 화보를 준비하면서 다시금 애정이 시작됐다. 특히 디올 쇼 런웨이에 등장한 켄달 제너를 보면서 난생처음 보랏빛 입술에 매력을 느꼈다. 특히 창백한 얼굴에, 촉촉한 보랏빛으로 입술을 물들인 모델들이 블랙 드레스를 입고 나란히 등장하는 피날레 장면은 두고 두고 떠올랐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매트한 자 줏빛 립스틱을 바른 마르니 쇼의 모델들도 프랑스 여자들처럼 시크했다.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되기 전에 나에게 어울리는 다크 립 컬러를 찾고 싶었다. 지난가을부터 줄기차게 발라온 로즈 컬러가 지겨워지던 참이기도 했다. 본격적인 쇼핑에 나서기 전에 백스테이지 컷을 찬찬히 보면서 발라보고 싶은 립 컬러를 뽑아봤다. 어두운 보랏빛과 자주색이 섞인 플럼 레드, 브라운톤이 가미된 짙은 벽돌색, 그리고 90년대 당시 톱스타였던 김 혜수와 김지호가 즐겨 바르던 진한 브라운 컬러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다크 립 체험 첫날, 블랙체리처럼 진한 보랏빛 컬러를 골랐다. 민낯 같은 창백한 얼굴에 입술만 검붉게 물들인 마르니 쇼처럼 아이 메이크업은 과감히 생략했다. 파리에 사는 ‘차가운 도시 여자’처럼 보이고 싶었지만 피부가 까무잡잡한 탓에 LA에 살고 있는 교포 같은 느낌이었다. 입술색이 워낙 강렬하다보니 어울리는 옷을 고르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블랙은 늘 옳으니까’라는 생각으로 검은색 슬리브리스 롱 드레스를 입었는데 꽤 그럴싸했다. 여느 때처럼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는데, 역시나 힐끗힐끗 쳐다보는 시선을 많이 느꼈다. 남들은 다 화사한 과즙상 메이크업을 하는 시기에 혼자 다크 립을 바르고 있으려니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다행히 주위 에디터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생각보다 부담스럽지 않다”는 평도 있었고, “코도 높아 보이고 이목구비가 또렷해 보인다”는 극찬도 들었다. 한 가지 불편한 점은 있었다. 커피 한 잔만 마셔도 립스틱이 묻어나는 탓에 수시로 거울을 보면서 수정을 해야 하니 면봉과 컨실러, 립 전용 브러시를 늘 휴대하고 다녀야 했다.
전날 여기저기 묻어나는 립스틱 때문에 고생을 한 터라 다음 날에는 매트 제형의 짙은 브릭 레드 컬러를 선택했다. 노란 기가 도는 까만 피부라 쨍쨍한 레드 립스틱과는 상극인데 이 색상은 의외로 잘 어울렸다. 매트한 제형은 지속력은 확실히 좋고 덜 묻어나지만 입술 각질이 도드라지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잠자기 전이나 메이크업을 하기 전에 입술에 립 오일을 듬뿍 발랐다. 브릭 레드 컬러는 그윽한 눈매와도 잘 어우러지기 때문에 음영 아이섀도를 바르고 골드 컬러 아이섀도를 아이홀에만 톡톡 두드려 발랐다. 립스틱을 바른 후 면봉으로 입술선을 문질러 경계를 부드럽게 퍼트렸더니 정교하게 바른 것보다 오히려 더 세련돼 보였다. 그러고 나서 입술이 돋보이도록 모발보다 한 톤 밝은 아이브로 마스카라를 숱이 많은 눈썹에 도톰하게 발랐다. 전날 바른 차가운 톤의 플럼 레드 컬러는 피부를 뽀얗고 보송보송하게 표현하는 게 어울리지만, 따뜻한 톤의 브릭 레드 컬러는 베이스를 가볍게 하고 윤기를 자연스럽게 살리는 게 오히려 더 근사해 보이는 듯하다. 화이트 셔츠에 데님 쇼츠를 입었다가, 에스닉풍의 실크 드레스로 갈아입었는데 두루 잘 어울렸다.
마지막 날을 위해 남겨놓은 것은 딥 브라운 컬러. 짙은 아치형 눈썹에 스모키 메이크업을 하고 딥 브라운 립스틱을 바른 배우 김혜수의 모습은 초등학생이던 에디터의 눈에도 섹시하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베이스 메이크업만 하고 립스틱을 먼저 발라봤는데 그 어떤 컬러보다 존재감이 컸다. 카일리 제너처럼 스모키 메이크업에 도전하려 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금세 포기하고 디올 쇼에서처럼 위아래 속눈썹을 인형처럼 길고 풍성하게 표현하는 대신 아이브로 펜슬로 눈썹을 선명하게 그렸다. 도톰하고 섹시한 입술로 표현하고 싶어 립브러시를 이용해 원래 입술선보다 약간 바깥쪽에 선을 그리고 립스틱을 꽉 채워 발랐다. 그동안 바른 컬러 중 의외로 가장 잘 어울려서 깜짝 놀랐다. 카일리 제너처럼 태닝한 듯 까무잡잡한 피부라면 용기 내서 시도해봐도 좋겠다.
지난 일주일, 다크 립을 체험하는 동안 평소보다 거울도 자주 보고 수정 메이크업도 여러 번 해야 했지만, 다크 립이 주는 해방감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여자의 얼굴에서 입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 때쯤에는 입술을 검붉게 물들이는 메이크업에 과감히 도전해보길.

가을/겨울 백스테이지에서 찾은 다크 립 교본
어떤 색의 다크 립을 선택할지, 다크 립과 어울리는 메이크업이 궁금하다면 가을/겨울 백스테이지 룩을 참고하길.

디올

고혹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플럼 레드 립. 디올.

 

마르니.

도도하고 세련된 다크 브라운 립. 마르니.

여성스럽고 새침한 브릭 레드 립. 마리 카트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