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여백 위에 수묵을 들이고  붉은 꽃을 머금는다.담채화처럼 고운 여인의 아름다움.

 

붉은 입술은  미색의 정수다.

붉은 입술은 미색의 정수다.

고운 여인의 발그레한 뺨과 연보랏빛 풍류에 취했다.

고운 여인의 발그레한 뺨과 연보랏빛 풍류에 취했다.

수묵은 품위가 있으되 고고 함을 곁에 머물게 한다.

수묵은 품위가 있으되 고고 함을 곁에 머물게 한다.

고원혜

고원혜는 메이크업에 입문한 과정이 예사롭지 않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는 것을 반대한 부모님께 순응하며 결혼을 하고 출산을 했지만, 메이크업이 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집안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며 당시 라미 메이크업 아카데미에 다니기 시작한 그녀는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1990년도 월간 <멋>에서 잡지 모델의 메이크업을 시작했다. 메이크업에 대한 열망은 그녀를 홀로 LA까지 날아가게 했다. 조 블래스코 메이크업 스쿨을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온 고원혜는 1999년부터 잡지와 광고 작업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라네즈 광고 속 이나영의 모든 메이크업과 헤라 광고의 이혜상의든 모메이크업을 히트시키며 일약 스타 아티스트로 도약했다. 2001년에 아모레퍼시픽 자문위원을 맡았고 아이오페와 함께 제품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국내 메이크업 아티스트로는 최초로 프랑스 패션 매거진인 <Citizen K>의 초청으로 LA로 건너가 당시 세계적인 톱 모델이었던 신디 크로포드의 뷰티 화보에서 메이크업을 담당하기도 했다.
2000년대는 한국에서 패션산업이 도약하는 시기였다. ‘내추럴 룩’부터 아방가르드 룩까지 패션지에서는 밤낮으로 그녀를 찾았다. 파우더를 사용하지 않는 메이크업을 시작한 것도 고원혜였다. 파우더가 남기는 전형적인 보송보송함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 메이크업은 오랜 시간 함께해온 배우 이나영, 배두나, 공효진의 모든 메이크업에서 빛을 발했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 포스터의 이영애, 뮤직비디오 <유고걸>의 이효리 메이크업은 고원혜만의 창의력이 빛났던 작업들. 사실 고원혜의 메이크업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이다. 그녀 스스로도 10년, 20년이 지나서 봤을 때도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고 무난할 정도의 메이크업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컬러가 가득한 작업에서도 그녀는 컬러의 오묘한 어울림을 발현하고야 만다. 일이 무척 재미있다고 고백하는 그녀는, 아직도 즐거워서 메이크업을 한다.

당신이 뮤즈로 선택한 배두나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일단 한 군데도 성형하지 않은 그 얼굴이 정말 좋아요. 웬만한 여배우면 얼굴에 욕심을 부려보지 그냥 놔두겠어요? 자신의 얼굴을 사랑했기 때문에 지금의 그녀가 있다고 생각해요. 모델 출신이라 그런지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감정을 조절하고, 그 감정을 끌어내죠. 그리고 배우 티를 전혀 내지 않아요. 별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어울리면서 주변 사람들을 빛내요. 이번 촬영 때에도 스태프들과 허물없이 이야기하는 거 보세요. 그건 자신감이고 배려심이죠. 만약에 자신만 빛나려 했다면 그 빛은 그렇게 멀리 퍼지지 못했을 거예요.

