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직업이 된 사람들. 많은 이들에게 일상의 탈출인 여행이 일상이 된 사람들. 그들은 어떻게 여행작가가 되었을까? 궁금증을 안고 4인의 여행작가를 만났다. 여행의 방식도 풍경도 조금씩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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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연 ‘버스를 타고 떠나는 여행’
직장인에서 전업 여행작가로! 안혜연은 여행의 감성과 독자를 위한 실용성. 그 둘 사이에서 균형 감각을 잡을 줄 안다. 첫 번째 여행 서적인 <버스 타고 제주 여행>은 제주를 여행하는 게 험난하기만 했던 ‘뚜벅이 여행자’를 위한 획기적인 책이었다. 조금 더 범위를 넓힌 <버스 타고 주말 여행> 역시 여행 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기획의 힘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게 여행을 즐기는 그녀를 만났다.

첫 번째 책인 <그 카페에 가다>는 여행 서적이 아닌 카페 탐방기였다.
직장에 다니면서 썼던 책인데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책을 쓰기로 결심한 계기는 뭐였나?
카페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블로그에 카페 탐방기를 올리던 중 교보문고 홈페이지에 연재 제안을 받았다. 그게 자연스레 출간으로 이어진 거다. ‘출간’이라는 첫 장벽을 넘은 셈이다.

<버스 타고 제주 여행>은 재미있는 기획이었다. 어떻게 아이디어가 탄생했나?
출판사에서 던진 제안을 그야말로 ‘넙죽’ 받아 먹었다. 대중교통으로 제주를 여행하는 게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핑계 삼아 제주에서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매력적이었다. 게스트하우스의 일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으며 살펴보니까 가능성이 보였다. 제주에도 학생, 노인이 있고,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버스로 이동할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버스 시간표를 면밀하게 정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제주나 지방의 경우에 발품을 팔 수밖에 없다. 배차 간격이 길면 지도 앱도 의미가 없고, 시골은 같은 노선도 시간대에 따라서 조금씩 경유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숙소 가까운 곳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체크하며 다녔다. 스스로 잘하고 있는 건지, 자신감이 떨어질 때가 있었다.

버스 여행 이후에는 <이지 시티 트래블 방콕>을 펴냈고, 지금은 파리 편을 준비 중이다. 여행작가로서 여행지를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여행작가를 전업으로 삼은 이상 독자의 수요를 생각하게 된다. 책이 나오지 않은 여행지를 펴내면 잘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시장성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고깃집이 아무리 많아도 잘되는 집은 계속 나오지 않나. 시장성이 있는 지역의 여행책을 잘 만들고 싶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여행하는 지금, 정보성 글을 쓰는 여행작가로서 위협을 느끼지는 않나?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은 최신 자료를 검색하기에는 좋지만 책처럼 한눈에 볼 수 있는 통합적인 자료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중요한 내용이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여행 준비에 드는 시간도 줄여준다. 무엇보다 낯선 도시에 관련 도서 하나만 들고 가도 심적인 안정감이 제공되지 않나?

책으로 펴낸 여행지와 좋아하는 여행지가 다른가?
가장 좋아하고 자주 가는 여행지는 인도다. 지금도 인도가 위험한 여행지로만 부각되는 현실이 속상하고 아쉽다.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움이 훨씬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모로코를 중심으로 아프리카도 장기간 여행했다.

여행이 당신에게 미친 가장 긍정적인 영향은 무엇인가?
한국에만 있으면 사는 방식이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남들처럼 못하면 불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 사람들이 사는 방법이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또 어디를 가든, 뭘 먹든 여행에서는 내가 나를 온전히 책임져야 하지 않나. 이런 것들이 자신감을 높여준다. ‘나 혼자 다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 말이다.

