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맨부커 상 수상이라는 엄청난 성취를 이룬 가운데, 우리가 사랑해야 할 여성 작가들의 신간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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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장유정의 신작 <종의 기원>이 있다.  <28> 이후 3년 만에 선보인 이야기에서도 인간의 ‘악’을 탐구하려는 시도는 이어진다. 두 형제가 세례를 받는 장면부터 시작하는 <종의 기원>은 그의 전작과 비교했을 때 묘사나 전개 자체가 읽기 괴로운 책은 아니다. 가족끼리 여행을 떠나는 중산층의 가정, 강아지를 키우는 이웃이 있는 아파트처럼 익숙한 공간에서 다만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 뿐. 작가는 작가의 글에서 젊은 시절 그에게 영향을 끼친 사건을 언급한다. 미국 유학을 갔다가 도박 빚을 지고 한국에  돌아온 아들이 ‘너 같은 놈은 어쩔 수 없다’는 아버지의 말에 부모를 살해한 사건이다. 그는 칼로 아버지를 50번, 어머니는 40여 번을 찔렀다. 작가는 말한다. 대체 무엇이 그를 그렇게 몰고 갔는지 늘 궁금했다고. <종의 기원>에서 주인공의 몸에 착착 감겨가는 살의가 어떻게 누적되는지, 작가는 철저하게 묘사한다. 시점은 다르지만 아들의 섬뜩한 면을 알아채고, 지켜보는 어머니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라이오넬 슈라이버 원작의 <케빈에 대하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퓰리처상 수상작인 <올리브 키터리지>로 잘 알려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에이미와 이저벨> 역시 이야기의 중심에 가족이 있다. 아직 삼십대 초반인 엄마 이저벨과 열여섯 살인 딸 에이미. 애정보다는 ‘모녀’라는 사회적 관계명으로만 우선 존재하는 것 같은 이 둘의 관계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서로에 대한 기대나 바람은 늘 미묘하게 어긋난다. 그러나 에이미가 유부남 교사와 사랑에 빠지면서 두 사람 사이에 구체적인 갈등이 드러난다. 작가는 모녀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감정과 거리감에 대해 느긋하고 잔잔하게, 그러나 꾸준히 써 내려간다. 1998년에 출간된 작가의 데뷔작으로 국내에서는 <타인의 여름>으로 2000년에 출간된 바 있다.

박솔뫼도 네 번째 장편소설 <머리부터 천천히>를 선보였다. 시와 산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문체는 그대로다. 1985년생인 작가의 이야기에는 현대 한국에 사는 젊은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한국의 4인 가족 서사에 철저히 벗어난 인물들은 어느 지역에서, 어떤 식으로 살아가는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힘들다. ‘백 행을 쓰고 싶다’는 문장에 매달려 있을 뿐, 놀이공원, 인신매매의 현장, 작은 방 위를 부표처럼 떠돌았던 전작 <백 행을 쓰고 싶다>의 등장인물들처럼 <머리부터 천천히>의 인물들도 발을 딛지 못하고 점처럼 떠돈다. 글을 쓰는 나,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병준, 병준의 옛 애인인 우경. 총 여덟 부분으로 나뉜 소설은 여전히 독특한 숨 고르기를 하며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당신의 호흡에 맞춰 읽고 싶은 이야기부터 먼저 집어들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