배두나와의 이번 작업에 ‘코리안 뷰티’라는 주제를 선택한 이유가 있겠죠?
런던에 머물던 두나가 곧 워쇼스키 감독과 두 번째 영화를 찍어요. 촬영지인 시카고로 출발하기 전 며칠 동안 한국에 들어와 있었는데, 제가 이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할리우드 배우로 도약한 그녀이기에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이 주제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시점이지요. 그리고 코리안 뷰티는 제게 무척 익숙한 주제이기도 해요. 세계적인 모델인 헤더 막스의 얼굴에도 코리안 뷰티를 주제로 작업한 적이 있으니까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봤다’고 이야기할 만한 것이 있나요?
결혼 후에 아이를 낳고, 메이크업 학원에 다녔어요. 그때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서 엄마를 제가 사는 동네로 이사오시라 했죠. 당시 제가 다닌 학원이 화장품 회사인 라미에서 운영하던 뷰티 아카데미였어요. 아침에 일어나 아침상 차리고 집 청소를 마치고는 점심때 엄마에게 아이를 맡기고 아카데미에 갔죠. 돌아와서 저녁상 차리고 아이를 재워놓고 숙제를 하는 일과를 반복했어요. 그렇게 해서 일등으로 졸업한 날, ‘내가 이 일을 진짜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라서 행복한 점은 무엇인가요?
밤낮으로 바쁘게 일하던 시절에는 그것이 행복인 줄 몰랐어요. 한발 뒤에서 제 일을 보게 된 지금에서야 행복을 느끼게 되더군요. 재능이 있다면 여자로서는 최고의 직업인 것 같아요. 무엇보다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이니까요. 게다가 화장품도 맘껏 써볼 수 있죠. 화보 촬영을 하면서 많은 곳을 여행한 점도요. 그렇게 출장을 다니면서 쌓은 경험이 어떻게 여행을 하는지, 그리고 그 시간을 누리는 방법을 터득하게 했기 때문이에요.

본인의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나요?
어려서부터 모양 내는 것을 좋아했어요. 여기에는 엄마의 영향도 크게 작용했죠. 어릴 적 제 옷을 주로 양장점에서 맞춰  주셨는데, 특히 예쁜 프린트의 천을 보시면 꼭 제 스커트나 셔츠를 맞추셨어요. 그 영향이었는지 대학 때에는 헤어밴드나 머리핀을 직접 만들어 하고 다녔어요. 당시 제 별명이‘고 모양’이었어요. 모양 내는 걸 좋아해서 붙은 거죠.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무척 신경 써요. 필라테스를 9년째 하고 있고, 승마와 골프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피부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레이저로 관리하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많이 웃으려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겠죠. 저는 아름다워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주변의 젊은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하고, 백화점을 자주 돌아봐요. 화장품이나 패션 쪽만 둘러보는 게 아니라 식품이나 리빙 쪽도 꼼꼼히 보면 다가오는 시즌의 유행 컬러나 트렌드가 보이거든요. 남들의 작업은 잘 보지 않아요. 눈에 익고 기억으로 남아서 작품을 할 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으니까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갖춰야 할 첫 번째 자질, 세 번째 자질은 무엇인가요?
첫 번째는 인내, 두 번째는 창의력, 세 번째는 절제력이에요. 사람에 대한 욕심, 일에 대한 욕심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해요.

자신의 이름을 딴 브러시를 내놓은 이유가 궁금해요.
메이크업 전문가들이나 일반인들 모두에게 만족할 만한 제품을 만들고 싶어서 제작 기간만 일년이 넘게 걸렸어요. 특히 브러시 모의 선택에 신중했죠. 브러시는 다른 화장품과 달리 평생을 사용할 수도 있으니까요. 최근 미국의 리먼마커스 백화점과 계약했는데, 리먼마커스의 미국 내 44개 백화점에 입점된다고 해요.

당신이 생각하는 ‘미인’의 정의는 뭔가요?
메이크업도 헤어도 옷차림도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자연스러움을 가진 사람이죠.

역사를 바꿔놓은 화장품, 단 하나를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맥의 스트롭 크림이요. 기존의 베이스 메이크업 제품에서는 보지 못한 것이었죠. 베이스를 표현하는 개념을 바꾼 제품이에요. 이건 하나만 발라도 피부가 윤택해 보였어요. 항상 전형적인 보송한 피부 표현만 해야 하는 것이 싫어서 파우더를 사용하지 않는 메이크업 방법을 개발한 저에게는 딱 필요한 제품이었죠.

메이크업 브러시를 놓는 날, 가장 먼저 무엇을 할 건가요?
제 인생에서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거 같아요. 나이가 많이 들어 손이 떨린다면 정교한 메이크업 대신 그 떨림을 살린 아방가르드한 메이크업을 할 테니까요.

메이크업 아티스트 고원혜에게 메이크업이란?
삶이지 뭐겠어요. 전 이 일밖에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