여행지에서 로맨스를 기대하는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하. 여행지 로맨스를 경험한 적 있다. 인도에서 만난 사람과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4년간 만났다. 인연을 오래 이어가고 싶다면 여행지의 기분에 너무 취하지 말고 일상으로 돌아와 관계를 정립하는 편이 좋다는 것이 나의 조언이다. 여행지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는 것도 잊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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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그리는 여행자’
일러스트레이터 이다는 그림을 그리며 순간을 기록한다. 동네를 걸으며 마주한 소소한 풍경을 그림으로 기억한 <이다의 작게 걷기>와 <끄적끄적 길드로잉>이 일상적인 여행이었다면, 발리 여행기를 기록한 노트를 그대로 책으로 옮긴 <발리>는 그녀가 남긴 본격적인 첫 여행기다. 다양한 여행의 방법을 권유하는 지금, 얼마 전 <내 손으로 교토+오사카>를 펴낸 이다에게 그림으로 여행을 기억하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여행지에서 사진 대신 그림 그리기를 택한 이유는 뭔가? 본직업이 일러스트레이터이기 때문일까?
원래는 사진도 정말 열심히 찍었다. 찍어둔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기억 속 풍경과 다르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더라. 왜곡된 풍경을 그리는 것 같아 회의감이 들었다. 또 사진 촬영을 하다 보면 빨리 찍고 다른 걸 또 촬영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긴다. 하지만 그림은 일단 그리기로 하면 5분이든, 10분이든 한자리에 머물러야 하다 보니 풍경을 공들여서 보게 되는 장점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며 여행의 템포 자체가 느려졌다.

아무래도 사진에 비하면 기록으로 남는 것들이 적어질 수밖에 없는데 아쉽지는 않았나?
여행을 다녀와서 돌이켜보니 그런 점이 아쉽지는 않았다. 많은 걸 봐도 서두르다 보면 실제로 기억나는 것은 일부이지 않나. 하나를 보더라도 깊게 보니 여행의 기억 자체도 좀 더 여유로워졌다.

여행 노트가 한 권의 책으로 통째로 출간된 것은 <발리>가 처음이다.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나?
일본의 작가인 세노 갓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을 때에도 그가 남긴 세계 여행 기록을 보며 이런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세노 갓파의 인도 스케치 여행>은 국내에도 출간됐다. 권하고 싶은 책이다.

좋아하지 않던 여행을 좋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좋아하지 않았다기보다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책도 있고 영상도 있는데 왜 굳이?’ 싶었던 게 터키 여행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여행 초보답게 부모님을 따라 간 패키지 여행이었는데도 정말 좋았다. 다녀와서 터키에 다시 가고 싶어 터키어를 6개월 동안 공부하고 ‘여행병’에 시달릴 정도였다. 여행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해 그린 것이 <이다의 작게 걷기>에 실린 내용이다.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던 걸까?
터키는 여행의 매력에 빠지기에 좋은 여행지다. 볼 거리도 많고 음식도 맛있고 사람들이 따뜻하다. 무엇보다도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을 알게 됐다. 난 내가 낯을 많이 가리고 어두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여행 중에는 낯선 사람하고 말도 잘하고 하루 종일 웃더라. 그래서 이걸 ‘제 5인격’이라고 부른다.

여행을 통해서 개인적인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봐도 될까?
여행을 떠나면 기존의 나를 아는 사람은 없고, 보고 느낄 것은 많으니 모든 세포가 생동감 있게 깨어 있는 느낌이다. 그런 여행지에서의 나 자신의 변화에 사로잡힌 면도 있다. 그리고 어떤 부분은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영향을 미친다. 작품도 많이 밝아진 편이라, 과거의 어두운 작품에 공감했던 독자들은 섭섭해하기도 한다.

본 것을 다 그림으로 담지 못해서 아쉬운 경우도 있나?
항상 그렇다. 특히 교토에서 그걸 많이 느꼈다. 보이는 풍경은 너무 아름다운데 내 손이 그걸 다 담지 못한다. 그래서 그림으로 남기는 것 외에도 여행의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다. 한 장소에서 다음 장소에 도착하는 과정 말이다. 그리고 여행에서 인상 깊은 순간은 대부분 그 과정에 서 생겨난다. 가는 길에서 발견한 풍경, 잘못 든 길 같은.

