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 회식 자리, 지하철, 그리고 어쩌면 남자친구까지. 각종 성희롱과 성범죄에 노출될 확률은 무궁무진하다. SNS의 영향력이 확산되며 내 사진이 어딘가에서 떠돌지도 모른다는 공포심도 커졌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단톡방_최종

“정말 내 머리나 목덜미를 만지고 엉덩이를 툭 치고 지나간 상사는 아무 의도가 없었는데, 내가 예민해서 몇 년이나 공들여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존경하던 직장 선배들이 일일 연애를 하자며 심각한 수위의 스킨십을 시도해오는 것에 경악하고, 이후 그들과 만나지 않게 된 내가 예민한 사람인 건지 혼란스러웠다”. <예민해도 괜찮아>의 저자 이은의 변호사가 저서에 털어놓은 경험담이다. 졸업 후 ‘삼성맨’이 되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한 그는 상사의 성희롱 문제로 4년을 싸웠고 결국 삼성을 이겼다. 그리고 지금은 변호사가 되어 비슷한 처지에 놓인 수많은 여성의 조력자로 활약하는 중이다. 이은의 변호사 같은 사람도 확신이 흔들렸을 정도로 성희롱은 미묘한 문제다. 그의 상사는 여직원 다수를 습관적으로 성희롱했다. 그런데도 무려 4년이 걸렸다. 이은의 변호사가 그랬듯 처음에는 확신을 갖고 싸움을 시작하더라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내가 과민반응하는 것은 아닌지, 나도 잘못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끝없이 의심하게 된다. 예민한 사람, 혹은 ‘꽃뱀’이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정말로 그렇게 예민한 피해자가 많을까? 아니. 둔감한 것은 우리 사회이다.

어디에나 있다
박유천의 이름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룸카페의 화장실에서 일어난 성폭행. 사건을 알린 첫 번째 여성은 곧 고소를 취하했지만 세 명의 또 다른 여성이 같은 내용으로 그를 고소했다. 실제 피해자는 몇 명인지, 신고자들이 그안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무혐의 처리된 지금,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여성이 팬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이돌 그룹 출신의 연예인인 박유천의 성매매업소 출입이 ‘상습적이었다’ 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사건을 둘러싸고 수많은 반응과 의견이 올라왔다.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들이 성매매업 종사자라는 점에서 그들의 주장을 믿지 않는 이들도 많았고, 아니나 다를까 첫 번째 고소인이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금세 ‘꽃뱀’으로 여론이 몰렸다. 잘생긴 남자 연예인과 관계를 맺었으니 손해 볼 건 없지 않냐는 시선, 박유천이 공익 근무 중에 룸카페를 드나든 것을 괘씸하게 보는 시선도 있었다. 업소에서 벌어진 일이라도 돈을 내지 않고 강제로 관계를 맺었다면 성폭행이 될 수 있다는 점, 무엇보다 룸카페 출입 자체가 불법이라는 당연한 사실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틈도 없다. 이미 수많은 말이 오간 이 사건에 대해 굳이 또 말을 얹은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남성의 ‘성구매’가 얼마나 일반적인지, 사회가 남성의 ‘성욕 배설’에 대해 얼마나 관대한지 알려주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고대단톡방’ 사건이다. 지난 6월 13일 고려대학교에 게시된 대자보를 게시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고대 남학생 여덟 명이 자기들의 단톡방에서 여자 동기, 선배, 새내기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언어폭력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내용은 끔찍하다. ‘새따(새내기 따먹기)는 해야 하는데’ , ‘○○○은 먹혔잖아’, ‘○○(술집) 가서 존나 먹이고 자취방 데려와,’ ‘○ ○여대 축제 가자. 다 따먹자’ 등. 이 카톡 내용은 같은 창에 있던 남학생에 의해 세상에 공개됐다. 한 달 뒤인 7월 10일에는 서울대학교 단톡방 사건이 터졌다. 같은 반 동기를 몰래 촬영한 사진을 올린 뒤 ‘박고 싶어서’라고 쓰기도 했고, 초등학교 5학년생 과외 이야기를 하면서 ‘로린이,’ ‘고딩이면 좋은데’라고 하기도 했다. 대화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은 성적 대상으로 취급됐다. 피해자 중 한 명은<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여자라는 존재 자체가 잘못인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같은 학교에 들어와 함께 공부하는 존재인데 다른 성별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희롱의 대상이 되었다”며 대화창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일거수일투족이 조롱과 성희롱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그러나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회사 남직원들끼리의 단톡방, 또는 술자리에서 오가는 여직원 품평, 친구들과의 단체창에서 자신의 성경험을 과장해서 말하며 상대 여성을 도구 취급하는 것 역시 흔하다. 그러나 이런 일에 문제 의식을 느끼는 남자는 드물다. ‘남자들끼리 그냥 센 척하는 것이다’, ‘원래 과장해서 말하는 게 남자들의 화법이다’ …. 그러나 그들도 이 사실이 외부로 유출되면 안 된다는 사실 정도는 안다. 실제로 고대 단톡방 참가자들의 경우에도 주기적으로 대화창을 새로 만들었고, 서울대 단톡방 참가자들도 ‘이 대화가 노출되면 큰일’이라는 취지의 대화를 나눴다. 회사와 단체에서 일어나는 성희롱만 문제인 것이 아니다. 최근에 폐쇄된 소라넷과 유사 사이트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몰카’와 의도적인 강간, 일방적인 성관계 영상 유출 등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터넷에 내 정보가 돌아다닐 확률도 있다. 성에 대한 의식 수준은 한없이 낮고, 피해자를 양산하는 창구는 끝없이 확대되는 사회. 대표적인 피해 사례와 이에 대한 대처법을 모았다.

