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분방함과 대범함으로 점철된 거리의 것들이 2016년 봄/여름 런웨이를 점거했다. 찢어지고 재조합된 데님 팬츠, 새로운 재단을 입은 스웨트 셔츠, 큼지막한 체인 귀고리는 우리에게 젊음을 입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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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에도 태도라는 것이 있다. 점잖은 옷, 자상한 옷, 반항적이고 제 멋대로인 옷, 공격적인 옷. 우리가 무엇을 입을 것인가 선택하는 것은 어떤 성격의 사람이 될 것인지 결정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면 비약일까? 하이패션이 비주류를 포용한 지 오래되었음에도 거리에서 영감을 받은 패션이 여전히 유행 중인 이유는 우리가 원하는 삶의 태도가 청춘을 표방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틀어 청춘은 언제나 무모하고 거침없었으며 반항적이고 급진적이었다. 그들이 거리에서 피워낸 문화는 1960년대 펑크, 1970년대 히피를 거쳐 1990년대 초반에 절정을 이루었다. 얼터너티브 록의 그런지, 힙합과 갱스터 랩에서 파생된 타투와 그래피티, 스케이트와 스노보드 등의 익스트림 스포츠가 한데 어우러져 길거리 문화를 형성했고 스투시, 슈프림, 베이프 등 언더 신의 브랜드는 메인 스트림의 브랜드와 대결 구도를 보이며 안티패션을 주장했다.
하지만 2004년 영국에서 차브족이 등장하면서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는 위태롭게 무너졌다. 가난하고 무식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차브족은 트레이닝 팬츠에 명품 브랜드의 로고 티셔츠를 입고 금목걸이, 버버리 모자, 프라다 운동화를 믹스했다. 요즘 잘나가는 스왜거의 시초! 그들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지만 패션은 크리스티나 아길레나, 에미넴, 50센트 등 대중문화 아이콘에 깃들어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이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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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님 소재 베스트는 가격미정, 노나곤 바이 비이커(Nona9on by Beaker). 2 면 소재 스카프는 9만9천원, 보브(Vov). 3 브라스 소재 초커는 9만9천원, 빈티지 헐리우드(Vintage Hollywood). 4 소가죽 소재 라이더 재킷은 49만8천원, 앤더슨 벨(Anderson Bell). 5 양가죽 소재 힙색 겸용 가방은 1백10만원대,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 6 메탈 소재 귀고리는 가격미정, 자라(Z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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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하이패션이 스트리트 패션을 품은 건 10년 전, 혜성처럼 나타난 알렉산더 왕부터다. 그는 하이패션 신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쿨‘ 키즈’ 자체였다. 제멋대로 싹둑 잘라버린 데님 쇼츠와 럭비 유니폼에서 착안한 저지 소재 맨투맨 티셔츠를 런웨이에 올렸고, 1990년대에 유행한 할리우드 키드의 미국적이고 자유로운 스타일은 그렇게 하 이패션계로 스며들었다. 뉴욕을 거점으로 랙앤본, 필립 림, 겐조가 선보인 아메리칸 스포티즘을 결합한 간결한 실루엣의 스트리트 룩은 10년간 매 시즌 한결같이 유행 중이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스트리트 룩은 유스(Youth) 트렌드와 맞물려 지금 제일 뜨거운 키 워드. 다만 아메리칸 스포티즘에 유럽식 전위주의 노선이 추가되어 그 범위가 확대된 것이 특징이다. 이는 스트리트 룩이 실용에서 개성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음을 의미한다. 베트멍, 고샤 루부친스키, 마르케사 알메이다 등은 모든 것을 상실한 듯 늘어진 긴 소매, 여러 벌의 청바지를 해체한 뒤 다시 이어 붙여 만든 누더기 데님, 과장되고 극단적인 오버사이즈 실루엣으로 보다 탈규범적인 스트리트 룩을 선보이고 있다. 실용주의적 스트리트 룩의 대표주자는 두말할 것 없이 알렉산더 왕이다. 자신의 주 특기인 ‘그런지 쿨’을 1990년대 유행한 미니멀 스타일의 슬립 드레스에 녹여냈다. 데님은 보다 거칠게 해 체되었고, 가죽 재킷은 프린지를 달고 더욱 강렬해졌다. 또한 메시 톱과 후드 스웨터는 여전히 그가 실용주의 노선을 지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자유분방함을 하이패션의 범주와 실용적인 노선에서 가장 노련하게 지휘한 이는 생 로랑의 에디슬리먼. 슬립 드레스를 그토록 날카롭고 반항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투박한 항공 점퍼와 레인 부츠 덕분. 그가 사랑하는 가죽 라이더 재킷, 물 빠진 청바지, 레오퍼드의 행렬도 빠지지 않았다. 실용과 전위의 중간지점에 있는 루이 비통은 스트리트 무드에 SF적인 요소를 부여해 미래 지향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핑크 컬러, 그래픽적인 터치를 더해 화려해진 라이더 재킷과 불규칙하게 커팅한 섹시한 가죽 톱과 메시 톱, 메탈릭 소재의 슬립 드레스, 마치 손에 붕대를 감은 것 같은 가죽 소재 장갑 등 덕분에 공격의 수위가 올라갔다. 그렇다면 전위의 끝판왕은? 새로운 스트리트 룩의 선구자는 단연 베트멍이다. 그들은 성이 난 듯 거침없는 테일러링의 옷을 런웨이에 올렸다. 장난기 어린 DHL 티셔츠, 유명 스트리트 브랜드 챔피온을 오마주한 후디 셔츠, 잔 꽃무늬 드레스 등 옷장에 있을 법한 기본적인 의상은 투박하고 과장된 형태로 새로운 스타일링을 제시했다. 몸의 형태와 규범을 벗어난 기이함으로 실용과 전위 사이를 오가며 지금 현재 가장 쿨한 옷의 대명사로 거듭난 뎀나 즈바살리아는 의상을 만드는 데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추구하는 태도는 접근가능할 만큼 덜 럭셔리하면서 거칠지만 세련된 것이다. 베트멍이 선보인 전위적인 스트리트 의상이 사람들을 열광시켰다는 것은 쿨한 것이야말로 모던한 옷임을 반증한다. 그리고 그 쿨함엔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길거리 문화가 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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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면 소재 버킷 햇은 9만8천원, 럭키 슈에뜨(Lucky Chouatte). 8 양가죽 소재 키링은 1백37만원, 펜디(Fendi). 9 송아지 가죽 소재 샌들은 70만원대, 알렉산더 왕. 10 면 소재 스웨트 셔트는 17만9천원, 아이아이(Eyeye). 11 면 소재 스커트는 가격미정, 지컷(G-Cut). 12 면 소재 조거 팬츠는 16만8천원, 쟈니 해잇 재즈(Johnny Hates Jazz). 13 비즈 장식의 면 소재 백팩은 가격미정, 베르사체(Versace).