그림을 그리는 여행의 좋은 점을 또 한 가지 말한다면?
사진 찍히는 것을 경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림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점. 모두와 금방 친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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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중훈 ‘먹는 남자’
프리랜스 여행작가로 활약한 지 15년이 훌쩍 넘는 그가 가장 행복한 여행 방법을 찾은 것은 몇 년 전의 일이다. 그것은 바로 먹는 여행! 원래부터 먹는 걸 좋아했지만 음식을 여행의 주인공으로 두니 또 다른 게 보였다. 라디오와 팟캐스트에 출연하며 다양한 여행의 맛을 전파하는 그는 최근 박찬일 셰프와 한국의 오래된 식당을 찾아 다니는 <백년식당> 프로젝트에 여념이 없다. 맛을 찾아 발길을 옮기는 그의 여행 방법에 대하여.

원래부터 여행을 좋아했나?
평범한 정도였다.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곧바로 그만 두고 <여행신문>에서 일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많이 다니게 됐다. 오래 일을 하다 보면 여행의 설렘, 즐거움보다는 직업으로서의 책임감과 의무감이 커지기도 한다.

어떤 의무감을 느끼나?
정보의 정확성은 기본이다. 사진 역시 결과적으로 잘 나와야 하고, 글 솜씨 역시 어느 수준 이상 되어야 한다. 내 이름을 걸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는 스트레스가 있다. 거의 20년 가까이 여행을 하며 지내고 있는데 순수한 여행을 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행여 떠나더라도 콘텐츠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가 없다! 지난 5월 다녀온 제주 여행이 작업용 카메라를 안 가지고 떠난 첫 번째 여행이었다.

부담을 가지면서도 여행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연히 그럼에도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면서 많은 편견이 깨졌다. 인도는 호불호가 갈리는 여행지지만 남서부는 훌륭한 리조트가 있는 완전한 휴양지다. 정의할 수 없다. 사람들이 대구 음식이 맛없다, 막창 빼고 뭐 있냐고 하는데 <백년식당> 작업을 하면서 찾은 상주식당은 평생 먹어본 추어탕 중 최고였다. 여행을 다닐수록 많은 기준이 깨진다.

어느 시점부터 ‘먹는 여행자’로 활약하게 됐다. 계기가 있었나?
미식가라는 표현보다는 대식가, 과식가라고 생각한다. 어떤 맛에도 거부감이 없다. 그동안 여행을 다닐 때도 먹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계기가 된 건 2012년, <성시경의 음악도시>에서 음식 코너를 맡게 된 이후다. 워낙 인기 프로그램이다 보니 내 말을 듣고 실제로 그 식당에 가보는 사람이 많은 거다! 대충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또 그 과정에서 재미를 느꼈나 보다.
그렇다. 공부하듯 체계적으로 먹다 보니 내가 어떤 음식,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부터 서울 냉면집 계보는 어떻게 되는지 등 취향과 상식의 폭이 넓어졌다. 방송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도 새로운 재미를 찾은 거
다. 긍정적인 일이다.

<백년식당>은 박찬일 셰프가 글을 쓰고 당신이 사진을 찍었다. 팟캐스트 <요리사와 서재>에도 함께 출연했는데 셰프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15년 가까이 알고 지낸 사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책을 내야겠다는 의지가 별로 없었다. 이미 여행서가 너무 많고, 어떤 주제를 잡아야 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한국의 오래된 식당을 취재한다는 <백년식당>은 아이템 자체가 워낙 좋았다. 게다가 박찬일 선배가 한다고 하니 사진가로 참여하게 된 거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2권은 식당 선정 과정부터 참여하고 있다. 식당뿐 아니라 기사식당도 넣고, 한국 요리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릇 회사, 조미료 회사, 정육점 등도 다룰 예정이다.

