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화장대 서랍 속에 넣어둔 헤어 액세서리를 다시 꺼내야 할 때다. 심플한 메탈 핀부터 화려한 코르사주, 헤어 스카프까지 런웨이 속 모델들의 머리가 화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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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가을 뉴욕, 로다테의 봄/여름 시즌 쇼를 보기 위해 이른 아침 백스테이지를 찾았을 때였다. 입구를 찾지 못해 주변을 헤매다가 부드러운 캐멀 컬러로 눈두덩을 물들인, 피부가 근사하게 빛나는 한 모델을 발견했다. 컬러가 완벽하게 절제된 우아한 메이크업도 아름다웠지만 무엇보다 시선을 압도한 것은 부스스하게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무심하게 얹은 금빛 헤어핀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왕관에서 떼어낸 듯 꽃과 나뭇잎이 어우러진 금속 핀을 머리 양옆에 꽂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을씨년스러운 새벽녘 뉴욕 거리와는 완전히 동떨어져 보였다. 어렵게 찾아 들어간 로다테 쇼의 백스테이지에서 리드 헤어 아티스트 오딜 질베르를 만났다. “모델들의 머리카락을 보면 당신의 머리를 자연 건조시켰을 때의 모습과 똑같아 보일 거예요. 브러시를 사용하지 않고 스프레이를 뿌린 후 그냥 손가락으로 빗었죠. 그리고 자연을 모티브로 한 핀과 브로치를 머리에 꽂았어요.” 그녀는 모델들의 머리카락에 두 개의 핀을 비대칭으로 꽂았다. 양옆에 서로 다른 높이로, 혹은 이마까지 핀이 닿도록 나란히 꽂는 등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이상한 위치에, 그것도 불규칙하게 말이다. 덕분에 자칫 고루해 보일 수 있던 스타일에 독특한 개성이 더해졌다. 로다테 쇼의 헤어 스타일이 우아한 화려함의 극치였다면, 마크 제이콥스 쇼의 헤어 스타일에는 키치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백스테이지에서 만난 헤어 아티스트 귀도 팔라우는 양손에 무스와 함께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빗 모양의 헤어핀을 들고 등장 했다. 그는 모델의 모발에 어마어마한 양의 무스를 묻힌 다음 대충 틀어 올리고 핀을 꽂아 마무리했다. “40년대의 유행을 좇는 다운타운의 소녀 같은 느낌이죠. 마크 제이콥스와 나는 밤새워 클럽에서 놀고 나온 소녀를 상상했거든요.” 진한 파란색으로 번진 눈매, 글리터로 두툼하게 칠한 손톱, 그리고 요란한 핀으로 장식한 기름진 머리카락까지 모델은 순식간에 잔뜩 멋을 낸 뉴욕의 소녀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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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쥬얼카운티의 브로치 장식 헤어 밴드. 가격미정. 2 에르메스의 스카프. 가격미정. 3 리빙프루프의 풀 씨크닝 무쓰. 149ml 3만8천원. 4 모로칸오일의 세라믹 패들 브러쉬. 2만5천원. 5 블랙뮤즈의 별 장식 헤어 밴드. 7만9천원. 6 미쟝센의 3D 볼륨 스프레이. 180ml 1만원.

헤어 액세서리를 이렇게 근사하게 사용한 것은 이들뿐만이 아니다. 헤어 아티스트 유진 술레이먼의 헤어 액세서리 활용은 그야말로 영민하다. 안토니오 마라스 쇼에서 그는 기교 없이 단순하게 땋은 머리카락 위에 섬세한 자수 장식의 헤어 피스를 헤어 밴드처럼 이마에 걸쳐 얹었다. 보석과 스톤으로 아름답게 장식한 이 헤어 피스는 로마의 조각상이나 르네상스 시대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모자 못지않은 존재감을 발휘했다.

타미 힐피거 쇼에서는 레게 페스티벌에 온 소녀처럼 모델의 머리카락을 색색의 끈으로 자잘하게 땋았다. 무지갯빛 모자 아래 컬러풀한 실이 런웨이 위에서 리드미컬하게 흔들리며 휴가지의 들뜬 무드를 극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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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쇼에서 헤어 아티스트 올랜도 피타가 보여준 헤어 스타일링은 낭만적이다. 그는 1970년대 스타일의 구불구불한 웨이브를 만들고 크고 화려한 코르사주로 한쪽 머리를 귀 쪽으로 고정했다. 마치 바닷가에 놀러 온 7 0년대의 여자들처럼 말이다. 아쉬시 쇼의 헤어 아티스트 알리 프리자데는 스프레이를 뿌린 정수리에 스팽글을 어지럽게 붙였다. 마치 머리카락 위로 꽃가루가 내려앉은 것처럼! 헤어 아티스트 귀도 팔라우의 작품들은 심플하고 시크하다. 랑방 쇼에서 그는 모델들의 머리칼을 지저분한 업스타일로 연출하고 블랙, 라벤더 등 다양한 컬러의 리본 장식으로 마무리했다. 머리카락의 끝 부분은 그대로 삐죽 삐져나오게 내버려둔, 조금 헝클어진 업스타일에 더해진 로맨틱한 리본은 프렌치 시크의 전형을 보여준다. 알베르타 페레티 쇼에서는 금빛 실을 선보였다. 머리의 가닥을 나눠 부분부분 금빛 실을 친친 동여맨 후 땋아 올려 마치 머리 위에 보석 장식을 한 듯한 효과를 낸 것이다. 꽃과 과일로 장식된 헤어 밴드, 무지갯빛 스카프 등 화려한 헤어 액세서리의 향연을 보여준 돌체앤가바나 쇼에서도 단연 주목해야 할 것은 깔끔한 헤어번에 스카프를 한쪽에 리본을 묶어 마무리한 스타일링이다. 극적인 헤어 액세서리를 우아하게 매치하는 귀도 팔라우만의 노하우를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낭만적인 헤어 액세서리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생 로랑 쇼에서는 시크한 티아라가 등장했고, 지방시 쇼에서는 양쪽 모서리에 둥근 귀고리를 달아 조형적인 미를 더한 메탈릭한 헤어 밴드를 선보였다. 리본 하나로 초커 같기도 하고 머리를 느슨하게 내려묶은 것 같기도 한 독특한 느낌을 연출한 디올 쇼, 마리 카트란주 쇼의 헤어는 기발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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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스트라디바리우스의 터번형 헤어 밴드. 9천원. 8 케이트앤켈리의 티아라 모양 헤어 밴드. 가격미정. 9 네이처리퍼블릭의 아르간 에센셜 수분 헤어 미스트. 220ml 7천7백원. 10 프리메라의 마룰라 안티- 드라이니스 모이스처 헤어 세럼. 100ml 2만7천원. 11 그랭드보떼의 구슬 장식 머리끈. 2만원. 12 버쉬카의 스카프 모양 헤어 밴드. 7천원. 13 이브로쉐의 라즈베리 린싱 비네거. 150ml 9천9백원.

런웨이를 수놓은 각양각색의 헤어 액세서리를 보며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첫째 화려한 액세서리일수록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에 꽂는 것이 정설이지만, 꾸미지 않은 듯 부스스한 상태라면 극적인 효과가 배가 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헤어 아티스트들이 정돈되지 않은 머리 에 화려한 액세서리를 포인트로 활용했다. 둘째는, 헤어 밴드를 티아라처럼 이마에 걸치듯 얹기. 헤어 밴드 하나만으로도 화려한 헤어 피스를 활용한 듯한 효과를 낼 수 있다. N21, 생 로랑 쇼가 그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