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주목해야 할 힙합 앨범 세 편을 훑었다.

 

제목 없음-2

시작은 역시 빈지노다. TV에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고, 주류에 입성하기 위해 당연시되는 음악적 타협을 거부한 채, 이렇게까지 거대한 영향력을 갖게 된 래퍼는 대한민국에서 빈지노가 유일하다. 만약 당신이 빈지노를 ‘그냥 좀 모델같이 생겨서 어쩌다 크게 뜬 래퍼’ 정도로 알고 있었다면, 이 가사를 곱씹어보는 편이 좋다. “난 아무거나 말하고 마는 가요 틈에 끼고 싶지 않아 몇 번이고 말했듯, 난 지킬 거야 내 영역을 / 잠시 떠들썩한 유행이 되는 것보다 어떤 류의 유형이 되는 게 Much Important.” 평단과 대중의 기대를 모았던 빈지노의 첫 정규 앨범 <12>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빈지노의 ‘중2병’이 이 앨범에서도 이어진다는 사실, 아니 이 앨범에서 정점을 찍고 폭발해버렸다는 거다. 빈지노가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 말은 어쩌면 단 하나다. “난 남들과 달라”. 노파심에 말하자면 여기서 중2병이라는 단어는 찬사 그 자체다. “솔까말 너네 다 존나 똑같아서 나는 좋지 / 절대 굶어 죽을리가 없으니”, “절대 훔칠 수 없는 내 Identity / 예술가들은 이게 뭔지 알겠지” 같은 가사에서 느껴지는 건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유치함이나 치기가 아니라 완벽한 ‘예술가형 인간’이 안기는 묘한 카타르시스다. 이를 증명하듯 이 앨범의 모든 것은 전형을 벗어나 경계 위에 걸쳐 있다. 사운드는 힙합이라는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고, 참여진의 면면 또한 예상을 비껴간다. 언어의 국적과 성분 따위는 개의치 않는 듯한 그의 랩 메이킹 앞에서 한영혼용의 문제나 한국어의 한계를 운운하는 말들은 무력하게 무너진다. 어떤 방식이 옳고 그르다 말하기 전에 완성도로 압도해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이 앨범은 ‘안 똑같은 것’만 모아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인상을 준다. 어쩌면 그것은 빈지노라는 장르일지도 모르겠다.

다음은 식케이의 더블 싱글 <I Call It Love>다. 박재범이 참여한 ‘알콜은 싫지만 주면 마실 수밖에’는 조건반사적으로 트래비스 스콧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트래비스 스콧, 리치 호미 콴, 영 서그 등 지금 미국 힙합의 최전선에 있는 젊은 래퍼들에 대한 평가를 곡에 그대로 적용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랩인지 노래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퍼포먼스, 거창하고 명료한 메시지보다는 이미지와 분위기를 중시하는 태도, 중얼중얼거리며 단어의 뜻을 해체한 후 가사가 단지 ‘소리’로만 남게 만드는 성향 말이다. 누군가는 그들의 음악을 가리켜 ‘힙합은 이제 죽었다’라고 말하지만 실은 그들이야말로 ‘변해버린 힙합을 대표하는 이 시대의 아이콘’이다. 식케이를 한국힙합의 차세대 아이콘이라고 부르기는 아직 민망하지만 이 노래가 시류를 품는다는 건 확실하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앨범은 허클베리피의 <점>이다. 이 앨범은 프리스타일 래퍼로서의 허클베리피, 그리고 공연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허클베리피를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에 이 앨범은 ‘작가’로서, 그리고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허클베리피를 드러낸다. 여기서 성숙한 인간이라는 표현은 의례적으로 그냥 동원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허클베리피는 이 앨범에서 변해버린 자신의 가치관을 고백한다. 예전의 그는 꿈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했었기에 꿈을 포기하거나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은 이를 깔보고 비웃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꿈은 삶의 일부일 뿐이라고 말한다. 모든 선택은 아름답다고, 어떠한 선택을 하든 존중하겠다는 태도는 개인적인 성장고백과 다름없다. 이 앨범에서 그의 자화상을, 아니 우리 모두의 얼굴을 본다. 어릴 적 우리는 경험으로 빚어진 어른의 성숙함을 꼰대로 치부하고, 나보다 뾰족하지 않은 어른은 모두 변했다고 믿지 않았나? 이렇듯 힙합은 누군가의 삶이고 시대,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