맛있는 식당, 100년 식당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오래되어야 할 뿐 아니라 실제로 맛있어야 한다. 직원들의 근속연수가 긴 것도 판단 요소다. 음식맛이 제대로 유지된다는 증거일 뿐 아니라 식당이라는 작은 회사를 잘 운영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래옥에는 50년 넘게 근무한 분이 있다.

여행 관련된 질문뿐 아니라 식당 추천 질문도 엄청나게 받을 것 같다.
정말 많이 받고, 그럴 때에는 진심으로 추천해준다. 보석 같은 집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있고, 또 한번 그렇게 인연을 맺으면 그들이 내 정보원이 되어주기도 한다.

개인적인 여행서는 아직 펴내지 않았다. 어떤 책을 쓰고 싶은가?
늘 고민이다. 우선 사표를 던지고 무작정 떠나라거나 떠나지 않으면 유죄라며 여행을 부추기는 에세이에는 거부감이 있다. 현실을 무시하고 여행에 치중하는 것은 여행이 직업인 사람이 하면 된다. 오히려 그런 표현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소외시키지 않나? 첫눈에 여행지와 사랑에 빠지고, 영원히 머무르고 싶은 경우가 몇 번이나 있을까? 자기의 경험에 도취해서 감상을 과장하거나, 왜곡된 정보를 싣는 경우도 많다.

여행작가로서 당신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성실하고 객관적인 것? 성실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정보를 정확하게 전하려고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객관적일 수는 없다. 파인 다이닝도 좋아하지만 실제로 추천하는 가게의 7 0~80%는 낡고, 메뉴 가짓수가 많지 않고, 어르신들이 하는 곳이다. 이미 취향이 반영된 거다.

여행작가라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여행을 떠났지만 여행자가 아니라 이곳의 풍경에 내가 녹아들었다는 생각이 들 때, 그때가 행복하다. 동네 할아버지들이 나무아래 누워 있는 모습을 보는 것, 또는 호숫가에서 멍하니 앉아 있을 때면 풍경의 안쪽에 초대받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여행의 감성을 잊지 않으면서 결과물은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것을 지향한다.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살고 싶은 여행지를 만난 적이 있나?
이제껏 7~8백 군데의 도시를 다녔다. ‘언젠가 다시 와야지’라는 생각은 해도 ‘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유일하게 살고 싶다고 느낀 곳은 뻔하게도 제주다. 나까지 제주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지만 아무 생각 없이 있기에 제주만 한 곳이 없다. 음식도 잘 맞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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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엄마와 함께 떠난 500일’
태원준의 첫 번째 여행책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에 함께 붙어 나온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 엄마. 미친 척 300일간 세계를 누비다’. 환갑인 엄마와 다 큰 아들이 함께 떠난 보기 드문 여행은 궁금증을 자아내며 단숨에 여행 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응원에 힘입은 모자는 얼마 전에는 라틴아메리카까지 섭렵하며 전 세계에 발도장을 찍었다. 이 드라마틱한 여행들 사이 태원준은 방송과 여행업계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가 됐다. 엄마와의 세계 여행을 마친 지금, 그는 어떤 여행을 꿈꾸고 있을까?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왜 굳이 어머니와 세계 여행을 떠났는지가 가장 궁금할 거다. 이유를 또 물어봐도 될까?
2012년, 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연이어 세상을 떠나셨다. 나와 누나도 힘들었지만 남편과 엄마를 차례로 잃은 엄마는 더 큰 충격을 받으셨다. ‘엄마가 웃었으면 좋겠다’, 그게 여행을 기획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당신은 원래 여행을 좋아했지만 어머니는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다. 어떻게 아들의 계획에 동참하게 됐나?
거절할 수 없도록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면서 강경하게 이야기했다. 원래 다정한 아들인 편이었고, 어릴 때부터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래서 엄마를 모시고 내가 다니던 곳을 다니면 된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여행이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출발 전에는 상상도 못했다! 엄마가 힘들어 한다면 언제든지 돌아오려고 했다.