Q 회사 남직원의 단톡방, 혹은 자기들끼리의 잡담 시간에 나를 대상으로 한 수위 높은 성희롱 발언이 오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회사에서 벌어진 언어 폭력은 직장 내 성희롱 범위에 든다. 그러나 물리적인 성추행이나 성폭행과 달리 형사처벌은 불가능하다. 다만 직장내 성희롱 예방 제8조의 2에 따르면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을 위한 교육 및 근로자가 안전한 근로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위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 그러니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인사팀에 항의하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 차원의 교육 실시 및 부서 이동, 사과문 게재 등 적절한 후속 조치가 따르지 않는다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해야 한다. 이 경우 손해배상금 또는 특별인권교육 수강을 권고한다. 손해배상금액은 사업주와 가해자들의 공동 책임으로 수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5백만원에서 1천만원 사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업주에게까지 책임을 묻기 힘든 구조가 대부분이다. 성희롱 피해자의 대부분이 퇴사하는 이유도 이 때문인데 이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위자료)을 남자직원과 회사 모두에 청구할 수 있다.

Q 지속적인 성희롱과 추행을 당할 경우 증거를 모으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증거를 모으는 일은 어렵다. 원칙적으로는 피해자의 증언도 증거지만 이를 보강해줄 주변인의 증언이나 증거가 없다면 처벌의 근거가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단체 채팅방을 통한 성희롱의 경우 화면을 캡처할 수 있다면 가장 좋지만 내가 속한 채팅방이 아닌 경우 불가능하다. 최근 카카오톡은 대화내용 보관기간이 3일로 줄어들면서 압수수색과 조회 명령 신청을 통한 조회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따라서 상대방이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경계하기 전에 자연스럽게 증거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며, 통화나 대화 중에 상황을 유도하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통화 내용이나 대화 내용을 녹음하는 것은 필수다. 최근 초소형 녹음기의 성능은 놀라울 정도니까! 피해자가 직접 대화에 참여한 녹음은 대화 당사자들 몰래 한 것이라도 위법 수집 증거에 해당되지 않는다.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Q 애인과의 관계 중에 영상 또는 사진을 촬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유포될까 염려스럽다. 애인의 핸드폰 또는 컴퓨터에 있는 내 영상과 사진을 지울 수 있을까?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들이 합의해서 촬영한 사진을 강제로 지울 방법은 없다. 휴대폰 등 개인 물건의 기록을 지우기 위해서는 압수 수색을 위한 영장이 필요한데 영장을 발부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상대방이 소장하고 있는 영상 또는 사진을 빌미로 협박을 가한다면 협박죄, 돈을 요구하면서 협박하면 공갈이나 사기(사기공갈)죄로 처벌 및 압수 수색이 가능하다. 협박죄보다는 사기공갈죄가 죄질이 무겁다. 최근 늘어난 범죄 중 하나가 헤어진 여자친구의 은밀한 사진을 보복 성으로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이다. 전 여자친구의 음부가 노출된 사진을 실명과 학교, 학번을 파일명으로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이가 징역 1년을 선고받은 판례도 있다. 이처럼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관련 판례를 보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물론 피해자의 일상이 망가지는 것에 비하면 흡족한 처벌 수위는 아니다. 그러니 가장 좋은 것은 찍지 않는 것이다. 자기 핸드폰으로 촬영했다고 해서 안심하고 상대에게 파일을 전송하는 것도 금물이다.