당신의 여행기에서 가장 흐뭇한 부분은 어머니가 여행지의 풍경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이다.
처음에는 정말 순탄치 않았다. 금전적인 부담 때문에 추운 겨울, 첫 여행지인 중국에서 장기간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 힘들어 하시는 걸 보고 괜히 떠나왔나 후회도 했다. 엄마가 곧 사람들과 섞여 춤을 추고, 낯선 도시에서 열리는 만두 빚기대회에 나갈 정도로 빠르게 여행지에 스며들 줄은 상상도 못했다. 리장에서 “내일이 너무 기대된다”던 엄마의 말을 들었을 때의 뿌듯함을 잊을 수 없다. 엄마가 즐기기 시작하면서 내 여행도 덩달아 신이 났다. 엄마의 하루가 매일 기대된다면, 그럼 그때까지는 계속 여행을 하자고 생각했다.

여행지에서도 눈에 띄는 조합이었을 것 같다. 맞다.
호스텔의 젊은 여행자들이 우리 모자를 신기해했다. 특히 엄마가 인기가 많았다. 엄마는 수줍은 성격이라 지금도 한국에서는 인터뷰는 절대 안 하시는데 외국에서는 주목받는 모습을 즐기더라. 여행은 사람의 마음을 활짝 열게 한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여행기가 책으로 묶여 나오는 데 블로그의 역할이 컸다. 블로그에 여행기를 처음 쓸 때, 출판을 염두에 두었나?
결과적으로는 블로그가 ‘신의 한 수’이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우리 여행기에 관심을 가져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누나를 비롯한 주변 분들한테 ‘우리 잘 다니고 있어요’라며 안부를 전하기 위해서 쓴 글을 꼼꼼한 성격 때문에 매일매일 업데이트하다 보니 팬들이 생겼다. 영상 쪽에서 일했기에 사진도 곧잘 찍었고.

블로그 팬들의 응원이 여행을 계속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나?
여행이 길어지면서 당연히 고민도 많았다. ‘이제 돌아가면 뭐 하지’부터 ‘사람들이 나를 마마보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까지. 그런데 낯선 사람들의 응원을 보면서 이게 나만의 여행이 아니구나, 그리고 이 여행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에 대해 자신감도 생겼다. 책이 잘된 것도 이때부터 응원해준 분들 덕분이다. 정말로 블로그 팬들은 우리 여행의 일부였다.

세계를 여행한 것보다도 ‘엄마를 여행했다’는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 떠난 300일의 유라시아 여행, 그리고 200일의 라틴아메리카 여행까지. 500일을 엄마와 함께 여행했으니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눴겠나? 엄마라는 넓고 방대한 우주를 자연스레 알게 된 기분이다. 금기시됐던 아버지와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레 나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님과 여행을 떠나는 걸 여전히 부담스러워 한다. ‘효도 여행’이라는 표현도 따로 있을 정도다.
독자들도 내 책을 읽으면서 가족 생각이 많이 난다고 이야기한다. 갑자기 인위적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거다. 어버이날이라고 해서 ‘사랑한다’는 말이 갑자기 나오지 않는 것처럼. 다만 여행은 사람을 들뜨게 한다. 다정한 말이나 쑥스러웠던 말도 조금 더 쉽게 표현할 수 있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80일간의 세계일주> 등 TV 방송에도 출연했고, 다양한 강연도 하고 있다. 여행작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예전 책이 잘된 것은 99.9% 엄마 덕이다. 이거 겸손이 아니다. 나 혼자 세계 여행을 했다면 사람들이 이렇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거다. 엄마와의 여행을 멈췄을 때, 내가 어떤 책을 써야 독자들이 실망하지 않을지 부담은 있지만 계속 여행작가로서 살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