Q 성관계 영상은 아니지만 누군가 몰래 찍은 내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것 을 알게 됐다. 법적으로 어떤 제재를 가할 수 있을까?
치마 속을 촬영한 영상 등, 몰카에 관한 판례는 소라넷과 관련된 건만으로도 차고 넘친다.이는 명백한 범죄이며 형사처벌이 가능한 사안이다. 심지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성폭법,) 배포를 통한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 유포, )피해자가 미성년자일 경우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아청법)까지 여러 가지 법에 저촉된다. 특별법이고 판례가 많기 때문에 최근에는 경찰도 비교적 협조적이다. 수사는 사이버수사대가 IP 추적을 통해 검거하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다만 걸어가는 모습 같이 음란한 모습이 아닌 일반적인 모습일 경우에는 초상권을 피보전권리로 하여 게재를 금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글을 내리지 않으면 게시한 당사자는 1일마다 간접강제금(벌금)을 지급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초상권을 보장 받는다. 민사상으로도 책임을 물을 수 있으므로 위자료를 청구할 수도 있다. 비록 액수는 크지 않겠지만.

Q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한 가해자의 신상명세를 법적 절차 없이 개인적으로 모은 자료와 경험을 토대로 SNS에 공개했다.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를 당할 수 있을까?
명예훼손이 성립한다. 형법 제307조(명예훼손)에 따르면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년2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특히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받을 수 있다. ‘이 사람은 잘못했으니 욕을 먹어도 된다’는 것은 한국의 헌법 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명예훼손의 성립 요건 중 하나는 공공연하게 퍼뜨릴 가능성을 의미하는 ‘공연성’이다.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회사 대자보, SNS 등 공연성이 있다면 당연히 명예훼손이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를 당한다고 해도 허위사실 유포가 아닌 이상,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한) 피해자가 무거운 처벌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기본적으로 명예훼손은 당사자가 고소를 취하하면 처벌이 불가능한 ‘반의사불벌죄’에 속하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고 해도, 신상을 공개한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해 형사처벌로 갈 경우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합의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합의하는 순간 반의사불벌죄에 의해 명예훼손은 성립하지 않는다. 특히 성추행과 성폭행 피해자는 스스로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 역시 감수하고 사실을 밝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역고소를 당하더라도 벌금이 1백만원, 2백만원 선에서 정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벌금을 감수하면서까지 사실을 공개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단, 네이트판 같은 인터넷 게시판에 특정인을 지정하지 않고 상황을 묘사해 사건을 폭로하는 경우는 판사의 재량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